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뫼비우스의 띠
<제38회 학술문예상 소설 가작>뫼비우스의 띠
  • 김동현(사회복지 1)
  • 승인 2012.11.20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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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비
   우
   스의 띠

  병원의 대기실은 좁고 답답했다. 나는 다 읽은 패션잡지를 덮어 테이블위에 내팽개치듯 던져놓고 고개를 돌려 병원의 실내를 둘러보았다. 천장에 달린 에어컨, 정수기, 커피포트, 소파와 잡지꽂이, 데스크에 앉아있는 간호사들, 벽걸이 텔레비전, 그리고 벽에 붙어있는 세장의 포스터.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포스터가 붙어있는 텔레비전 옆의 벽 앞으로 걸어갔다. 포스터에는 각각 ‘학습클리닉’, ‘비만클리닉’, ‘정서치유클리닉’ 이라는 이름이 달려있었다. 내  두 눈이 ‘학습클리닉’과 ‘비만클리닉’에서 오래오래 머물렀다. 이 두 클리닉이 과연 신경정신과에 어울리는 걸까? 학습클리닉 때문에 이곳을 찾은 나조차도 쉽게 판단이 서질 않았다. 비만클리닉의 포스터에는 약물치료로 과식과 폭식을 예방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주사시술도 가능하다고 쓰여 있었다. 한참 포스터를 읽고 있는데 뒤통수가 뜨듯해졌다. 살짝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니 내 또래의 남자애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 애의 뒤틀린 윗입술이 열리고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야, 대가리 치워. 테레비 안 보여. 나는 흠칫 놀라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저 애는 왜 이곳을 찾은 걸까. 개처럼 으르렁 거리는 것을 보니 공격성이나 행동장애 때문에 ‘정서치유클리닉’을 찾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진료실의 문이 열렸다.

  선생님과 상담을 마치고 나온 엄마의 눈엔 눈물이 고여 있었다. 코를 풀었는지 코끝도 빨갰다. 어리둥절해 멍하니 엄마를 바라보았다. 도대체 검사 결과가 어떻길래? 영현이 너 많이 힘들었구나, 엄마한테 말을 하지 그랬어. 엄마의 입에서 목멘 소리가 흘러나왔다. 힘들었다니? 나는 18년 평생 내 삶이 더 할 나위 없이 만족스러웠다고 자부하는 사람인데? 외국어 영역의 성적이 약간 부진해(사실은 좀 많이. 아무리 공부하고 비싼 과외 선생을 붙여도 조금도 성적이 오르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학습 클리닉을 찾아오긴 했지만, 성적이나 그 다른 어떤 것 때문에 힘이 들거나 불행하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나는 언제나 행복했다. 내 어깨를 껴안으려는 엄마의 하얀 손이 떨리고 있었다. 김영현 학생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간호사의 말에 엄마의 손을 뿌리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나는 돌연 불안해졌다.

  클리닉을 추천해 준 건 지난해에 사촌 오빠를 의대에 보낸 고모였다. 보통 입시 컨설팅 학원과는 완전히 차별화 되었다는 이곳은 신경정신과와 입시컨설팅 학원의 중간 쯤 되는 곳이라고 했다. 신경정신과 의사와 입시학원의 강사의 경력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병원장이 특별히 고안한 개인분석법으로 학생의 의식을 학업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분석한다고 했다. 학생이 푼 문제들을 다 하나하나 해부해서 이 문제를 풀 때 뇌의 어떤 부분들이 사용되고, 어떤 판단능력에 추리능력이 적용되는지 까지 체계화해서 공부하는데 두뇌를 최고로 사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개발했다나. 곧 병원 내의 학습클리닉이 아닌 전문 기관으로 확장할거라는 이야기까지 고모는 상세하게 해 주었다. 외국어영역을 제외하면 모든 과목의 성적이 최상위권인 나에게 이런 분석적이고 전략적인 컨설팅만한 게 어디 있겠냐는 고모의 말을 듣는 엄마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다만 엄마가 상담을 받자고 하도 잔소리를 해대서 어쩔 수 없이 병원에 온 것뿐이었다. 검사결과도 내 평소 성격답게 ‘선천적인 낙천성으로 현재의 상태와 학업 성적에 안주하는 경향이 있음’ 뭐 이렇게 나올 거라고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울기까지 하다니, 설마 내가 외국어 학습 지진아라는 말을 들은 건 아니겠지? 그러자 지난 주 이 시간에 있었던 상담이 떠올랐다. 상담을 너무 엉터리로 받지 않았나하는 걱정이 나를 엄습했다.

