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소추뒤에는 노대통령에 대한 민주당의 배신감과 공동 책임론이 있다.
탄핵소추뒤에는 노대통령에 대한 민주당의 배신감과 공동 책임론이 있다.
  • 박현모 교수
  • 승인 2004.03.15 12: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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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孟子와 대통령 탄핵: 민주당의 고민과 착각

▲탄핵소추에 반대하는 시민들 /

 

 

 

 

 

 

 

 

 1.
 결국 강의시간에 늦고 말았다. 청와대의 반응까지 듣고 수업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그렇게 했다간 학생들에게 “탄핵”당할까 두려워 “대한민국은 어떤 일이 있어도 전진해야 한다”는 박관용 국회의장의 산회발언을 들으며 라디오 앞을 떠나야 했다. 학생들의 반응은 다양했다. “잘못 뽑았다고 생각되면 가능한 빨리 바꾸는 것이 상책”이라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대통령이 그 정도 문제로 탄핵 당해야 한다면 현재의 국회의원들은 모두 할복 자살해야 한다”고 극언을 하는 학생도 있었다. 야당을 비판하는 학생들은 “의회권력을 장악해 권력을 찬탈하려는 나치즘적 기도”에 의연히 맞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대통령을 비판하는 학생들은 “민주주의 근간인 법치주의를 무시하는 초헌법적 독재자” 노무현 대통령을 갈아 치워야 민주주의가 정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학생들의 주장대로라면 “나치즘적 야당”과 “파시시트적인 대통령”이 맞서고 있는 형국인 셈이다. 이 외에도 다양한 학생들의 논란이 있었으나 대체로 “야당의 태도가 지나치다”는 의견이 많았던 걸로 기억한다.
 필자의 생각에도, 그 동안 우리는 대통령의 독재를 막고 비판하는 데는 많은 관심을 쏟았지만, 국회의원들의 횡포를 견제하는 장치를 마련하는 데는 등한시했던 것 같다. 15대․16대 국회가 보여준 무책임한 정치공략과 민의를 무시하는 태도는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특히 16대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시종 일관된 당리당략적인 태도는 헤겔이 말한 ‘역사에서 정열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연상하게 했다. 즉 헤겔에 따르면, “역사의 이성은 노출되지 않고 다만 배후에 도사린 채 정열이라는 특수자가 갈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스스로 힘을 탕진하게 한다. 이성은 부담을 스스로 짊어지지 않고 개인의 정열로 하여금 지게 한다. 이것을 이성의 간지(奸智)라고 할 수 있다.”(F. Hegel, 역사에 있어서의 理性). 16대 국회의원들은 마치 헤겔의 이 말을 실천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좌충우돌하면서 스스로의 힘을 소진시키며 대의민주주의의 한계와 참여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역설적으로 증명해보이고 있다.
2.
 그런데 강의실로 가는 도중에 문득 맹자와 제선왕의 대화가 떠올랐다. 아마도 “군주를 바꾸는[易位]” 문제에 대한 문답 때문이었을 것이다. 다소 길지만 두 사람 사이의 긴장된 대화를 약간 의역하여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제선왕: 정치가[卿]의 태도는 어떠해야 합니까?
맹  자: 어떤 정치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제선왕: 정치가에도 종류가 있습니까?
맹  자: 종류가 있지요. 왕과 인척(姻戚)이 되는 정치가[貴戚之卿]와 성(姓)이 다른 정치가[異姓之卿]가 그것입니다.
제선왕: 내가 묻는 것은 인척이 되는 정치가입니다.
맹  자: 임금에게 큰 허물[大過]이 있으면 고치도록 말하되[諫] 반복해도 듣지 않으면 임금을 바꿔야 합니다[易位]. (이에 왕의 얼굴빛이 변했다.)
맹  자: 왕께서는 괴이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왕께서 제게 물으셨기에 감히 올바름으로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왕이 얼굴빛이 돌아온 뒤 다시 물었다.)
제선왕: 그렇다면 성이 다른 정치가의 경우는 어떠해야 합니까?
맹  자: 임금에게 허물[過]이 있으면 고치도록 말하되 반복해도 듣지 않으면 스스로 떠나가야[去] 합니다.

 맹자 만장편의 끝 부분에 있는 이 대화를 떠올린 것은 단지 대통령 탄핵이라는 “임금 바꾸기” 문제 때문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두 가지 종류의 정치가가 있다는 말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즉 인척이 되는 정치가는 임금이 잘못했을 때 “떠날 수도 없으며”[無不去之義] 일종의 공동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다. 이들은 군주의 잘못을 고치도록 거듭 비판하고 타일러야 하지만 그래도 듣지 않을 땐, 왕을 바꿀 수도 있다. 여기서 왕을 바꿀 수 있는 잘못이란 “충분히 나라를 망하게 할 정도의 것”[足以亡其國者]이라고 주자(朱子)는 해석한다.
 민주당이 “국정의 한 축을 담당한 공당으로서, 위기에 처한 국가현실을 그냥 좌시할 수 없다”고 한 말은 이 점에서 새롭게 다가온다. 이번 탄핵결의에 대해서 어떤 사람은 “민주당이 지지율 하락으로 군소정당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해서” 내놓은 고육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대구 총선을 겨냥한 조순형 민주당 대표의 계산된 전술에서 비롯되었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 같은 말과 관점이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함께 배출한 민주당 의원들이 느끼는 배신감과 공동책임론 역시 어느 정도의 진실성을 갖고 있다고 본다. 군주의 잘못을 거듭 간(諫)하다가 듣지 않을 때 떠날 수 있는 성이 다른 한나라당과는 책임의 크기와 그 성격이 다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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