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소년>과 <추격자> 흥행 뒤엔 김 대표가 있다
<늑대소년>과 <추격자> 흥행 뒤엔 김 대표가 있다
  • 이은영 기자
  • 승인 2013.05.27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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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사 '비단길' 김수진 대표  ⓒ최아영 수습기자

 

  “4885, 너지?” 500만 관객을 잠 못 들게 한 영화 <추격자>, 순이에 대한 철수의 지고지순한 사랑에 700만 관객을 울린 영화 <늑대소년>. 이 영화들이 대중 앞에 오기까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영화를 책임지는 한 사람이 있다. 영화 제작자이자 영화사 ‘비단길’ 김수진 대표(이하 김 대표)가 바로 그 주인공. 대학생 때부터 영화인의 길을 걷고 있는 김 대표에게 그동안 걸어왔던 길과 앞으로 어떠한 길을 걸어갈 것인지 들어보았다.

 



  영화 <록키>에서 느낀 환희, 지금까지 이어져 오다
  “영화를 좋아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은 덕에 어려서부터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어요. 특히 7살에 실베스터 스텔론 주연의 영화 <록키>를 보고 난 후에 느낀 환희가 굉장히 오래 갔어요.” 김 대표는 어린시절 시작된 영화와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에도 공부가 하기 싫어 영화를 자주 보러 다녔다는 김 대표는 이화여대 독어독문학과에 재학 중일 때에도 영화 동아리 ‘누에’를 창설해 많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면서 영화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넓혀갔다. 졸업작품으로 기지촌 여성들의 삶을 담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베를린 영화제 영포럼상도 타고 돈도 벌었지만 자신의 재능에 대해서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고. “후반 작업을 해주신 선배님들도 작품이 조금 아쉽다고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나는 감독이나 연출에는 재능이 없구나’라는 생각에 답답했죠. 그래서 선배들에게 ‘저는 이제 뭘 해야 하죠?’라고 되물었어요. 그러자 ‘영화 기획이나 제작을 해라’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다시 되물었어요. ‘그게 뭐죠?’(웃음).”

  무작정 부딪치며 시작한 영화 제작의 길
  기획이나 제작에 문외한이던 20대 김 대표는 당시 맨 땅에 헤딩을 하는 심정으로 무작정 부딪쳤다. 졸업 직후 하명중영화제작소에 입사해 기획, 제작, 홍보 등을 두루 익혔다. 2년 뒤에는 스스로 영화사를 설립했다. 이곳에서 영화 <레옹> <퐁네프의 연인>들을 수입해 오는 일을 하며 한국영화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사람 옆에서 제작에 대해 배웠다. 1999년에 김 대표는 미국으로 건너가 AFI(미국 영화 연구소)에 입학해 영화공부를 했다. 그 후 워너브라더스의 자회사 조엘실버 프로덕션에서 4개월간 인턴을 했으며 워너브라더스 본사에서 1년 6개월 동안 공동제작 및 판권 구매 업무를 봤다. 미국에서의 6년이 그녀에게 남긴 것은 무엇일까. “영화는 개인 예술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같이 만드는 예술이에요. 때문에 감독, 시나리오 작가, 투자자 등 영화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게 중요하죠. 미국에서 가장 많이 배운 점이기도 하고요.”

  김 대표의 이름을 걸고 제작한 영화는 <음란서생>을 시작으로 <추격자> <작전> <혈투> <늑대소년>까지 총 5편이다. 이러한 영화 한 편이 만들어지기 까지 걸리는 시간은 최소 2년에서 최대 3~4년이다. 긴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 영화 한 편의 모든 것을 책임지는 것이 영화 제작자의 역할이자 김 대표의 역할이다. “어떤 이야기를 담을 것인가부터 영화를 만들어 관객에게 언제 보여줄 것인지, 그리고 투자는 어떻게 받아 올 것인지 등 영화에 대한 처음부터 끝까지를 책임지고 가는 것이 제작자의 역할이에요. 영화의 결과뿐만 아니라 자본적인 결과를 책임지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제작자는 어렵지만 또 재밌는 일이죠.” 남성 제작자가 많은 영화 업계에서 여성 제작자로서 힘든 점은 없을까. 김 대표는 단호하게 말한다. “여자 제작자라서 힘든 게 아니라 제작자로 사는 건 원래 힘들어요(웃음).”

▲ 김수진 대표가 제작자로 참여한 영화 <늑대소년>과 <추격자>. 두 영화 모두 흥행에 성공하며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김수진 대표가 제작한 영화에는 ‘특별함’이 있다
  김 대표는 신인감독, 스타가 아닌 배우들과 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김대우 감독은 영화 <음란서생>으로, 나홍진 감독은 영화 <추격자>로 데뷔했으며 영화 <늑대소년>도 조성희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이다. “물론 인기있는 사람도 좋지만 저는 ‘미래의 스타’들과 일 하고 싶어요. 연기력이 있으면서 역할에 잘 맞는 사람이랑 일을 하는 게 더 좋거든요. 신인감독 또한 미래 영화계의 주역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제작할 때 더 흥미롭죠.”

  지금까지 김 대표가 제작한 5편의 영화들은 각기 다른 장르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김 대표만의 기준이 있다. 새로운 이야기, 완성도 있는 이야기, 그리고 감동이 큰 이야기가 그녀가 작품을 고르는 기준이다. “무엇보다 새롭고 재미있으면서 남들이 쉽게 접하지 못한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사랑영화를 만들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과거보다는 앞으로를 생각하며 산다
  약 20여 년의 세월동안 영화계에 몸담으면서 가장 기억에 남은 순간은 언제일까. 김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해 온 모든 일이 다 기억에 남아요. 시나리오 작업 과정부터 영화를 만들고 개봉해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 그 모든 순간순간이 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녀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다음 영화는 뭘 해야 할지부터 내일 할 일, 더 나아가 내년에 할 일까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한다.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것 보다는 미래에 대한 생각만을 하고 있다고. 거창하게 앞으로 어떤 제작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영화의 시나리오의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어떠한 감동이 있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영화를 한 편 제작할 때마다 적게는 100명이 직업을 가지게 됩니다. 그 후 영화가 개봉할 때쯤에는 만 명이 직업을 가지게 되죠. 저는 여기서 행복함을 느껴요. 또 영화가 개봉해 흥행하면 최소 100만 명에서 700만 명이 웃죠. 바로 이 점 때문에 영화를 계속 만들게 돼요.”

  자신이 만드는 영화 한 편으로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하는 김 대표. 20년 이상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해왔지만 과거를 돌아보기 보다는 앞으로 만들어질 영화에 집중하는 그녀의 모습을 통해 앞으로 김 대표가 제작한 영화로 관객들이 행복해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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