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안전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 이연지 기자
  • 승인 2012.10.08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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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특별한 범행 동기가 없는 강력범죄가 급증하고, 범죄현장에 증거조차 남기지 않는 지능범이 늘어나면서 범죄 수사나 예방을 위한 범죄심리의 전문적인 분석 필요성이 증가하고 있다. 종종 매스컴에서 언급되고 영화나 드라마에 소개되기도 했으나 아직은 다소 생소한 ‘프로파일러’.

  프로파일러는 범죄심리와 행동분석 기법을 활용해 범행 동기가 불분명한 강력범죄나 증거가 부족해 해결하기 어려운 범죄사건의 실마리는 푸는 범죄심리 전문가이다. 이들은 사건현장을 분석, 연구해 범행과정을 과학적으로 재구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범인을 가려낼 여러 단서들을 찾아낸다. 국내 프로파일러 1호 배상훈 박사를 만나 이들의 직업세계에 대해 들어봤다.


   프로파일링은 사건발생 지점을 연결해 수사를 집중해야 할 지역을 찾는 지리적 프로파일링, 동일범에 의한 사건을 찾아내는 링키지 프로파일링 등 그 분야가 다양한데요, 범죄의 원인 분석 방법으로 ‘가족사 재구성’을 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강력범죄의 발생원인을 살펴보면 문화적 이유가 60%, 유전적인 이유가 20%, 불분명한 이유가 20%를 차지합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문화적 요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죄자의 가족사를 고려해야 합니다. 특히 한국사회는 가족 간에 유대감이 강하죠. 실제로 범행동기를 찾다보면 가정학대 경험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습니다. 양육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거죠. 가족사를 재구성하다보면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프로파일러는 시그니처(signature)를 통해 범죄패턴을 파악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시그니처란 무엇인가요?
  시그니처는 어떤 사람이 가진 고유한 행동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범죄자에겐 범행을 저지르는 목적이자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범죄현장에서 시그니처를 발견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는 것이 중요한데,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범인의 입장에서 사건을 재구성해야 시그니처가 어떻게 형성됐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죠. 시그니처가 첫 번째 사건부터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간에 바뀔 수도 있고요. 시그니처 유형을 찾아가는 겁니다.

 국내 프로파일러 1호 배상훈 박사

   강력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범죄분석 시스템을 이용해 범죄를 유형화 해서 자료를 축적한다고 들었습니다. 이러한 유형화가 수사에 어떤 도움을 주나요?

  처음엔 단순 절도범으로 검거됐지만 범인의 집에 가보니 방 안에 하이힐이 여러 켤레 있었습니다. 새것이 아닌, 이미 신은 적 있는 하이힐이었어요. 이는 범죄 전이성이 높은 일종의 성범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1년 안에 강간이나 살인 등 재범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이렇게 특정 범죄의 유형들을 축적해나가면, 비슷한 유형에 속하는 범죄자는 어떤 성격을 지녔고 어떤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크리미널마인드, CSI 과학수사대 같은 드라마나 영화를 통해 프로파일러는 멋있는 직업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 이면엔 많은 고충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절단된 시체를 맨손으로 만져보기도 하고, 직접 냄새를 맡으면서 현장에서 몸으로 익히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보니 생각했던 것과 달랐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었습니다. 시체도 사인이 독극물이냐 자연사이냐 따라 냄새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후각을 단련시켜야 했습니다. 얼마 전 미국에서 프로파일러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일반인에 비해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자살률이 높다고 하더군요. 그만큼 프로파일러는 자의식과 자존감이 강해야 합니다. 사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인을 범인으로 상상해 범인의 방식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프로파일러들은 스스로 가면 쓰는 법을 익히게 됩니다.

