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이 행복한 동물원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
  • 이연지 기자
  • 승인 2012.11.05 11: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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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큐레이터, 양효진

  동물원이 변화하고 있다. 비록 우리 속을 벗어날 순 없지만, 더 이상 무기력한 동물들의 모습이 아닌, 본능에 따라 마음껏 뛰노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동물원이 바뀌고 있다. 관람객 역시 마치 자연 속에 들어와 동물들을 살짝 엿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동물원으로 말이다.
  이 변화의 중심엔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소한 ‘동물 큐레이터’가 있다. 새로운 환경에 동물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고민하고, 동시에 관람객이 즐겁게 동물원을 이용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직종이 바로 동물큐레이터다. 양효진 동물큐레이터를 만나 그녀의 일에 대해 들어봤다. 동물에 대한 그녀의 관심과 유대, 교감은 어떤 것일까?


 

 

사진 박소영 기자 zntusthsu@

 

  미술관이나 박물관 큐레이터는 익숙하지만 동물 큐레이터는 많이 생소한데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무엇보다 동물들이 우리 속에 갇혀있지만 야생의 삶까지는 아니더라도, 보다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합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동물이 어떤 보존가치가 있고 생태학적으로도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려주는 전시를 기획하는 것 등도 동물 큐레이터의 기본 업무입니다.
이렇게 주요 이슈나 계절에 맞는 새로운 기획을 준비하고 이에 따른 동물 선정, 전시 등을 진행합니다. 또한 동물들의 활동력을 키울 수 있는 놀이 도구와 시설도 늘 연구하고 있습니다. 덕분에 동물들이 더 이상 좁은 철창 안에 갇혀 무기력하게 지내지 않습니다.

  이 뿐만 아니라 동물들의 복지 프로그램인 ‘동물행동 풍부화’를 진행하는 것도 동물큐레이터의 주 업무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동물행동 풍부화’는 동물원에서 사육되는 야생동물에게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제공하면서 그들이 자연에서 보이는 행동을 취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통해 동물들이 야생의 본능을 잃지 않도록 유지시킬 수 있고, 관람객은 생동감 있는 동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침팬지에게 인공개미집을 만들어주고 나뭇가지로 개미낚시를 하게 하거나, 비버의 집을 정기적으로 허물어서 집을 다시 짓게 하고, 움직임이 적은 북극곰에게 과일이 속에 든 얼음덩어리를 주는 것 등이 대표적입니다.

  수의사를 꿈꾸다가 동물 큐레이터의 길을 선택하셨는데, 반려동물과 비교했을 때 야생동물의 어떤 점에 더 끌리셨나요?
  지금도 강아지와 고양이를 많이 좋아합니다. 우연히 야생동물 구조센터로 봉사활동을 가게 됐는데, 그곳엔 도시에서 자라면서 볼 수 없었던 낯선 동물들이 많았습니다. 우리 주변에 이렇게 다양한 생물체가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야생에 적응하기 위해 각자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멋있었습니다. 평소 독수리를 무서운 동물로 생각했는데 상처를 치료해주면서 가까이에서 보다보니 귀여운 면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자와 인터뷰 중인 양효진 큐레이터

  동물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동물 큐레이터가 되기 전에 서울동물원에서 주최한 동물행동 풍부화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철원에 있는 야생동물 구조센터에서도 일한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동물들을 관찰해 오면서 동물원의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야생의 동물들도 완전히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으로부터 많은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지요. 동물도 자신의 욕구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동물원의 동물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에 무엇이 있을지 오랫동안 고민한 끝에 동물 큐레이터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동물들의 소중한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요.

  대학 시절 아프리카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동물에 대한 태도나 삶의 가치관에 어떤 변화가 생겼나요?
  ‘동물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면서 동물이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서식지를 보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자연과 동물, 인간이 상생하는 풍경은 그 자체로 감동이었습니다. 그 감동의 크기만큼 인위적으로 삶의 터전을 빼앗기거나, 인간의 필요로 인해 철창에 갇혀 지내는 현실의 동물에 대한 연민도 함께 커졌습니다.
또 킬리만자로를 천천히 걸어 올라가면서 경쟁 같은 단어들을 마음에서 내려놓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남보다 잘하고 싶고 지기 싫어하는 경향이 강했는데, 남과 자신을 비교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제가 원하고 가고 싶은 길을 향해 가는 과정이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킬리만자로를 오르고 있는 양효진 큐레이터

“책을 통해 동물의 입장을 헤아리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말과 함께 <해리엇>이라는 책을 추천해 주셨는데, 책의 어떤 부분이 인상적이었나요?
<해리엇>은 원숭이가 인간과 함께 살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원숭이가 ‘이렇게 해야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사람을 껴안는 부분이 기억에 남습니다. 우리 생각과 달리, 동물 입장에서는 껴안는 것이 좋아서 하는 행동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었지요. 이처럼 우리는 동물에 대해 많은 부분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동물농장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동물들을 의인화 시키곤 합니다. 돌고래의 표정을 보고 웃고 있다고 표현하는 것도 인간의 생각일 뿐입니다.

우리에 갇혀 있는 동물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동물보호단체에서는 동물원을 가리켜 ‘슬픈 동물원’이라고 부르지요. 양효진 큐레이터가 꿈꾸는 동물원의 모습은 어떠한가요?
요즘은 많은 동물원들이 자연 서식지와 비슷한 환경을 조성하고 그 속에서 동물들이 자유롭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생태동물원’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도 마치 자연 속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이전과 반대로 동물들을 몰래 엿보는 입장이 돼보는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동물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동물이 숨어 지낼 공간도 필요합니다. 사람의 개입을 최소화해서 동물이 행복한 동물원을 만들고 싶습니다.

요즘 공존지수를 뜻하는 NQ(Network Quotion),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이 사회적으로 화두입니다. 동물큐레이터로서 NQ능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동물들을 다루다보면 예상치도 못한 일이 발생하는 등 변수가 많습니다. 동물을 위한 시설 하나를 설치하기 위해서도 동물복지와 기획,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여러 부서들과 협의하고 조율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하죠. 원만한 의사소통 능력은 물론 새롭게 기획한 전시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한 리더십도 갖춰야 합니다. 인간 사이에 소통이 원활하게 이뤄질 때 비로소 동물과의 교감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나 천연기념물 보호에도 힘쓰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학생들을 포함한 일반인들도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야생동물 보호방법에는 무엇이 있나요?
<어느 날 그 길에서>라는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동물들이 로드킬(road kill) 당한 지점을 점으로 표시했을 때 도로가 새까맣게 뒤덮이는 장면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야생동물 출현 지역 표지판을 발견했을 경우 주위를 유심히 살피면서 서행운전 하는 것이 동물보호에 큰 도움이 됩니다. 또한 산에서 도토리나 열매를 줍는 것은 야생동물의 먹이사슬을 방해하는 행위이므로 자제해야 합니다. 지구는 결코 인간만의 것이 아닙니다. 동식물과 인간 모두가 함께 어우러져 살아갈 삶의 터전이지요.
 
성인이 되어 다시 동물원을 찾은 관람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동물들이 왜 이곳(동물원)에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정해진 답은 없습니다. 동물원을 찬찬히 둘러보면서 그 답을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또 동물원인 만큼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동물들을 살펴보는 건 어떨까요? 가령 사자가 잠자고 있는 모습을 보고 그냥 휙 지나치기 보다는 ‘사자는 하루에 20시간 이상을 자는 구나’ 하면서 점차 알아간다면 의미 있는 동물원 방문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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