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 : 젊은 인생과 3천 년의 시간이 만나는 접점
史記 : 젊은 인생과 3천 년의 시간이 만나는 접점
  • 장우진 기자
  • 승인 2013.04.15 16: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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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의 서재]시간과 공간 하늘과 땅을 관통하는 진리는 존재하는가

 

▲ 윤정분(사학) 교수

  ‘요즘 대학생은 책을 읽지 않는다.’ 이제는 식상하게까지 들리는 말이다. 스펙과 학점에 치여 바쁜 삶을 사는 ‘요즘 대학생’인 덕성인에게 신 기획 ‘교수님의 서재’는 매회 교수들이 추천한 책 한권을 함께 읽으며 책과 친해져보자 제안한다. 그 첫 회를 끊은 윤정분(사학) 교수와 추천도서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를 펼치고 이야기를 나눴다.


 

▲ 윤정분 교수의 추천도서<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

  교수님은 독서를 많이 하시는 편인가요?
  직업의 특성상 보통사람보단 많이 읽는 편이라고 할 수 있지만 절대적으로 많이 읽었다고는 못하겠다. 대학시절,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대학생이라면 졸업 전에 2천 권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때부터 읽은 책들을 기록하는 독서카드를 작성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1년에 500권 읽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그때부터 작성해 모아둔 카드들은 지금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이제 막 독서를 시작하는 학생들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서량을 기록해보길 바란다. 또한 어떤 책을 봐야 할지 모르겠다면 몇몇 대학에서 지정한 교양필독서 중 100권정도 선정해 방학 때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매학기 100권만이라도 보고 졸업한다면 그 책의 지식들이 앞으로의 삶의 열쇠가 되고 방향키가 돼줄 것이다.

 

 

 

 

 그 말씀을 들으니 처음 ‘교수님의 서재’ 기획을 부탁드렸을 당시 “아직 젊은 학우들이 지금 읽고 즐거운 책 보다는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책을 고르고 싶으니 시간을 두고 진행하자”고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그렇다면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를 선정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흔히 알고있는 고전과 교양서적에는 학생들이 오래 곱씹을 수 있는 책이 굉장히 많다. 하지만 그중에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역사책인 사마천의 <사기>를 읽고 학생들이 삶의 방향을 잡길 바랐다. 하지만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3천 년의 방대한 역사를 다루고 있는 <사기>는 힘에 부칠 것이라 생각해 <사기>의 교훈을 좀 더 쉽게 전해줄 책을 찾던 중 책꽂이의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가 눈에 들어왔다. 학생들이 사기를 옛날의 역사책이 아닌 오늘날 본인의 삶에 교훈을 주는 교양서적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를 통해 3천 년을 끌어안은 역사서 <사기>가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생각하고 사기에 흥미를 갖는 계기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선정했다.

  그렇다면 추천도서의 어머니 격이라 할 수 있는 사마천의 <사기>는 어떤 책인가요?
  <사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저자인 사마천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한다. 사마천은 절대적 약세에서 어쩔 수 없이 적군에 투항해 포로가 된 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의 눈 밖에 나 궁형을 당했다. 남성의 성기를 거세하는 궁형은 당시 인간으로서 겪을 수 있는 최대의 치욕으로 <사기>는 삼황오제의 전설부터 당시로서는 현대인 한 왕조까지의 역사를 그토록 큰 울분 속에서 기록한 역사서다. 그러나 사마천은 분노를 표출하지 않고 객관화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이는데 이런 냉정함을 유지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저술배경을 가진 <사기>는 유가와 거리가 먼 사마천의 인간관에도 불구하고 그 철학적, 문학적인 완성도를 인정받아 중국과 우리나라 모두 과거시험의 필독서로 지정됐으며 황실에서 왕세자 교육의 교과서로 사용됐다. 즉, 지도자부터 관리와 식자층까지, 과거부터 현재까지 전해 내려온 불변의 필독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사기>를 읽을 때 염두에 둬야 할 것을 한 가지 짚어주신다면 무엇인가요?
  우주와 인세, 고(古)와 금(今)을 녹여낸 이 역사서는 하나의 질문에서 출발해 그 질문에서 끝맺음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마천은 독자에게 거듭 질문한다. “天道는 존재하는가?”

