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20대에 의한, 20대를 위한
20대의, 20대에 의한, 20대를 위한
  • 손혜경 기자
  • 승인 2013.03.05 16: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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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월간지 <듀르나> 박민정 편집장

  
  한없이 무거워 보이는 ‘시사’라는 단어에 그 편집장 또한 너무나 진지한 사람이 아닐까 기자는 걱정했다. 그러나 박민정 편집장과 마주앉자 우려는 곧 사라졌다.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수다 떠는 모습이 남들에겐 예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람들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20대 소통의 장을 만들고 싶었죠
 
  <듀르나>는 작년 9월 창간된 20대 겨냥 시사월간지다. 현재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국 40여 개 대학에 배포되고 있는 갓 걸음마를 뗀 신생 월간지지만 과거 서울시내 15개 대학에만 배포됐던 시절에 비하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뤄냈다. <듀르나>의 탄생은 ‘충동’ 그 자체였다. 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에 재학하며 언론고시를 준비하던 여대생 박민정 씨는 친한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학교에서 언론 공부를 하면서 과연 내가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을 소신껏 쓰면서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0대로서 우리끼리 소통할 수 있는 매체와 공간이 없다는 사실이 답답하기도 했고요.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없으면 우리가 만들면 될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고 곧바로 실행에 들어갔어요.”

  20대의 패기를 원동력 삼아 창간호 발행 준비에 착수했지만 경제적 여유가 없는 그들에게 월간지 발행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이템도 기사도 다 완성됐지만 초기 자금이 부족해 창간호를 발행할 수 없었다. “누군가는 돈을 모아야만 무엇인가 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저는 뜻이 모이면 돈도 모인다고 생각했어요.” <듀르나> 구성원들은 초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텀블벅’이란 소셜 펀딩 사이트를 이용했다. 어느 날, 며칠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던 기부금 창에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꿈을 좇는 듀르나팀의 모습에 감동받은 한 청년 사업가가 거금을 쾌척해 준 것이다. 박 편집장은 “엄청난 행운과 우연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용감하게 행동했기에 그런 분을 만날 수 있었다고 생각하기도 해요”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시사는 어려워.’ 박 편집장은 어떻게 하면 시사에 대한 20대들의 선입견을 깰 수 있을까 고민해왔다. “딱딱한 시사정론지를 어려워하는 대부분의 20대들이 좀 더 가까이서 시사를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그래서 신문이나 기성 시사지에서 무겁게 다뤄진 이야기들을 재가공해 더 쉽고 재밌는 방향으로 만들고 있죠.” 이어 박 편집장은 “시사지라면 재미없을 것이라 지레짐작하고 안 읽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저희의 취지는 모두가 쉽게 읽을 수 있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사지를 만드는 거니까 편하게 다가와줬으면 해요”라며 작은 소망을 내비쳤다.

 
색깔론에 얽매여 누군가를 배제할 순 없다

  정치·시사문제를 다루다보면 기사 속에 자연스레 기자나 언론사의 정치적 색깔이 녹아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듀르나>는 색깔론을 철저히 지양한다. “듀르나가 특이하다는 말을 듣는 이유 중 하나가 명확한 정치적 입장을 밝히지 않는다는 거예요.” <듀르나>는 한 쪽에선 너무 좌편향적이라는 소리를, 또 다른 쪽에선 어중간하고 비겁하다는 소리를 들으며 최대한 중립적인 입장을 견지해 왔다. “지금 기성 언론들이 양편으로 나뉘어져서 한 쪽을 위한 글을 쓰고 있는데 우리까지 그럴 이유가 있나 싶었어요. 어느 한 쪽만 옳다고 할 수 없을 뿐더러 색깔론에 지친 사람들의 피로를 풀어주고 싶기도 했고요.”

'듀르나(diurna)'는 저널(journal)의 라틴어 어원으로 ‘매일 매일 기록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딱딱한 시사지와 거리가 먼 <듀르나>의 톡톡 튀는 디자인과 아이디어는 20대의 입맛에 딱 맞는다. 특히 샛노란 바탕이 눈에 띄는 ‘시사피디아’는 어려운 시사용어를 이해하기 좋게 정리한 명실공히 <듀르나>만의 킬러콘텐츠다. 두 달 동안의 개편을 마치고 발행되는 <듀르나>는 우리대학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포기하고 싶었던 적? 단 한 번도 없어요

  기자는 “대학생으로서 편집에 발행까지 동시에 해내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닐 텐데 발행을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냐”고 물었다. “힘든 건 많죠. 경제적으로 어려운 점도 그렇지만 듀르나 속에서 사람 대 사람으로 일하는 게 가장 힘들어요.” 박 편집장은 “처음에는 다양한 팀 간 조율이 너무 힘들었어요. 저는 글만 쓰던 사람인데 한 잡지의 발행인이자 회사의 대표가 되니까 모든 직원들의 마음을 읽어줘야 하는 점이 쉽지 않았어요”라며 “재정상의 문제가 생기면 발이 부르트도록 뛰면서 해결하면 되는데 저 자신이 어떻게 팀원들을 보듬어주고 같이 일을 해 나가야 할 지, 그 점이 막막했죠”라고 속내를 털어 놓았다. “그래도 듀르나 안에서 사람과 사람이 하나의 일을 만들어 가는 게 가장 보람차요. 힘들어서 발행을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어요. 그럴 땐 제가 좀 울면 되니까요(웃음).”

