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평화의 꽃이 만개하는 그날을 위해
위안부, 평화의 꽃이 만개하는 그날을 위해
  • 황유라 기자
  • 승인 2013.04.15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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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 번이 넘게 외면당한 그들의 외침, 그 끝은 언제인가?

사진 / 황유라 기자

 

   “일본 정부는
  사죄하라! 사죄하라!”

  1천 68번째 계속되는
  한맺힌 외침

  매주 수요일이면 종로구에 위치한 주한 일본대사관(이하 일본대사관) 앞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수요집회에 참여한 사람들로 북적인다. 지난 1992년 1월 시작해 장장 21년간 이어져 온 수많은 사람들의 울음 섞인 외침. 지난 3일,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며 한마음 한뜻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는 그들의 1천 68번째 집회 현장에 함께했다.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범죄의 진상을 철저히 규명하고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라!”

  “사죄하라! 사죄하라!”

  그날도 어김없이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한맺힌 외침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양손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는 플랜카드를 든 대학생들, 조금은 찬 바람에 두 볼이 발갛게 물든 채로 힘차게 구호를 외치는 아이, 우두커니 앉아 그저 묵묵히 일본대사관을 바라보고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가 한마음으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를 가득 채웠지만,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일본대사관의 문과 모든 창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수요집회 1천 회를 기념하며 세워진 소녀상의 곁에는 꽃다발과 옷가지 등 사람들의 따뜻함이 함께했지만 그럼에도 소녀상의 모습이 유독 외롭고 슬퍼보였던 것은 이 때문이었을까.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실 규명과 피해자들의 명예와 인권회복을 요구하는 수요집회는 1992년 1월 8일 시작해 지난 2011년 12월 14일 1천 회를 맞았다. 길고도 험한 여정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이 끝 모를 지겨운 싸움은 계속됐고 사람들은 늘 21년 전과 같은 마음으로 집회를 이끌어왔다. 그래서일까.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하라! 일본 정부는 역사 교과서에 역사의 진실을 올바르게 기록하라!”고 외치는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 윤미향 상임대표의 목소리에는 지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설움과 한이 가득 묻어 있었다.

  이날 집회에는 특별한 사람들도 함께했다. 바로 지난 2011년 말, 그리고 지난 3월 한 달간 위안부 문제와 연예계 성상납 문제를 다룬 연극 <빨간시>를 선보인 극단 ‘고래’의 단원들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수요집회에 참여해왔다는 고래의 이현성 대표는 “수요집회에 함께하는 사람들의 노력이 씨앗이 돼서 내가 움직이고, 더 나아가 단원들이 움직이고, 이를 통해 3천여 명의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런 의미에서 수요집회에 참여하는 여러분이야말로 진정한 인권운동가라 생각한다”며 “단 한 사람의 마음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이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모두가 다함께 움직이자”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이현성 대표의 말이 끝나자마자 뜨겁게 울려 퍼지는 사람들의 박수소리에서 모두가 똑같은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가슴 깊이 느낄 수 있었다.

  네 볼이 빨갛게 물들기 시작하던
  어느 날 키 작은 검은 그림자,
  고운 너를 녹이려 총을 들었나보다

  어느 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앞으로 익명으로 보내진 시 <소녀에게>. 시를 낭독하러 나온 소비자활동연합회 ‘아이쿱’ 구로 생협의 박기일 이사장은 울지 않으려고 밤새 연습했다는 말이 무색하게 채 한 소절도 읽지 못하고 연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숙연해진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시가 적힌 종이를 보며 마음을 모아 입을 맞춰 시를 낭독하기 시작했다. “언젠가 네가 새하얀 머리를 가지게 되어 너의 어머니보다 늙었다 생각될 때에도 나는 결코 너를 잊지 않으리라 약속한다. 소녀야! 소녀야! 내 소녀야!”

  그때,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는 사람들 사이로 조그맣게 펄럭이는 태극기가 눈에 띄었다. 평소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애국심을 끓어오르게 하는 태극기지만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적극적이고 전면적인 외교 대책을 세워라!” “한국 정치인들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가 조속히 해결될 수 있도록 모든 정치적 노력을 다하라!”는 사람들의 구호와 맞물리며 유난히도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물론 미국 곳곳에 일본 정부의 사과를 촉구하는 비가 세워지고, 올해 개정된 일본 역사 교과서 일부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 정부, 일본군 주도로 벌어진 반인권적 문제임이 명시되는 등 21년간 키워온 평화의 씨앗이 하나둘 그 꽃을 피워내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를 방해하는 비바람을 이겨내고 꽃이 만개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단지 지난 과거의 일이 아님을, 우리가 기억하고 지켜나가야 할 우리의 뼈아픈 역사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매주 수요집회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도 자리에 참석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왼쪽부터) 김복동 할머니, 길원옥 할머니

  집회가 끝날 무렵 사람들의 박수와 함성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대표로 집회에 참여한 김복동, 길원옥 할머니의 손에 마이크가 쥐어졌다.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두 분의 할머니 뒤로 창문이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을 보고 있자니 씁쓸함과 안타까움이 밀려오며 마음 한 켠이 저릿해졌다. 그러나 “더 이상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비 맞지 않도록, 눈 맞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힘을 모아 화합하자”는 말과 함께 전해진 김복동 할머니의 구성진 노랫가락에서 아직은 희망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쥐구멍에도 해 뜰 날이 있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

  21년간 이어져 온 이 끈질긴 싸움이 언제 끝날지는 장담할 수 없다. 가슴 깊이 아로 새겨진 그들의 쓰라린 상처가 언제쯤 아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 올지 모를 ‘끝’을 위한 그들의 외침은 지치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그동안 뿌린 평화의 씨앗이 자라 꽃이 만개하는 그날을 위해 그들은 오늘도 마지막 수요집회를 꿈꾸며 평화로에 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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