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8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정말 기적처럼.
<제38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정말 기적처럼.
  • 이다현(수학 1)
  • 승인 2012.11.20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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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기적처럼.

  열일곱 봄,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른들은 우리를 낙엽만 굴러가도 웃을 나이라고 했지만 나는 아니었다.
입학을 위한 건강검진에서 나는 우울증이 심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목련이 아름답게 핀 교정에 서있는 나의 얼굴엔 어떤 표정도 없었다. 즐거움도 슬픔도 심지어 우울감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영혼 없는 밀랍인형처럼 삶에 대한 의욕도 순간의 감정도 없이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씻은 듯이 나았다. 마치 다친 손가락을 언젠가 다시 쳐다보았던 날, 상처의 자리조차 집어 내지 못할 정도로 깨끗이 나았던 경험처럼. 그 언젠가 나의 마음의 상처도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소소한 행복에 까르르 웃는 나를 본 것이다.
  그렇게 나는 무사히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원하던 대학에 입학했다. 내가 평범한 여대생이 되어 더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그해 봄날 나와 가장 친했던 옛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그 친구는 대학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해 정신과 치료를 받게 되었다고 말했다. 힘들어 하는 친구의 모습이 마치 3년 전 나의 모습인 것만 같았다. 통화를 끝낸 후 나는 한참동안 생각에 잠겼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주리라 생각했지만, 우습게도 나는 당장 그녀가 있는 지방까지 달려가 줄 형편도 못되는 가난한 학생일 뿐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그녀와 매일 같이 통화를 했다. 통화를 끝낸 나는 방에 우두커니 앉아서 내일은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곰곰이 생각했다. 그 한마디가 나의 친구를 기적처럼 치유해주리라, 모든 것을 돌려놓아 주리라 믿었다. 기적 같은 한마디를 찾는 숙제. 그것이 스무 살짜리 내가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전부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우울증은 심해져 갔고 나의 숙제는 어려워졌다. 그녀에게 해줄 말을 찾지 못해 그녀의 넋두리를 가만히 들어만 주는 날이 늘어갔다. 이제는 친구를 위한 말 한마디조차도 떠오르지 않는다는 것이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한편으로 나의 노력은 아랑곳 하지 않고 점점 더 어두워지는 친구가 야속했다. 그렇게 나와 친구는 지쳐갔고 우리의 통화도 뜸해졌다.

  그해 유난히도 덥던 여름 어느 날 춘천의 한 모텔에서 남녀가 연탄을 이용해 동반자살을 했다는 뉴스를 보았다. 아나운서의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나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불길한 직감은 현실이 되었다.
  ‘아줌마가 너희 친구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 하구나’ 친구의 전화를 대신 받은 아주머니는 내게 친구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심장이 내려앉은 것만 같았다. 떨칠 수없는 죄책감, 그 순간 나의 기억 속에 파노라마처럼 그 친구와의 추억이 떠올랐다. 내가 가장 힘들었던 열일곱 봄, 그 친구는 항상 내 곁을 지켜주었다. 비록 기적 같은 말은 없었지만 항상 묵묵히 내 곁에 있어주었다. 그 친구가 내 옆에 있었기에 나는 다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순간을 추억하며 나는 내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는지 깨달았다. 지금껏 나는 나의 우울증이 갑자기 나았다고 믿어왔지만, 결국 그 친구가 나의 곁에 있었기에 나는 씻은 듯이 나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녀가 힘들어 하던 그 순간, 나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핑계로 그녀 곁을 피했다니. 그녀에게 너무 큰 죄를 졌다는 생각에 무섭고 두려웠다. 지금도 나는 그때의 가슴 아픔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다시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후회스럽고 두렵고 무서운 그런 아픔이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부끄럽게도 나의 죄책감은 무뎌졌다. 남은 우리에게 그녀의 비보는 감당하기 힘든 아픔이기도 했지만, 많은 교훈이 담긴 선물이기도 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내가 지나온 순간들을 기억해본다. 흘러온 시간 동안 많은 이들이 떠났고 또 많은 이들이 돌아왔다. 기적은 모든 곳의 문을 두드리지 않는다. 어쩌면 단 한곳도 두드리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내가 그 친구를 위한 기적 같은 한마디를 찾지 못한 것처럼. 그래도 우리는 기적처럼 살아간다. 떠난 뒤에도, 돌아온 후에도 삶은 여전히 사랑하기 때문에 기적이다. 가끔은 전할 수 없던 말들이 전달된다. 때로는 마음으로 때로는 체온으로 때로는 시선으로. 사랑은 어떻게든 말하고야 만다. 팔과 다리와 시선 끝으로. 정말 기적처럼.

 

<제38회 학술문예상 수필 수상소감>
  우선, 여러 모로 부족한 저의 글을 좋게 심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중간고사 기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덕성여대신문사의 학술문예상 공고를 보았습니다. 언젠가는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던 터라 수필부문에 공모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이야기로 나의 첫 작품을 써냈다는 것만 해도 참 소중한 경험인데 이렇게 수상까지 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저는 이번 공모전을 통해 얻게 된 것이 참 많습니다. 처음 써보는 글이다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정하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습니다. ‘나는 어떤 소재를 갖고 있는 사람인가’ 고민을 하며 스스로에 대해 많이 되돌아 볼 수 있었습니다. 나의 경험을 글로 풀어내며 보고 느낀 것을 표현하는 방법 또한 배울 수 있었습니다. 더욱이 생각지도 못한 좋은 결과가 있어 참 소중한 추억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저의 첫 수필, 상장, 그리고 제 글이 실린 이 신문은 정말 소중한 보물이 될 것 같습니다. 짧은 수필이지만 글을 쓰기 위해 많은 생각을 했고, 글을 고치기도 여러 번 반복했습니다. 글 쓰는 과정은 마냥 힘든 것이라 생각했는데 막상 직접 글을 써보니 재미있고 즐거웠습니다. 창작의 즐거움을 배운 것 같습니다. 많이 미흡한 저의 글이 상을 받게 된다는 것이, 다른 학우들이 제 글을 읽게 된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내심 저의 이름이, 저의 글이 신문에 실린다니 설레기도 합니다. 이번 학술문예상 도전과 수상은 저의 문학 공부에 많은 동기부여가 되었습니다. 또한 글쓰기에 대한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이번 도전을 시작으로 앞으로 더 많이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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