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다
누군가에겐 삶의 터전이다
  • 이수현 기자
  • 승인 2012.09.24 14: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세상엔 수없이 많은 관광지가 있다. 그리고 그 이면엔 그곳에 거주하며 삶의 터전으로 삼는 주민들이 있다. 그런 그들의 고충을 헤아리고 배려하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서울의 대표적 명소 두 곳, 북촌 한옥마을과 이화마을을 통해 관광지의 속사정을 들여다 봤다.


북촌 한옥마을의 골목길과 전경
  북촌, 한옥을 품었다
  경복궁, 덕수궁, 경희궁, 종묘, 비원 주변과 종로구 계동, 명륜동 등. 서울에도 수많은 한옥이 있지만 유독 북촌 한옥마을에 시선이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여타 한옥들이 과거의 모습을 유지한 위엄있는 모습이라면 북촌은 과거와 현재를 모두 품은 그야말로 ‘사람 사는 냄새’나는 곳이기 때문 아닐까. 주거기능을 유지한 채 한옥들이 집단적으로 남아 있는 곳은 북촌이 유일하다. ‘종로’라는 서울의 중심도시 한복판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이 한옥마을은 현대화된 서울과 조화를 이룬다.

  이제 북촌은 서울에 관광 온 사람들이라면 꼭 둘러보고 간다는‘필수 관광 코스’가 됐다. 명소 답게 마을 입구에는 관광안내소가 있고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영어 지도까지 구비해놓고 있다. 또한 지난해에는 서울시에서 조사한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서울의 관광지’에서는 남산타워, 명동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이같은 인기에 힘입어 최근 북촌을 대표하는 경관 8곳을 지정해 방문객을 위한 포토 스폿(사진 촬영대)을 설치하는 등 관광 명소로 정착하기 위한 움직임도 활발하다.

  가파른 언덕으로 다소 지칠만도 하지만 관광객들은 오랜 시간 보존된 한옥들과 그 한옥 건물들 사이사이 골목을 누비며 한옥의 아름다움에 감탄한다. 주말 한옥마을은 이제 발 디딜 틈이 없다.

                                                                                                      
집 앞에 그려진 벽화와 꽃 그림 골목



  지붕 없는 미술관, 이화마을 
  서울 내 4산 중 하나인 낙산 아래 일제시대 때 지어진 가옥 수백 채가 자리잡은 이화동 벽화마을은 서울 도심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 중 하나다. 2006년 68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낙산 공공 프로젝트’가 추진되면서 동네 곳곳이 벽화로 채워졌다. 이것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면서 어느새 이화마을은 새로운 관광명소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여기에 최근 인기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배경으로 등장하면서 시청자의 눈길을 사로잡았고 지금까지도 수많은 언론이 이화마을을 주목하고있다.

  작고 조용한 마을은 늘 벽화를 보기위해 구경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외국인 관광객도 쉽게 만나볼 수 있다. 타이완에서 왔다는 한 관광객은“한국 드라마 <옥탑방 왕세자>에 나온 꽃그림 골목을 보고 이화마을을 찾게 됐다”며 “다른 타이완 사람들도 드라마, 오락 프로그램같은 한국 방송을 통해 이화마을에 대해 알게되고 많이 찾아오는 추세다”라고 전했다. 한류열풍을 등에 업고 이화마을의 인기가 더욱 커지고 있다는 것.

  그 유명세답게 마을은 아름답고 다채로운 벽화로 가득하다. 벽을 타고 해바라기가 피어오르는가 하면 계단을 딛고 새가 하늘을 날고 있다. 아예 한쪽 벽면에 거대한 사람 그림이 새겨진 건물도 있다. 봉제노동자 2명의 모습인데 이 역시 이화마을의 특색을 여실히 보여준다.


  관광지도‘사람’사는 마을 … 주민 위한 배려 필요하다
  집 앞 슈퍼를 가려고 현관문을 열고 나왔는데 모르는 사람이 우리 집 현관 앞에서 시끄럽게 떠들며 사진을 찍고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심지어 문틈으로 살짝 안을 훔쳐보기도 한다면? 관광지의 주민이라면 늘상 겪는 일이다.