*

  “부담 갖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편하게 말해. 알았지?”
자신을 심리상담사라고 소개한 여자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경쾌한 목소리나 시원시원한 웃음이 밝은 인상을 주는 젊은 여자였다. 여자의 질문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영현이 네가 제일 걱정하는 건 뭐니? 이런 추상적인 질문은 딱 질색인데,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무심코 고개를 숙였다. 그 때 여자가 팔목에 찬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큐빅으로 조잡하게 박아놓은 샤넬로고 아래에 channel, 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 채널이라니, 짝퉁이네. 순간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웃지 않으려고 애쓰며 최대한 무심하게 말했다. 값싼 욕망이나 허영에 물들지 않는 거요. 채널시계를 찬 저 여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여자를 바라보았다. 시계의 잔상이 아직도 머리에 남아있어 자꾸 웃음이 나왔다. 응, 그렇구나. 그럼 영현이 네가 믿는 건 뭐니? 이마위에 옆으로 늘어져 있던 앞머리를 쓸어 올려 귀 뒤로 넘기며 여자가 물었다. 이마와 귀를 드러낸 여자의 얼굴을 보자 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 봤을 때부터 어딘지 모르게 낯익은 얼굴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마를 드러낸 여자의 얼굴은 불상을 매우 닮아있었다. 눈썹과 눈썹 사이에 있는 새끼 손톱만한 붉은 점, 갈색 색연필을 칠해놓은 듯 어설픈 눈썹화장, 가늘고 긴 눈과 크고 길게 늘어진 귀, 작고 빨간 입술까지 불상의 얼굴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나는 웃지 않으려 눈을 부릅뜨고 허벅지를 꼬집었다. 전, 사후세계와 영혼을 믿어요. 불상을 닮은 여자를 보며 즉흥적으로 꺼낸 말이었다. ‘불상’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 그럼 네가 신이라면 어땠을 거 같아? 아, 불상이 계속 부처 같은 소리만 하고 있네. 너무나 웃겨서 웃음을 참으려고 엄지손가락에 거스러미를 세게 뜯었다. 아파야 웃음도 덜 나올 것 같았다. 웃음을 참는 것은 울음을 참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나는 원체 웃음이 많아 웃지 않아야 할 자리에서 웃음이 터져 자주 곤혹스러움을 느꼈다. 이를테면 장례식장에서의 누군가의 구멍난 양말, 꾸중을 하는 선생님의 잇새에 낀 고춧가루, 분위기를 잡는 말을 하는 남자친구의 콧속의 털 등. 한번이라도 웃음을 참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이다. 머릿속은 웃음을 유발하는 그 대상으로 가득차고, 어떤 슬프고 불쾌한 생각도 그 우스운 상황 앞에서 힘을 잃는다. 불상을 닮은 여자 앞에서 나는 점점 자제력을 잃어갔다.
  이미 내 얼굴은 아주 희한하게 뒤틀려있을 것이다. 손발에 점점 힘이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왜 말이 없니? 대답하기 어렵니? 불상이 내게 대답을 재촉해왔다. 이제 심리 상담이고 뭐고 안중에도 없었다. 머릿속은 웃음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가득차고, 이제 내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도 모를 지경까지 이르렀다. 글쎄요, 이런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그런데 저…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오면 안 될까요? 불상은 불상을 닮은 인자한 외모답게 순순히 그러라고 말했다. 아, 이게 바로 자비정신인가. 나는 상담실을 나와 재빨리 화장실로 가 왁자하게 웃어댔다. 으핫핫핫핫핫. 우하하하핫. 몇 분간 배가 아프도록 웃고 나서야 다시 불상에게로 돌아가 심리 상담을 받았다. 그 뒤의 기억은 잘 떠오르지 않았지만, 웃음 참기 서바이벌 때문에 상담을 엉터리로 치렀다는 사실만은 확실히 기억났다.

