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이름 만들기
세상의 모든 이름 만들기
  • 이연지 기자
  • 승인 2012.11.19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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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소영 기자 zntusthsu@

  브랜드 메이커(brand maker), 이름 설계사로도 불리는 ‘네이미스트(Namist)’. 네이미스트가 작명한 다양한 브랜드 이름은 우리 생활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네이미스트는 브랜드 이름과 해당 브랜드만의 고유한 문화도 함께 만들어낸다. 네이미스트 1세대로 현재 리앤브랜드하우스에서 브랜딩을 담당하고 있는 네이미스트 이미림 이사. 네이미스트를 천직으로 즐기는 그녀의 브랜드 이야기를 들어봤다.


 

 

 

네이미스트 이미림브랜드 전문회사인 KOTIC(한국상표자료센터), Sodium Partners를 거쳐 (주)크라운제과에서 Brand Maneger로 재직한 후 <리앤브랜드하우스>를 설립했다. 네이밍한 주요 브랜드는 해찬들, 예다손, 마이쮸, 삼성플라자, 쉬메릭 등으로 20여 년을 네이미스트로 활약하면서 수백여 개의 브랜드를 탄생시켰다.


  네이미스트는 어떤 일을 하나요?
  네이미스트는 어떤 서비스, 제품을 비롯해 회사에 이르기까지 그 이름을 전문적으로 만들어주는 사람을 말합니다. 제품의 경우, 첫인상을 결정짓는 게 바로 이름이지요. 요즘처럼 경쟁이 치열하고 온갖 제품들이 출시되는 시장경제 속에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참신하고 기억하기 쉬운 이름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때문에 네이미스트는 상품을 구매할 소비자층의 특성, 시장 환경, 상품에 대한 종합적인 안목이 필요합니다.  

  네이
미스트에게 필요한 자질에는 무엇이 있나요?
  먼저 다양한 분야에 대한 호기심과 언어적인 감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름이 시각적으로 어떤 이미지를 갖게 될지, 상품하고 어울리는지 판단하기 위해서 디자인 감각도 필요해요. 네이밍한 제품이 속한 분야에 유사상표가 이미 등록돼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야 하므로 상표법도 숙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성실성과 책임감, 열정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가를 받고 네이밍 작업을 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고객과의 약속도 숙명처럼 여겨야지요. 의뢰 고객이 만족할 수 있는 이름을 만들어야 하고, 한정된 시간 안에 일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점에서 일의 부담감이 많습니다.

  네이
미스트가 되기 전엔 카피라이터(copywriter)로 활동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피라이터와 비교했을 때, 네이미스트의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광고 카피는 솔직히 평소 사용해보지 않은 제품도 부풀려서 최고라고 표현해야 하고,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단어들을 많이 써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카피가 산문과 같은 느낌이라면 네이밍은 시에 비유할 수 있죠. 상징적인 의미를 찾아 한단어로 뽑아내는 네이밍은 제 성격과도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 이름이 없었어요. 부모님이 자식을 열 명 낳으셨는데 그 중 다섯이 죽었거든요. 제가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셔서 이름을 안 지어주신거죠.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저를 ‘이름이’라고 부르곤 했어요. 이름도 없었던 제가 이름을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네이미스트를 천직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브랜드 이름이 탄생하기까지 과정이 궁금합니다.
  네이밍은 그저 예쁘고 좋은 말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해당 제품의 명확한 컨셉에 맞춰 가장 적합한 브랜드를 찾아내야 합니다. 소비자가 공감할 수 있으면서도 특허청에 등록될 수 있는 새로운 이름이어야 하지요. 네이밍을 위해 이미지, 디자인, 마케팅, 시장 상황, 경쟁사 등 다방면으로 함께 검토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러고 나서 상표검색에 들어갑니다. 우리나라는 특허청에 상표를 등록해야만 그 상표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상표등록 가능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죠. 이런 과정을 거쳐 탄생된 브랜드가 잘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뿌듯합니다. 아직 시장에 출시되지 않은 제품들을 남보다 먼저 접할 수 있다는 점은 네이미스트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겠죠.

  네이미스트들의 네이밍에는 각자의 개성이나 특징이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이사님께서 지은 이름에서는 한국적인 느낌을 받았는데요.
  저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해찬들과 예다손은 각각 ‘해가 가득한 들녘’ ‘예를 다해 빚은 손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해찬들이라는 이름을 통해서 곡식을 여물게 하는 태양과 수확을 기다리는 풍성한 들녘의 이미지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예다손에는 장인의 손길로 정성스럽게 빚은, 친근하고 정갈하며 맛있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연상 작용에 의해 상징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름을 만드는 것을 좋아합니다. 영어이름이 훨씬 멋져보인다는 것이 정설일 때도 저는 늘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네이밍에도 트렌드가 있나요?
  패션업계만큼 트렌드에 민감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사회성은 반영됩니다. 한 때 회사이름 뒤에 닷컴(.com)을 붙였던 것도 일종의 트렌드라고 할 수 있죠. 저는 예전부터 한글과 영어를 조합해서 ‘우리말스러운’ 영어이름과 순우리말 이름을 만드는 것을 좋아했어요. 최근엔 이러한 형태의 이름들을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어서 뿌듯합니다.

 
네이밍 과정에서 탄생한 신조어가 많습니다. 그러한 신조어를 두고 한글파괴 또는 한글창조라는 상반된 의견이 분분한데요, 저는 한글이 어떤 언어와도 잘 어울린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이사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이밍 할 때는 기존의 것을 파괴해야 창의적이고 신선한 이름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우리말과 영어, 한자나 기타의 다른 언어들을 조합해서 이름을 만듭니다. 네이밍된 단어를 한글파괴가 아니라 브랜드 자체로 받아들였으면 좋겠어요. 또 네이밍은 하나의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브랜드를 만들 때 제품의 기능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제품에 어떠한 이미지를 담아서 어떠한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는 스토리텔링이 필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같은 콜라지만 코카콜라와 펩시 두 브랜드가 나타내는 문화가 서로 다른 것처럼 말이죠.

  흔히 어떤 일에 큰 감동을 받거나 기쁨을 느꼈을 때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지만 네이미스트는 회사의 이미지나 의미를 말(이름)로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한데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라는 말 한마디로 그 사람의 기분을 쉽게 알 수 있죠. 하지만 네이미스트는 상징적인 한 단어로 브랜드를 나타내야 해요. 그래서 창의성이 중요합니다. 이름을 살아있는 유기체처럼 의인화시켜 보기도 하고 자음과 모음도 분리해 봅니다. 엘본(elbon)이라는 브랜드가 알파벳 순서를 뒤집어 보면 귀족(noble)이 되는 것처럼요. 언어유희를 통해 단어나 이미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해 보는 거죠.

  운영하고 계신 블로그에서 “죽기 전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책을 내신다면 어떤 내용을 담고 싶으신가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네이밍에 관련된 서적을 기획하고 있어요. 벌써 네이밍 일을 한 지 20년이 되어 갑니다. 네이미스트로서 이제까지 네이밍 경험들과 하나의 브랜드가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브랜드의 상징성 등을 함께 소개하려고 해요. 제가 만든 브랜드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를 네이버 블로그에 짤막하게 써왔는데, 책에서는 좀 더 깊이 다룰 수 있을 것 같아요. 


담코너        
이미림 이사가 운영하는
브랜드 숲 블로그
http://blog.naver.com/brands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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