  “너무 힘들다.” 주민들에게서 들은 첫 마디였다. 관광지 주민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고통은 생각보다 깊었다. 관광 명소답게 주말이면 북촌 한옥마을은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없이 붐빈다. 10년째 이곳에 살고 있다는 오미화 씨는 “사람들이 다녀가면 꼭 집 앞에 쓰레기가 놓여있다”며 “이를 매번 처리해야하는 것이 가장 스트레스다”고 토로했다.

  이화마을 주민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주민들은 이화마을의 인기에 비례하는 부작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마을 입구에 살고 있는 한 주민은 “힘들게 높은 곳까지 올라와서 마을을 찾아주는 것은 환영이다”면서도 “하지만 쓰레기 문제로 인한 주민들의 정신적 고통이 심각하다. 사람 사는 주택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행위는 자제해줬으면 한다”고 호소했다. 관광객들이 집 앞에 버리고 간 쓰레기들을 수거하는 일은 주민들의 몫이었다. 실제 두 곳을 다녀보면 집 앞은 물론 골목골목에서 쓰레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개중에는 아예 집 안 으로 쓰레기를 밀어 넣은 사람도 있다.
 
  소음으로 인한 피해는 말할 것도 없다. 늦은 밤 까지 계속되는 소음은 주민들로 하여금 밤잠을 설치게한다. '이곳은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주민들을 위해 조용히 해주세요’라는 안내문구가 여기저기 붙어있지만 피해는 여전하다. 주민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탓이다.

낙서가 가득한 이화마을 벽화와 북촌 한옥마을 곳곳에 붙어있는 안내문
  일부 관광객들의 도를 넘어선 행위는 관광지의 가치를 해치고 있다. 첫째는 낙서로 인한 관광지 외관 훼손이다. 실제 이화마을의 벽화 대부분은 낙서로 덧칠돼 있었고 심한 경우 누군가에 의해 심하게 훼손돼 알아보기가 힘든 벽화도 있었다. 매스컴을 통해 소개돼 이화마을의 마스코트 노릇 을 해온 ‘천사날개 벽화’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날개벽화가 그려진 집의 주인은 “벽화가 TV에 나와 유명해지자 전 세계 각지에서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왔다”며 “동시에 주민들이 많은 불편을 겪었다”고 토로했다. 일례로 이 벽화가 유명세를 탄 뒤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찾아와 속옷차림으로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는 등 난동을 피운 사건도 있었다. 이러한 크고 작은 소란들로 주민들의 고통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자 2010년, 벽화를 그린 작가가 자진해서 그림을 지웠다. 당시 이 작가는 블로그를 통해 그림 삭제 소식을 알리고 관광지이기 이전에 삶의 터전인 이화마을에 대한 배려를 당부했다. 주민들은 이를 “현명한 대처”라고 평가했다. 그간 주민들의 고충이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외에도 벽화로 인해 피해받는 일부 주민들을 위해 몇몇 벽화가 지워지고 있다. ‘벽화 마을’로 유명세를 탄 이화마을에서 정작 벽화는 사라져가는 아이러니한 현상이다.

이화마을의 마스코트였던 천사날개 벽화는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둘째는 주민들을 배려하지 않은 관광객들의 ‘비매너’행위다. 앞서 언급한 쓰레기와 소음만이 아니다. 실제 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해 생긴 ‘사생활 침해’역시 심각하다. 일부 관광객들은 아예 자택의 현관 문을 열고 내부에 들어와 사진을 찍기도 한다고. 애초에 북촌 한옥마을이 관광객들의 인기를 끈 이유도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한옥이기 때문이지만 사람들은 쉽게 주민들의 존재를 잊는다.

  관광객들이 마을을 둘러보고 아무렇지 않게 집 앞, 길거리에 투척한 쓰레기와 밤낮할 것 없이 만들어낸 소음은 갈등의 씨앗이 됐고 일부 관광객과 주민들이 서로 얼굴을 붉히는 일도 생겼다. 북촌 한옥마을과 이화마을은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지이기 이전에 주민들이 하루 24시간 살아 숨 쉬는 ‘주거 공간’이다. 이 점을 절대 잊어선 안된다. 이 같은 관광 명소들이 관광객과 주민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해 그 가치를 잃어선 안된다. ‘문화도시’를 꿈꾸는 서울에서 우리는 ‘문화시민’을 꿈꿔야 한다. 주민들의 고충을 헤아리는 성숙한 시민의식과 함께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2,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