*

  진료실로 들어가자 의사 선생님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책상 앞에 놓인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자 선생님이 내게 클리어 파일 하나를 건넸다. 일단 앉아서 이걸 좀 읽어볼래? 파일 안에는 보고서 하나가 들어있었다. 내 눈은 빠르게 그걸 훑어 내려갔다.
  ‘…외부환경에 대한 과민함과 경계하는 면도 증가되어 있어 타인에 반응에 대해 오해를 하거나 시니컬하게 반응하는 등 반항적인 태도로 과잉보상하려는 면이 나타나 있다. (Q.내가 제일 걱정하는 것은? A.값싼 욕망이나 허영에 물드는 것.) 심리적 고통감을 방어하는 방법으로 주지화를 사용하고 있어 과도하게 사변적이고 관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현실적인 판단력 및 인식력이 다소 약화되어 있는 상태로 판단된다(Q.내가 믿는 것은? A.영혼과 사후세계/ Q.내가 신이라면? A.이런 상황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 상담태도는 다소 비협조적이었으며 시종 불편한 표정과 퉁명스러운 어투로 상담에 임했다.’

  “선생님 이거 검사결과 확실한 거예요? 사실 저 이거 대답 다 엉망으로 했어요. 자꾸 우스운 생각이 나서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단 말이에요. 그리고 이건 전혀 제가 아니에요. 전 원래 엄청 낙천적인 사람인데…. 다시 하면 정말 잘 할 수 있어요.”
  “음… 원래 자기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과 실제의 모습이 꼭 같지만은 않아. 오히려 다르다고도 할 수 있어. 너처럼 상담결과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상담결과에는 의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단다. 어머니가 너에 대해 하신 말씀이랑 상담사 선생님이 상담한 내용, 여러 가지 검사 결과가 다 일치하는 걸 보면 상담결과의 신빙성을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 그리고 로샤 검사,  그림카드 검사했던 거 기억나니? 이게 일종의 정서 검산데, 너는 그림카드를 보고 피 흘리는 두더지, 인체의 장기, 병원의 수술실, 인간의 신체 같은 걸 떠올렸어. 이건 자기부적절감이나 무가치감이 증가되어서 심리적 고통이 현저한 상태라는 거거든?”
  그림카드들을 보고 내가 그렇게 말했었나? 불상을 닮은 여자가 꺼낸 그림카드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그림들이 찍혀있었다. 물감을 흘려놓은 것 같기도 하고, 데칼코마니작품 같기도 한 추상적인 그림들이었다. 카드를 보여주며 불상이 말했다. 이 카드를 보고 네가 뭘 느끼는지 말해주면 돼. 현미경 속에서 보는 구강상피세포 같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하면 더욱 좋고. 그 말 때문에 자꾸 생물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떠올랐다. 마침 지난주에 과학실에서 구강상피세포 보는 실험을 해서 더욱 그랬다. 모든 그림카드는 생물과 관련된 것으로 보였고, 상담 전날 새벽까지 병원 응급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를 본 잔상이 오래오래 남아있어 그런 대답들을 한 모양이었다.
  “어머니가 네 이야기를 나한테 좀 해주셨어. 작년에 과학고에 떨어지고 많이 힘들어 했다면서. 그리고 의대에 간 사촌 오빠랑 우등생인 남동생한테 열등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도…. 너는 인물화를 그리는 검사에서도 얼굴의 눈, 코, 입 을 모두 생략했잖아. 팔도 뒷짐을 지도록 그려서 손가락도 그리지 않았고. 다리 부분은 잘려진 채로 그렸고. 이렇게 세부 묘사가 생략되어 있다는 건, 자기상이 상당 수준 왜곡되어 있고 자괴감, 자기 열등감이 증가되어 있다는 거야.”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자니 할 말이 없었다. 사촌 오빠와 남동생에게 약간 열등감을 느끼긴 했지만 심한 건 아니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인물화 검사결과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았다. 사람의 눈, 코, 입과 손가락을 그리지 않은 건 내가 워낙 그 부분을 잘 못 그려서 그리지 않았던 거였다. 사람을 그리라는 말에 내가 자동적으로 떠올린 건 상담을 기다리며 대기실에서 읽었던 패션잡지의 사진이었다. 눈, 코, 입이 없고 뒷짐을 진 마네킹의 사진이 실린 기사 때문에, 사람을 그리라는 말에 자동적으로 그 사진을 떠올렸던 것 같다. 옷을 돋보이게 하려면 마네킹의 얼굴이 단순할수록 좋다는 디자이너의 말이 실린 기사를 말이다. 그 모든 것을 의사에게 설명하고 싶었지만 믿어주지 않을 거 같아 그냥 잠자코 있었다.
  “어머니는 네가 치료가 필요할 것 같다고 하더라. 나도 물론 그렇게 생각하고. 다음 주 이 시간에 상담 괜찮니?”
  의사가 내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와서도 엄마는 계속 내 표정을 살폈다. 평소와 달리 일부러 더 잘해주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더 신경 쓰여 빽 소리를 내질렀다.
  “아, 엄마 나한테 자꾸 왜 그래? 그 의사 말 다 믿는 거야?”
  이게 엄마한테 어디서 소리를 지르냐고 꾸중을 할 줄 알았는데, 엄마는 뜻밖에 조용히 말했다.
  “아까 검사결과 보고 선생님 말씀 들으니까 많은 생각이 들더라. 네가 그렇게 된 게 다 내 탓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너 과학고 떨어지고 나서도 의대가라고 난리친 거 미안하기도 하고….”
  “나 괜찮다는데 엄마 왜 자꾸 그래. 근데 그 병원 좀 이상해. 원래 학습클리닉이 다 이래? 멀쩡한 사람 괜히 병자 취급하고 말이야. 엄만 의사한테 무슨 얘기를 했길래 의사가 나를 그렇게 불쌍한 애로 보는 거야? 엄마가 평소에 보는 내 모습이 그랬나보지?”
  “사실 나도 네가 낙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검사 결과를 보니까 내가 잘못 생각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가끔씩 네가 말이 없거나 아예 이상한 소리 할 때 있잖아. 공기에 색이 있다면 어떤 빛깔일까, 휘파람 소리는 어떤 색일까, 뭐 이렇게. 이 얘기를 선생님한테 하니까 자괴감이 강하면 현실에 적응하기보다 몽상에 빠지는 경향이 있대. 뭣보다 너 요즘 부쩍 짜증도 심해지고 우울해하니까 그랬나보다 싶어서….”
  엄마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평소와는 다른 엄마의 다정한 손길이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

