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미술계
세계화와 미술계
  • 정무정(미술사학과) 교수
  • 승인 2013.06.10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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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오늘날 뉴욕 소호나 첼시 또는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의 화랑들, 파리의 바스티유나 동쪽 19구 근처의 화랑들, 런던 이스트엔드의 화랑들 그리고 이스탄불 뉴타운이나 서울 인사동의 화랑들과 그러한 공간에서 열리는 전시의 방식이나 내용 그리고 미술계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는 놀라울 정도의 유사성을 띠고 있다. 이처럼 미술이 동질화하고 각 지역의 미술계가 결합되며 하나의 행사에 여러 나라의 관객이 모여들고 참여하는 나라도 많아지는 상황은 “하나의 단일장소로의 세계의 압축”1)이나 “시공간의 압축”2)으로 정의된 세계화의 여파가 미술계에 밀어닥친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과정으로 미술가의 활동에도 큰 변화가 나타났다. 미술가들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입주작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여러 비엔날레에 출품하고 있다. 한 나라에서 살고 다른 나라에서 작업하며 또 다른 나라에서 전시하는 미술가나 전자매체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즉각적으로 전 세계에 발표하는 노마드 미술가에게 장소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Ⅱ. 동질화와 다원화
  미술비평가와 학자들은 미술계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캐나다의 미디어 이론가인 마샬 맥루한(Marshal McLuhan)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러나 맥루한의 낙관적 전망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인 것처럼 미술계의 세계화 현상을 바라보는 시각도 대립적인 양상을 나타낸다. 몇몇 비평가들은 현대미술의 세계화는 과거 경제, 기술의 패턴을 따르며, 따라서 다른 영역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술계에서도 커뮤니케이션 기술로 인해 지식의 형성이 확대되고 전 세계 미술의 경향이 실시간으로 유통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조밀한 네트워크로 연결된 미술계는 지역적 사건이 전 지구적인 반향을 일으키고 모든 미술이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받는 하나의 통합된 체계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이 사실이라면 미술가들은 지구상 어느 곳에서라도 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앞서 언급한 미술계의 세계화 현상은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이용으로 일부 미술가와 미술계가 공간적으로 압축된 사실을 증명해준다. 미술계체제에 있어서도 강력한 정치, 경제적 기반을 갖는 미술계가 여타 미술계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 경우 세계화는 지배적 문화의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을 의미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미술계의 세계화로 인해 현대미술에서 미국과 서유럽의 지배가 종식될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세계화 과정에서 경쟁적인 미술그룹과 미술센터가 하바나, 이스탄불, 요하네스버그, 광주, 상파울로 등과 같은 도시에 등장하였고, 이는 확장된 국제미술계에 대한 인식과 더불어 다양한 미술전통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다양하고 이질적 경향의 미술과 학계의 전문화 추세로 세계화한 미술을 총체적으로 조명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 현대 미술계의 상황이다. 이런 의미에서 세계화는 미술계를 탈중심화하고 서양미술사의 지배를 종식시켰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과 미술사의 다원화는 예술적 기준의 다원화와 연관된 현상으로 미술의 보편적, 초역사적 본질을 포괄하는 기준이 없는 상황에서는 경제적으로 탄탄한 미술제도에 정초한 중심미술계가 미술의 지위를 재단할 권한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세계미술은 미국과 유럽의 몇몇 미술기관의 질에 대한 판단에 종속될 것이다.

Ⅲ. 국제미술전
  현대미술이 상당히 동질화하고 지리적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된 사례는 비엔날레나 다양한 국제전, 교환프로그램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세계화라 할 수 있는 변화를 잘 드러내는 이들 전시와 교환프로그램에 대한 고찰을 통해 미술비평가와 국제전 감독들은 세계화와 동질화하고 통합된 세계 미술계가 어떤 관계를 갖는지 분석하곤 한다. 비엔날레는 설립목적, 구조 그리고 전시방식에 따라 다양한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나 최근에 와서는 대체로 국가전 형식에서 벗어나 주제와 이벤트를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비엔날레는 애초에 움베르토 국왕 부처의 은혼식을 기념하기 위한 전국적 미술축제로 기획되었으나 15개국의 미술가들이 참가한 국제전으로 확대된 것으로 초기에는 민족적, 문화제국주의적 요소가 강해 국가관을 설립하여 당대 이탈리아 미술의 업적을 알리는데 관심을 가졌다. 심사위원도 주로 이탈리아 출신으로 구성되다가 1960년 영국 ICA 관장인 허버트 리드(Herbert Read)와 도큐멘타 창립자인 베르나 하프트만(Werner Haftmann)이 심사위원으로 초빙되면서 국제적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선정된 국제심사위원이 대부분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 출신이어서 유럽 중심적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1995년 46회 때 처음으로 외국인 감독으로 프랑스 출신의 장 클레르가 선임되었고, 49회 때에는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라틴 아메리카 출신의 심사위원이 선정되어 유럽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2. 카셀 도큐멘타
  카셀 도큐멘타는 1955년 전후 독일의 이미지를 회복하려는 의도에서 아르놀트 보데(Arnold Bode)가 창설하였다. 도큐멘타 큐레이터들은 정치적, 관료적, 재정적 간섭을 받지 않았지만 냉전시대 미국과 소련의 이념적 대치와 독일의 분단과 같은 역사적, 정치적 배경으로 초창기 도큐멘타는 대체로 정치적, 사회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1997년 도큐멘타 10의 예술감독인 캐서린 데이비드(Catherine David)가 새롭고 급진적인 전시기획을 도입함으로써 이전의 유럽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이질적인 전시수단과 작품이 소개되었다. 2002년 도큐멘타 11의 예술감독에 선임된 나이지리아 출신의 미국인인 오쿠이 엔위저(Okwui Enwezor)는 근대성, 전위, 보편성과 같은 개념을 포함한 서구 제국주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유럽에 대한 타자의 관점을 보여주는 작품을 선보였다.3)