  유가의 이름난 선비인 백이와 숙제는 은나라가 주나라에 의해 망하자 은에게 도리를 다하기 위해 벼슬을 버리고 서우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으며 선비의 절개를 지킨 백이숙제는 결국 굶어죽었다. 반면 사람의 생간을 빼먹는다는 소문이 있을 만큼 잔인하기로는 당대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도척이라는 사람은 80세까지 살았다고 한다. 동양 최고의 현인은 비참한 최후를 맞고 도적은 천수를 누리는데도 하늘의 도(天道)가 있나? 사마천은 <사기>를 통해 당대의 사람, 그리고 현대의 우리에 걸쳐 그걸 묻고 있는 것이다.

“무릇 세상의 사물에는
  꼭 그렇게 되는 것과
  본래부터 그런 것이 있는 법이다”
- 「사기」 맹상군 열전 풍환曰

  위 글귀는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글귀라 수첩에 적어뒀는데 교수님은 어떻게 느끼셨나요?
  나도 저 글귀가 기억에 남아서 한쪽에 적어두고 ‘세상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 존재하는가’ 계속 고민했다. <사기>의 열전에 등장하는 저 글귀를 <사마천, 인간의 길을 묻다>는 ‘인간관계의 토대’라는 항목에서 다룬다. 그만큼 저 글귀가 나오는 <사기>의 일화가 인간관계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맹상군이 부귀할 때 그의 집에 기거하며 그를 보좌하던 식객들은 맹상군이 모함을 받아 관직에서 물러날 위기에 처하자 앞다투어 그의 집을 떠난다. 그 후 맹상군이 모함에서 벗어나자 식객들은 염치없이 다시 그의 집으로 모여든다. 이에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끼는 맹상군에게 그가 모함 받을 때도 곁을 지켰던 유일한 식객인 풍환이 돌아온 식객들을 이전처럼 환대하라 간할 때 했던 말이 저 글귀다.

  사마천은 자신이 베푼 덕을 돌려받지 못한 맹상군의 일화를 통해 우리가 흔히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인간관계를 부정하는 것인가요?
  유가의 영향을 받은 동양에서는 흔히 맹상군같이 포용적인 인간상을 지향하는데 사마천은 유가적 사상을 갖고 있지 않지만 맹상군과 같은 유가적인 인물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그는 ‘군자’들이 현실을 놓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가의 도에 따르면 덕을 베푼 맹상군은 당연히 결과가 좋아야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착하다고 모든 사람이 착하지 않다는 냉혹한 현실을 맹상군이 직시하지 않고 상대에게 보답을 기대했기 때문에 배신을 당했다는 것이다. 이에 단순한 사람들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 나는 맹상군처럼 살지 않고 내 이해를 좇아 살겠다’고 말하겠지만 사마천이 원하는 것은 그런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면 사마천은 이 일화를 통해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요?
  이 일화뿐 아니라 <사기> 전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앞서 말했던 것과 같다. 하늘의 도는 있는가. 사마천은 수많은 인간상을 보여주며 독자가 천도의 모순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품도록 유도하는데 이 맹상군 일화도 유도의 일환이다. 하지만 사마천은 질문을 던질 뿐 정답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독자들은 그가 반복적으로 던지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고민을 거듭하고 <사기>를 읽기 전과는 다른 자신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당장 답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낙심할 것은 없다. 천도의 답을 구하는 것이 쉽겠는가. <사기>를 여러 차례 읽은 나도, 사기를 처음 읽는 학생들도 자신만의 답을 내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첫 머리로 돌아가 같은 질문과 마주해야 하는 것이 <사기>다.

 


 ‘교수님의 서재’소감을 남겨주세요
 ‘교수님의 서재’를 읽고 덕기자 페이스북(www. facebook.com/press.duksung)에 짧은 소감을 남겨주시는 분 중 한 분을 선정해 윤정분 교수님의 메시지가 적힌 추천도서 <에티카>를 선물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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