  “선생님 저 병원치료 때문에 오늘 보충수업 못 들을 거 같아요. 그리고 앞으로 매주 수요일은 계속 그럴 것 같은데…”
  출석부에 눈을 박고 있던 담임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왜 그러는데? 아, 그게 제가 좀 아파서요. 그러니까 왜, 어디가 아픈 건데.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을 받자 어떻게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정신과 치료를 받으러 다니거든요, 라고 말하기가 왠지 껄끄러웠다. 예체능하는 애들도 다 듣는 보충수업이야. 한 명씩 빼주기 시작하면 다른 애들도 다 빼달라고 할 거야. 절대 안 돼. 보충을 빠지면서까지 병원에서 상담을 받고 싶은 건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완강한 담임을 보니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겼다. 저 지금 신경정신과 치료받고 있단 말이에요. 나도 모르게 불쑥 말을 뱉어버렸다. 담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뭐? 신경정신과? 지난해에 성적비관과 우울증으로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선배 때문에 한참 동안 학교가 소란스러웠다. 학교에선 학교상담실을 활성화 하겠다는 둥, 전문 상담교사를 배치하겠다는 둥 말이 많았는데 그 후에도 상담실이 제대로 운영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던 담임이 엄마의 휴대폰 번호를 적어달라고 하며 조퇴확인서를 건넸다. 혹시 오늘 병원 가면 내일 학교 올 때 진단서 좀 떼어 올 수 있겠니? 앞으로도 계속 조퇴하면 출석부에 서류를 좀 첨부해야 할 것 같아서.
  꾸벅 인사를 하고 교무실을 나왔다. 정신과 치료, 라는 말에 담임의 태도가 삼초 만에 180도로 바뀌었다. 겨우 정신과 치료 하나가지고 다들 왜 이렇게 난리람, 촌스럽게 시리. 보충수업을 빠지게 된 건 다행이었지만 심장위에 돌멩이 하나가 얹힌 듯 가슴이 답답해왔다.
*