3. 마니페스타
마니페스타, 유럽 현대미술 비엔날레(Manifesta, European Biennial of Contemporary Art)는 1996년 베를린 장벽의 붕괴 이후 새롭게 통합된 유럽의 문화적 교류를 위한 장으로 마련되었다. 유럽의 미술가와 단체, 큐레이터 사이에 대화가 부족하고 다양한 비엔날레의 경직된 구조에 대한 인식에서 출발한 마니페스타는 미술관에 대한 대안이자 전형적 비엔날레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마니페스타의 독특한 특징은 매회 유럽의 주변부 도시에서 열리며 서로 다른 사회, 정치적 상황에 부응하여 초국가적인 협력을 통해 융통성 있는 기획과 형식을 취한다는 것이다.4) 마니페스타는 초기에 국가적, 이념적 국경의 문제에 집착하였으나 동·서유럽에 걸쳐 다양한 전시를 개최하려던 애초의 계획이 여러 정치, 경제적 난관으로 실현하기 불가능하게 되자 슬로베니아 류블랴나에서 열린 2000년의 3회에 이르러서는 방향을 수정하여 중심과 주변부의 관계라는 문제를 다루기 시작하였다.

4. 뉴욕 근대미술관 PS1 국제스튜디오 프로그램
  이 프로그램은 1971년 앨라나 하이스(Alanna Heiss)와 브렌던 질(Brendan Gill)에 의해 대안적 전시공간으로 출발하였다. 퀸스 지자체가 오래된 공립학교 건물을 사무실과 전시공간으로 제공하자 하이스가 여기서 국제 스튜디오 프로그램 운영하였던 것이다. 이 프로그램에는 80년대 중반까지 북미미술가들이 다른 대륙출신의 미술가보다 많았으나 이후 점차 국제적 성격이 강화되는 모습을 보였다. 뉴욕의 스튜디오 프로그램에는 대체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술가들이 참여하는데, 이들이 뉴욕의 프로그램 참여하는 이유는 그것이 그 미술가의 경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술계의 중심지인 뉴욕에 입성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로 전위 미술계의 중심에 있는 연구자, 미술가에 한정된다. 문화교류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고 한 나라가 자국의 미술을 뉴욕 중심의 전위미술계에 등장시키기는 어렵다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문화예산이 열악한 나라의 미술가들은 지역적인 인정만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살펴본 각각의 비엔날레와 교환프로그램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미술의 세계화를 전개하였다. 특히 비엔날레는 대개 간헐적으로 미술관과 화랑을 방문하는 관객의 폭을 확장시켜 미술활동의 세계화를 가져온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볼거리를 제공하고, 다양한 관객들에게 호소하고 주최국과 다른 나라와의 접촉을 강화한다. 그러나 미술전시와 미술의 세계화에 대한 논의는 특정한 미술개념, 미술실천, 관객, 미술사를 보편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1980년대에 들어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계화가 진행된 상황에서도 유럽과 미국 미술계의 지평이 확장된 사실은 보편화한 그 특정한 미술개념, 미술실천이 서구적인 것임을 의미한다. 비평가들이, 비엔날레가 현대미술을 하나의 대중적 스펙터클이나 이벤트로 변모시키고 전 세계적으로 동질적인 상품으로 합리화하였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일 것이다.

  결국 세계와 지역의 관계를 자리매김하는 데 있어서는 미술개념의 정의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며, 이를 위해 용어나 미술과 관련된 실천은 시공간에 따라 변화하고 미술의 본성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근 중심부의 지배나 유럽중심의 미술관에 대항하여 나타나는 비엔날레는 그러한 유연한 태도를 잘 반영하고 있다.
*위 논문은 2011년 덕성여자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인문과학연구』 제16집에 실린 논문 중 ‘세계화와 미술계’를 일부 발췌한 것입니다.

1)Roland Robertson, Globalization: Social Theory and Global Culture. (London: sage, 1992), p.6.
2)David Harvey, The Condition of Postmodernity. (Oxford: Basil Blackwell, 1989), p.240.
3)Elena Filipovic, “The Global White Cube,” Barbara Vanderlinden and Elena Filipovic eds. The Manifesta Decade: Debates on Contemporary Art Exhibitions and Biennials in Post-Wall Europe (Cambrideg, MA: The MIT Press, 2005), pp.73-75.
4)Ibid., pp.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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