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이제는 과학으로 지킨다
문화재, 이제는 과학으로 지킨다
  • 강대일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보존과학과 교수
  • 승인 2013.04.15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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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가탑은 지난해 9월부터 전면 해체·복원 작업에 들어갔다.사진은 석가탑 훼손 현황을 보여주는 상황도. (출처: 조선일보)

  지난 2006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색과 박락 등으로 가치가 상실될 위기에 처한 우리나라 세계문화유산인 고구려 고분벽화를 위해 남북한 관계 전문가가 모여 고구려 벽화 보존 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600년간 서울을 지켜온 국보 1호 숭례문이 화마 속에서 사그라진 지 5년여가 지난 지금 국민의 크나큰 관심과 애정 속에 숭례문 복원공사가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지난해 9월부터는 경주 불국사 석가탑이 세워지고 난 후 1천 년 만에 완전 해체하여 보강 작업에 들어갔다.

  이렇듯 자연적으로 노화되거나 불의의 사고로 인해 손상되는 등 갖가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문화재를 위해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대의 유산이자 후대에 물려줄 소중한 자산인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연구하는 사람들, 바로 문화재 보존과학자들이다.

  문화재 보존과학은 문화재의 구조적 복원뿐만 아니라 최적의 보관 환경과 관리방안을 연구하여 문화재를 오랫동안 존속하게 하는 연구 분야이다. 단순히 문화재의 원형을 복원하는 기술적인 작업뿐만 아니라 현대적 과학기술을 응용하여 문화재의 재질 및 성분 분석, 제작 기법과 구조 파악, 보존 환경에 대한 기초조사 등을 실시해 고고학 및 미술사 등 여러 관련 학문 연구의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재료와 각종 물리·화학·생물학적 접근을 통해 문화재의 수리와 복원에 대한 방안을 연구하고 개발한다. 이처럼 미생물로 인한 문화재의 피해를 막는 생물학, 물질의 변성을 연구하는 화학 등의 자연과학부터 문화재의 연원을 밝히는 데 필요한 고고학과 역사학, 미술사학 등의 인문학까지 다양한 학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문화재 보존과학은 종합학문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화재의 재질은 천차만별이고 이에 따라 보존과학자의 연구내용도 달라진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금속유물이다. 고대부터 금속은 인류 생활의 다양한 분야에서 꾸준히 사용되어 왔기에 그 종류와 수량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발굴을 통해 출토된 금속유물은 대체로 녹이 슬어 물성이 쇠약해진 상태이거나 조각난 파편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금속유물들은 먼저 재질을 분석하고 X선 투과촬영을 이용해 내부 상태를 파악하거나 흙이나 녹과 같은 이물질에 가려진 문양 등을 파악하는 사전 조사를 통해 보존 처리 방향을 결정한다.

  신라고분에서 환두대도(環頭大刀)가 처음 출토되었을 때 그 형태는 용도가 칼이라는 것만 겨우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녹 덩어리였다. 그러나 X선 투과촬영을 통해 고리 부분의 봉황장식과 섬세한 은상감 문양이 드러났다. 이를 통해 부장자의 신분을 추측할 수 있었고 상감기법과 문양의 종류는 미술사학적 자료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문화재를 총체적으로
  연구하는 보존과학,
  인문학부터 자연과학까지
  다양한 지식 녹아있어

  청동기 시대의 거울인 다뉴세문경(多  細文鏡)은 지름 21cm 내부에 총 1만 3천여 개의 선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다. 이 섬세한 문양은 현대 첨단과학 기술로도 재현할 수 없는 불가사의 중 하나였다. 그러나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실에서 그 문양을 3D 스캔으로 도면화해서 제작 선후관계를 파악한 후 성분 분석으로 합금 비율을 알아냈다. 뿐만 아니라 조직 관찰을 통해 주물틀이 가는 입자의 모래를 사용한 사형(砂型)에 의해 제작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이를 통해 철기 시대도 아닌 청동기 시대에 거울 뒷면에 0.3㎜ 간격으로 1만 3천 개에 이르는 가는 선을 새겨 넣을 수 있었던 제작 기법이 드러날 수 있었다.

  이러한 금속유물뿐만 아니라 보존과학에서 다루는 문화재는 신안해저에서 끌어올린 고선박, 도자기, 화폐와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화성성역의궤,  그리고 전국의 사찰, 석탑, 마애불과 심지어 문화재로 등록된 근대 유화작품까지 그 수량과 종류가 무궁무진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존처리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식이 존재한다.

  앞서 설명한 금속유물의 경우 유물 부식의 정도가 가장 중요하다면 목가구, 고선박과 같은 목재유물의 보존처리에서는 수분 함유량의 변화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 출토 당시의 목재유물은 수분 함유량이 높아 섣불리 건조시키면 쉽게 균열이 생겨 파손이 일어나기도 쉽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목재유물의 보존처리에서는 목재 수분의 변화로 야기되는 수축 팽창효과를 최소화하기 위한 ‘치수안정화(dimensional stability)’ 처리가 실시된다.

  문화재 재질과
  종류의 다양화로
  보존과학의 중요성도
  점점 높아져

  토기와 도자기와 같은 유물은 상대적으로 화학적 변화에는 강하지만 물리적 충격에는 약하다. 때문에 강화처리 작업을 거쳐 토기나 도자기의 강성을 높여 파손을 막기 위한 작업을 진행한다. 이 외에도 이물질 등을 제거하는 세척 작업, 접합 및 복원 작업, 색맞춤 작업 등 보다 신중하고 정교한 보존 처리 방법이 사용된다. 최근에는 근대 문화유산(개화기부터 6·25전쟁 전후의 기간에 형성된 각종 문화유적·건물·작품·물건)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보존해야 할 대상이 더욱 다양화됐다. 명동성당, 정동교회, 독립문 등 근대 건축물은 물론이고 경의선 증기기관차, 조선황실 어차, CD, 녹음테이프, 필름 등 보존 처리 대상의 범위가 늘어났다. 이에 따라 플라스틱, 현대도료 등 새로운 재질의 보존 처리에 관한 연구에도 많은 관심이 집중되는 추세다.

  과거 없이 현재가 있을 수 없고 현재 없는 미래는 존재할 수 없다. 과거는 의식 속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유형의 소산물로도 남아있다. 그것들 중 특별히 가치가 높은 것을 우리는 문화재라 일컫고 이를 보존하는 것은 과거, 곧 역사를 보전하는 것이며 우리에게 지향할 삶의 가치를 제시해준다. 우리는 문화재에서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우리 본연의 가치를 이해함으로써 자긍심을 고취하기도 한다.

  감성의 시대로 통하는 21세기에 문화는 권력이요, 국력이다. 우리 손으로 문화재를 보존하고 문화를 수호하여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고 나아가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는 것,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문화재 보존과학이다. 단순히 선대의 유산을 박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에 생명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바로 우리 보존과학자들의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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