  “그래… 참 많이 힘들었겠구나.”
  요 몇 주 간 불상을 닮은 치료사가 아니라 엄마 또래의 아주머니 심리치료사와 상담을 했다. 내 말을 들을 때마다 치료사의 얼굴에는 언제나 진심으로 안타까운 빛이 어려 있었다. 상처를 치유하려면 그 상처를 직접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며, 힘들었던 일들을 묻기에 모두 말해주었다. 우등생인 사촌 오빠와 동생과의 비교, 과학고에 떨어진 일, 내가 과학 고등학교에 응시하던 해에 있었던 입시비리, 의대에 가라는 엄마의 성화, 아무리 노력해도 오르지 않는 영어성적, 과학고 입시 실패 후유증으로 자퇴까지 고려했던 일 등 크고 작은 일들을 모두 말해주었다. 너무도 힘들어서 견딜 수 없었던 일들은 아니었지만, 이런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나는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 정도의 일들은 누구나 겪었을 평범한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무도 심각하고 진지하게 듣고 있는 치료사를 보자, 내가 정말로 힘들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나라도 그랬을 거야. 얼마나 속상했겠니.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나의 모든 말 위에 치료사는 위로와 격려를 한 바구니씩 얹어주었다. 사실 나는 전혀 불행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은 자꾸 상처를 찾아 치료해 주려는 강박증환자들 같았다. 나를 끌고 병원을 찾은 엄마마저도 내가 애초에 이곳에 온 이유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학·습·클·리·닉’ 엄마와 내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나의 부진한 학습능력 때문이었지 정서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가장 참을 수 없는 건 나를 가엾고 불쌍한 아이로 생각하니 나 자신마저도 그렇게 생각되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말해도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괜찮지 않았다. 어휴. 나는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이제 괜찮은 거니? 요새는 힘든 일 없고?”
  “좀 짜증나는 일은 있어요.”
  “응…그래? 혹시 말해줄 수 있니?”
  치료사의 말투는 너무 조심스러워서 오히려 답답했다. 함부로 말을 해서 상처를 입히는 것보단 나았지만 상대를 지나치게 의식하는 대화도 결코 유쾌하지는 않았다. 이 병원의 사람들은 나를 이렇게 대했다. 아니, 이제 엄마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과, 학교의 담임선생님까지 그랬다.
  “이 병원 말이에요. 학습클리닉이 뭐 이래요? 심리학과 입시를 접목시키면 이런가요? 다들 나를 너무 아픈 사람 취급하잖아요. 사실 그 불상 닮은 선생님이랑 상담한 건 완전 엉터리였단 말이에요. 겨우 그깟 검사결과 하나가지고…”
  순간, 치료사의 얼굴이 돌처럼 굳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달싹이는 입술을 열어 내게 물었다. 학습…클리닉에 온 거라고? 우리는 여태껏… 정서치유클리닉 프로그램대로 너를 상담했는데. 데스크에서 뭔가…착오가 있었나? 잠깐만. 내가 나가서 확인하고 올게. 치료사가 밖으로 나가자 상담실엔 나 혼자 남았다. 무언가에 홀린 듯 머리가 멍-했다. 나 참.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이 흘러나왔다.

  “지금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아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럼 검사 결과도 다 엉망이었던 거 아니에요? 우리 애를 지금까지 뭘로 보고 있었던 거야. 여태 시간 날리고 돈 날린 거 어떻게 책임질 거예욧!”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같은 날짜에 정서치유 클리닉을 신청한 학생이 한명 있어서, 제가 헷갈렸나 봐요.”
  데스크에서 접수를 받는 간호사가 불같이 화를 내는 엄마 앞에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엄마도 병원 사람들과 같은 시선으로 나를 보고 있었으면서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병원에서 상담 결과가 나오는 족족 아빠와 동생에게 내가 어떤 상태인지 모두 보고하던 엄마가 말이다. 의사선생님까지 나와 엄마에게 사과를 하고 난 후에야 엄마는 진정되었다. 저… 그러면 다음 주부터 학습클리닉 프로그램으로 조정…. 간호사의 말에 엄마가 다시 소리를 지르려는 순간, 내가 엄마 대신 말했다. 조금 생각해보고 다시 올게요. 미리 부탁해 놓은 진단서가 담긴 엄마의 핸드백을 들고 엄마의 팔을 잡고 병원을 나왔다. 앞으로 두 번 다시 병원에 올 일은 없을 것이다. 보충수업에 빠질 일도 없을 것이다. 쓸모없어진 진단서를 가방에서 꺼내 버리려고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쓰레기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종이를 대충 두어 번 접어 교복치마 주머니에 넣었다. 바스락, 하고 종이 구겨지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번에 받은 심리평가서도 엄마의 가방에 그대로 있었다. 나는 그것도 꺼내 아무렇게나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

