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저울
두 가지 저울
  • 최진형(국어국문) 교수
  • 승인 2013.03.07 0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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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이 왔던 겨울을 물리치고 봄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다. 2013년 봄은 여러모로 기억될 만한 일이 많다. 젊음과 생기 가득한 13학번 새내기와 8분의 신임교수가 아름다운 덕성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것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자리에 올랐고 우리 대학에도 제9대 총장이 새로 취임하였다. 새로운 시작을 맞으면 늘 기분 좋은 설렘·기대와 함께 막연한 불안, 걱정 또한 우리 마음에 찾아오기 마련이다.

  마치 출발선에 서 있는 달리기 선수처럼 의욕을 불태우고 있을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두 가지 저울’에 관한 이야기이다. “천하에 두 가지 큰 저울이 있다. 하나는 시비是非(옳고 그름)의 저울이고, 다른 하나는 이해利害(이익과 손해)의 저울이다. 이 두 가지 큰 저울(기준)에서 네 가지 등급(조합)이 나온다.” 인용한 구절은 조선이 낳은 위대한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이다. 다산 선생은 방대한 저작으로도 이름이 높지만 20년 가까운 세월을 유배지에서 보낸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가 남도의 유배지에서 서울에 있는 두 아들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편지였으므로 그 편지에 담겨있는 아버지의 마음이 어떠했을까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위 구절을 통해 세상살이에서 어떤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지를 아들에게 말해주고 싶어 하는 다산 선생의 간절한 심정을 읽어낼 수 있다.

  ‘시비의 저울’과 ‘이해의 저울’을 조합하면 나오는 4가지 조합 중, 옳으면서 이익이 되는 최상의 등급과 그르면서 해가 되는 최하의 등급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옳지만 해가 되는 것’과 ‘그르지만 이익이 되는 것’ 사이에서 어떠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가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은 대개 이 두 가지 중 어느 한 쪽을 택해야 할 때가 많으며 선택을 내릴 때 용기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시비에 대한 판단이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으나 우리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시비에 대한 판단 대상이 선악이나 정의, 적법, 명분 등 복잡하고 어려운 것일 수도 있지만 대개 도덕성 혹은 양심에 비추어 보면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성장과 교육 과정을 거쳤다면 7세 무렵 기본적 도덕성을 확립하게 된다고 하니, 시비에 대한 판단력은 보편적 능력에 해당하는 것이라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이익을 위해 그 판단을 외면한다거나 아예 왜곡하여 버리는 데 있다. 사적 이익을 위해 자기 위치를 망각한 정치인이나 공직자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만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벗이나 이웃, 심지어 가족에게도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지는 요즘 현실을 볼 때 그러하다. 많아지는 것도 우려스럽지만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줄어드는 것은 더욱 걱정스럽다. 정말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시비에 대한 판단이 도덕적 판단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까다로운 것에 비해 이해에 대한 판단은 다소 쉬워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눈앞의 이익을 취할 것인지 멀리 내다볼 것인지에 따라 이익과 손해의 여부가 달라지기도 한다. 당장의 편안함 때문에 일회용품을 사용하지만, 고갈되고 파괴되는 자연으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를 생각한다면 이익과 손해는 단번에 뒤바뀌고 마는 경우를 생각해 보자. 결국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배제된 상태에서 내리는 이익과 손해에 대한 판단은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산 선생이 4가지 조합에서 ‘옳음’을 상위에 둔 이유가 여기에 있으며,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중요한 교훈도 여기에 있다.

  출발선에 서서 잔뜩 긴장하며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심정은 대통령이든 총장이든 신임교수든, 신입생이든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처음 마음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뛰는 것이며, 더 중요한 것은 끝까지 올바르게 뛰는 것이다.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 의심된다면 마음 속 ‘두 가지 저울’을 사용하여 끊임없이 저울질해 보면 될 것이다. 부디 멋지게, 무엇보다 부끄럽지 않게 완주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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