  박 편집장은 <듀르나>에 전념한 이후 취업에 대한 압박도 적지 않았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은 듀르나 만들 시간에 취업 준비를 하는 게 낫지 않겠냐고 그래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기자들도 그런 압력 아닌 압력을 받고 있고요. 그런데 취업 준비만 했으면 듀르나를 통해 배워온 수많은 것들을 어디서 배울 수 있었을까 싶어요.” 비슷한 또래의 대학생들이 취업과 스펙을 좇아 정신없이 달리고 있을 때, 그는 <듀르나> 덕에 쉽게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들을 쌓아왔다.

  <듀르나>는 생존하고 싶다

  “듀르나가 20대에게 어떤 존재가 되길 원하냐”는 기자의 물음에 박 편집장은 예상치 못한 대답을 내 놓았다. “듀르나는 생존하고 싶다!” 박 편집장은 “보통 잡지가 창간되면 창간 기념 파티를 여는데 저희는 창간호를 발행하고 나니까 재정 상태가 초기화됐고, 때문에 기자들과 제대로 된 회식 한 번 못해봤죠. 대신 창간하고 6개월 동안 듀르나가 유지되면 ‘생존 파티’를 열자고 약속했어요.”라며 ‘생존’이란 단어에 힘을 줘 말했다. 작년 9월 창간 후 이제 갓 생존의 맛을 본 <듀르나>는 새로운 생존 목표인 ‘1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듀르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20대끼리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박 편집장은 “일반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고, 그들을 위한 자리도 만들어주면서 일종의 대학 ‘살롱문화’를 정착시키고 싶다”고 말했다. “무섭게 발제하고 토론하는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카페 같은 곳에서 서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소통하는 자리, 그런 거요.”

  “장기적으로 대학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냐”는 물음에는 “편한 친구 같은 듀르나”라고 답했다. “우리가 대학 여론을 주도하거나 이끌어 갈 생각은 없어요. 지쳐있는 20대에게 ‘똑같은 20대가 너희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고 듣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 그러니까 같이 놀자’ 이런 개념으로 다가가서 친구 같은 듀르나가 되고 싶어요”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때문에 저희는 기사의 끝에서 답을 내리지 않아요. 독자들이 기사를 통해 사유할 시간을 주고 합의는 그들이 내리게 하는 것이 저희 역할의 전부”라 말했다.

 
사유하지 않으면 표류할 수밖에 없다

  종이가 외면을 당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듀르나>는 당당히 인쇄매체로 탄생했다. 박 편집장은 인쇄매체를 선택하게 된 이유를 “종이에 대한 인간의 갈망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20대가 공부하랴 스펙 쌓으랴 삶에 치이면서 생각하는 시간이 정말 부족해요. 그런데 사유하지 않으면 그냥 표류하면서 살 수밖에 없거든요. 무언가를 읽으면서 의문이 생기면 시간을 할애해서 깊이 생각해보고, 그러기엔 손에 쥘 수 있는 인쇄매체가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싶은 것, 다 해라!

  <듀르나>에 대한 이모저모를 열심히 묻고 답하다보니 준비해 온 질문도 어느새 동이 났고 박 편집장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기자는 ‘여대생 박민정’에 대해 물었다. 박 편집장은 “여대생 박민정은 진짜 하고 싶은 걸 원 없이 하면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당차게 답했다. “개인적으로 여행이랑 뮤지컬 보는 걸 정말 좋아해서 과외, 아르바이트하며 모은 돈을 다 거기에 쏟아 부었어요.” 박 편집장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생각하는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고 했다. <듀르나> 또한 박 편집장이 가장 하고 싶던 모든 것이었다. “듀르나를 만들 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때가 제일 행복해요. 그런 순간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게 아니더라고요. 스스로 만드는 거죠.” 박 편집장은 하고 싶은 것을 하되 그때 느끼는 행복은 물론 불안감 또한 자신의 몫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마주한 박 편집장은 <듀르나>와 사랑에 푹 빠진 여대생이었다. <듀르나>를 만들 때 가장 행복하고, <듀르나>만은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박 편집장. 그의 넘치는 애정으로 만든 <듀르나>가 보다 많은 대학생들에게 사유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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