  눈을 뜨자 불쾌한 소독약 냄새가 콧속으로 감겨들었다. 얼마나 잔걸까. 양호실 창문으로 강한 햇살이 들어오고 있었다. 요 며칠 원인을 알 수 없는 두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오늘은 머리가 너무 심하게 지끈거려서 몇 시간 동안 양호실에 누워있어야 했다. 시간을 보니 이미 6교시 수업이 시작했을 시각이었다. 너무 많이 잤다. 침대에서 일어나 서둘러 교실로 올라갔다. 조용히 교실 뒷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나는 소리나지 않게 내 자리로 가서 앉았다. 교과서를 꺼내려 책상서랍에 손을 넣자 종이 몇 장이 바스락거리며 잡혔다. 나는 그걸 꺼냈다. 겉표지에 내 이름이 쓰여 있는 그 종이는… 병원에서 받은 진단서와 심리평가서였다. 내 주머니 속에 있어야 할 게 왜 여기에 있는 걸까. 아무래도 의자에 앉고 일어설 때 주머니에서 나와 바닥에 떨어진 것 같았다. 여러 명의 아이들이 돌려보았는지 종이는 심하게 구겨지고 때 묻은 손자국들로 얼룩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교실의 아이들을 둘러보았다. 몇 명이나 이걸 읽었을까, 이걸 읽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일부러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는 건지, 아무도 내 쪽을 쳐다보지 않고 교과서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온몸에 힘이 풀리면서 심한 두통이 다시 시작되었다. 두려움도 함께 엄습하면서 심장이 쿵쾅거렸다. 수업 종료를 알리는 벨이 울릴 때까지 나는 팔에 얼굴을 묻고 책상에 엎드렸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자 친한 친구들 몇 명이 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여태껏 많이 힘들었구나. 왜 말 안했어. 쉬는 시간이라 평소라면 소란스러웠을 교실이 물속처럼 조용했다. 아이들의 시선이 내 등 뒤로 날아와 화살처럼 꽂히는 것 같았다. 나는 책상에 묻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

  나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눈에 띠게 달라졌다. 친절함을 가장한 거리두기, 라고 해야 하나. 엄마가 학습클리닉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신경정신과,라는 단어를 처음 입에 올렸을 때, 아빠가 펄쩍 뛰며 했던 말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부유했다. 정신질환경력 만들면 애 사회생활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몰라? 신경정신과, 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1차적인 반응의 예로 아빠만큼 적합한 사람도 없었다. 급기야 선생님까지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반장이 가져온 진단서랑 보고서 같은 거, 읽었어.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말하렴. 나쁜 생각 같은 거 절대 하지말구. 선생님 뭔가 오해하시는 거 같은데요… 해명을 하려고 했지만 무엇을 말해야 할지 막막해 그만 두었다. 교무실의 선생님들이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나는 나를 향하는 모든 눈들이 무서워졌다. 나와 마주치는 모든 눈들은 희번덕거리며 탐욕스럽게 무언가를 묻고 있었다. 

*

  기억속의 구절들이 문득문득 튀어나왔다.

  남동생이 꺼낸 상장에 엄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1학기 우등상장이었다. 엄마보다 키가 큰 녀석을 엄마가 꼬옥 끌어안았다. 잘했어, 우리 아들!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갈비 해줄까? 엄마의 말에 동생은 이를 드러내며 히히 웃어보였다. 가슴 속으로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지나가는 것 같았다. 난 원래 별로 공부도 못하는 쓰레기니까 이런 대접이 당연하지 뭐, 저 애는 공부도 잘하고 착하니까 저런 대접을 받아 마땅한 거고. 순간 머릿속으로 문장 한 개가 스쳐지나갔다. 동생에 대한 열등감도 상당 수준 내재되어 자기상이 더욱 부정적으로 공고화될 소지가 있어보인다.  보고서에 적혀있던 구절이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내 자신을 다독였다. 보고서는 보고서일 뿐이다. 그것도 잘못된.

  학교가 파하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데 저 멀리서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여학생들이 내 쪽으로 걸어오고 왔다. 까르르르, 튀밥처럼 톡톡 터지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왠지 눈에 익은 교복이다 싶어서 교복 상의에 붙은 표찰을 유심히 보니 내가 지원했다 떨어진 과학 고등학교의 것이었다. 내 의식 밑바닥에 잠들어있던 분노의 응어리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나는 가방을 옆으로 메고 경보하듯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나와 여학생 무리의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그 무리가 내 옆을 스칠 때, 무리 중 가장자리에서 걷던 여학생을 책이 가득 든 가방으로 일부러 퍽, 하고 쳤다. 아얏, 하는 소리와 함께 여학생이 휘청거렸다. 나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더욱 빠르게 걸었다. 쟤 뭐야? 사과도 안하네? 많이 다친 거 아니지? 여학생들이 수런거리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 알 수 없는 쾌감에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하게 떨렸다. 기분이 좋아져 혼자 웃는데 눈앞에 보고서에서 봤던 문장 하나가 떠올랐다. 과학고 입시 비리 목격으로 인한 충격과, 입시 실패로 인한 일종의 피해의식의 발로로 다소 공격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나는 내가 무서워졌다.