  평소 사이코패스를 다룬 네이버 웹툰 <인간의 숲>을 즐겨봅니다. 이번 <괴물들> 편에서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들여다봤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 볼테니까'라는 니체의 말을 인용했는데요, 프로파일러에게 필요한 자질과 연관이 있나요?
  니체의 말은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려면 그만큼 제 마음도 보여줘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일전에 어느 경찰관이 사이코패스와 면담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개인사항을 발설하는 바람에 피해를 입은 적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 역시 숙련된 프로파일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관찰하면서 취약점을 찾는데 전문가죠. 사이코패스들을 심문하다보면 인간 본성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고, 제가 몸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실망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특수수사관들까지 신원 보호가 철저하게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증인 보호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많이 아쉽습니다.

  사이코패스의 경우 비교적 동안(童顔)인 경우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렇게 범죄자들이 지닌 고유한 특성이 있나요?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대면성이 강합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늘 의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 일반인 속에 자연스럽게 섞이기 위해 스스로를 숨기는 기술 또한 뛰어나지요. 면담을 하다보면, 가끔씩 범죄자 얼굴에서 약간의 서늘함이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자신의 범행에 대해 상상하는 겁니다. 물론 굉장히 짧은 순간이라 포착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얼굴표정과 눈빛은 감추기 쉽기 때문에 손과 발의 움직임도 같이 관찰하곤 합니다.

    최근 자극적인 범죄 사건이 매스컴을 통해 알려지고, 다양한 범죄를 다룬 영화들이 많이 개봉되고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을 자주 접하다 보면 더욱 심한 폭력성에 대해서도 둔감해지지 않을까 우려가 됩니다. 박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사회적 문제를 다룬 영화가 이슈화 되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법률안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잔인한 표현은 자제하는 등 허용기준에 대한 사전합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씩 신문에서 범행수법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기사를 읽으면서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수사기록을 있는 그대로 옮겨 적은 것 같았어요. 이는 예비 범죄자에게 범행수법에 대해 학습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얼마 전 방송에 출연해 범죄예방 방법으로 ‘주변의 위험 공간에 대한 자각’에 대해 언급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할까요?  

  자신의 동선을 파악하고 위험한 공간에 대해 인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낯선 곳에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가는 것은 정말 위험합니다. 기회범죄는 범죄자와 나 사이의 거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의 팔 길이가 약 1m 50cm 정도 된다고 합니다. 손으로 쉽게 붙잡을 수 있는 이 범주에 속하는가에 대한 여부가 범죄자의 심리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낯선 사람과 대화할 때 적정거리를 유지하고 모퉁이를 돌때 바싹 붙어서 가는 습관이 있다면 고치는 것이 좋습니다. 안전은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스스로 위험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같은 개인적인 노력 외에 사회구조적인 측면에서 범죄예방을 위해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까요?
  교도소에 제대로 된 교정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합니다. 처음엔 단순 절도범으로 수감됐지만 전문적인 범죄자가 되어 출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정심리치료사를 채용하기 시작한 것도 불과 1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또 출소한 범죄자들의 재범 방지를 위한 국가차원의 적절한 관리도 필요합니다. 수사시스템도 안정화돼야 합니다. 시체는 하루만 지나도 쉽게 변색되기 때문에 빠른 시간 내에 부검을 통해 증거를 확보해야 하는데 부검의가 많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또 현장에서 증거를 수집하는 검식반도 훈련이 덜 된 경우가 많습니다.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이 높은데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무죄로 풀려나는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프로파일러가 되고자 하는 미래의 후배들에게 한 말씀 해주신다면?
  프로파일러는 냉철함과 동시에 감정이입을 할 수 있는 감성이 필요합니다. 현재 상황을 파악할 때에는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지만 범인의 행동을 예상하고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기 스스로가 범인의 입장이 돼야 하기 때문이지요. 또 두뇌 회전이 빨라야 하고 범죄심리나 심리학 지식 등을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사용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사회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에서 보람이 크지만 개인과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는 만큼 정의감과 책임감이 동시에 요구되는 직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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