*

  닫힌 문틈 사이로 거실에서 터진 왁자한 웃음소리가 새어 들어왔다. 오래간만의 고모의 방문은 짜증만 날 뿐이었다. 나는 고모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내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모두 다 사라져버렸으면 좋겠어, 중얼거리며 침대에 누워 맹렬하게 다리를 떨면서 손톱을 물어뜯었다. 더 이상 뜯을 손톱이 없는데도 계속 물어뜯자 비릿한 피가 흘러나왔다. 뚝뚝, 빨간 피 몇 방울이 하얀 침대 시트위에 배어들었다. 아휴, 올케는 좋겠어. 영훈이 이번에도 전교 1등 했다며, 수시로 원하는 데 맘대로 골라서 갈수 있겠네. 어머, 형님 아니에요. 종민이는 이번에 의대에서 차석했다면서요. 수재들도 가기 어렵다는 그 학교에서 차석이면 진짜 대단한 거죠. 전교 1등과 전교 1등의 엄마와 전교 1등 엄마의 남편과 의대 차석과 의대 차석의 엄마와 의대 차석 엄마의 남편이 즐겁게 웃는 소리가 뒤섞여 집안을 어지럽게 흔들었다. 예의 두통이 도지며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내 성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떨어져 이젠 문자 그대로 바닥을 기고 있었다. 성적이 떨어져도 담임은 죽지 말라는 소리만 했다. 나를 병자 보듯 하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시선에, 친했던 친구들도 하나씩 멀어져갔다. 함께 다닐 때마다 등 뒤에서 들려오는, 야, 쟤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애라며? 어쩐지, 만날 바보같이 웃고 다닐 때부터 알아 봤다니까, 와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진위여부에 상관없이 누구나 그 사람을 멀리하고 싶어지기 마련일 테니까.
  올케, 그런데 영현이는 자는 거야? 네. 아파서 자요. 요즘 영현이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큰일이에요. 성적도 엄청 떨어지고…. 지 앞가림이나 하면서 살 수 있을런지… 예전엔 똑똑했던 애가 왜 저러나 모르겠어요. 영훈이 반에 반만 닮아도 좋을 텐데…. 영훈이 반에 반만 닮아도 좋을 텐데…. 영훈이 반에 반만 닮아도 좋을 텐데…. 영훈이 반에 반만 닮아도 좋을 텐데…. 엄마의 넋두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영훈이 반에 반도 못되는 나는 여태껏 엄마의 집에서 엄마가 주는 밥을 먹으며 기식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발딱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탁한 먹색의 밤하늘에 붉은 달이 떠있었다. 짙은 밤안개에 붉은 달이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어와 엉클어진 내 머리카락을 헤집어놓았다. 나는 방충망을 열었다. 베란다 난간에 몸을 기대고 차가운 바람을 만끽했다. 안경을 끼지 않아서 그런지 아파트 아래로 보이는 사물들이 어룽어룽했다. 또 한 번 세찬 바람이 불어와 머리와 잠옷자락을 흔들었다. 나는 몸을 좀 더 기울이고 두 팔을 벌렸다. 어휴, 내가 저걸 낳고 미역국을 먹었지. 누굴 닮아서 저러나 몰라.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바깥으로 몸을 더 기울였다. 아파트의 정원수로 심어놓은 소나무가 한층 더 가까워 졌다. 순간, 날카로운 이파리에 피부를 찔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나는 난간에 기대어 좀 더 손을 뻗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곧 솔잎에 내 손이 닿을 것 같았다. 기우뚱- 체중이 앞으로 쏠리며 몸이 중심을 잃었다. 엇! 내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튀어나왔다. 그 누군가가 나를 갑자기 끌어당기기라도 한 듯 나는 순식간에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귓가에서 쉭쉭거리며 바람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리고 흰 잠옷자락이 날개처럼 펄럭였다. 아파트 1층의 나무와 자동차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내 몸이 빠른 속도로 추락하는 그 찰나의 순간, 허공에서 깜빡이는 글자의 환영을 보았다. 심리적으로 상당히 불안정한 상태로 자신에 대한 불만족감 및 자기-무능감에 기인하는 분노감, 불안감, 무력감이 증가되어 장기화될 경우 현실 검증력이 약화되는 등 사고과정의 불안정한 상태로 심화될 소지가 있으므로 정서적 및 사고활동의 불안정성에 대한 치료적 개입이 요구된다. 힘들었지? 나도 그랬어. 힘 내. 옆에 있어줄게. 이제 괜찮아. 언제나 내 옆을 맴돌았던 부질없는 위로와 격려들이 바람소리와 섞여 귓바퀴에서 맴돌았다. 아니, 나는 안 괜찮아. 나는 혼자서 웅얼거렸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가 더욱 거세져 아프게 귀를 때렸다. 땅위의 사물들이 점점 가까워졌다.

*

  병실 침대에서 꼬박 56일을 누워있던 후에야 그곳에서 벗어 날 수 있었다. 전치 8주,가 정형외과의사의 진단이었지만 8주가 지나도 뼈는 쉽게 붙지 않았다. 아파트 10층에서 뛰어내린다고 꼭 죽는 것은 아니다. 운 좋게 아파트의 정원수 위에 떨어지면 온몸의 뼈가 열 세군데가 부러질지언정 목숨은 건질 수 있다. 깁스를 한 목이 욱신거리기 시작하면서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예의 두통이 또 말썽이다. 병원은 어딜 가나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천장에 달린 에어컨, 정수기, 커피포트, 소파와 잡지꽂이, 데스크에 앉아있는 간호사들, 벽걸이 텔레비전, 그리고 텔레비전 옆 벽에 여러 장의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머리가 더욱 지끈거렸다. 익숙한 풍경이 눈앞에서 이지러졌다. 예전에 한번 와 본적이 있는 것도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텔레비전으로 눈을 돌렸다. 그 때, 내 또래의 남자아이 한명이 벽에 붙은 포스터 쪽으로 다가가 머리로 텔레비전을 가렸다. 야, 대가리 치워. 테레비 안 보여. 내 입에서 낮고 위협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남자아이는 흠칫 놀라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진료실 문이 열리고 엄마가 나왔다. 엄마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었다. 김영현 학생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간호사가 말하자 엄마가 휠체어를 밀어 나를 진료실에 데려다주고 나갔다. 진료실로 들어가자 의사 선생님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고 내게 보고서가 든 클리어 파일을 건넸다. 팔의 기브스 때문에 나는 그것을 받을 수 없었지만 어떤 내용인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냥, 알 것 같았다.

<제38회 학술문예상 소설 수상소감>
  당선소식을 듣는 순간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부끄러움이었습니다. 너무나 헐겁고 성긴 문장, 초라한 발상으로 써낸 글이 과분한 상을 받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올 한 해의 행운을 다 써버린 기분이 들 만큼 행복하고 기쁩니다. 무엇보다 습작이나 필사 같은 단어들과 점점 멀어지고 있는 요즘, 이 상은 제게 많은 것을 되돌아보게 만듭니다.
  단 한 구절의 시, 단 한 소절의 음악, 단 한 점의 그림이 저의 전 세계를 뒤흔들어 놓던 적이 있었습니다. 수많은 문장들이 저를 밤새 서성이게 했고 글을 쓸 때에만 오롯이 나 자신임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모든 것은 저를 비껴갔습니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내내 글을 쓴다고 썼지만 문예창작과 입시에서 모두 낙방을 하고 난 뒤부터인지, 아니면 참가하는 공모전마다 번번이 탈락만 하던 뒤부터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글을 쓰지 못해 미칠 듯이 괴롭던 시간도 모두 지나가고, 일상의 안온함에 젖어 게으르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줄곧 열패감에 시달렸고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가장 하고 싶은 단 하나의 이야기를 써보라던 한 친구의 말을 들었고, 타인의 시선과 낙인이 우리에게 어떻게 굴레가 되는지에 대한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방황의 나날 끝에 얻은 결실이기에 이 상은 제게 의미가 큽니다. 더욱 노력하라는 격려와 위로의 박수로 여기고 앞으로 계속 정진에 힘쓰겠습니다. 한없이 부끄럽고 부족한 글을 읽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한 언제나 기꺼이 저의 애독자가 되어주는 문우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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