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이자 최악의 도시에서 전해온 희생의 가치
최고이자 최악의 도시에서 전해온 희생의 가치
  • 장우진 기자
  • 승인 2013.06.10 12: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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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원복(시각디자인) 교수 ⓒ이수현 기자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모든 것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아무 것도 없었다.’ 영문학 사상 가장 유명한 첫 문장으로 꼽히는 구절이다. 이 강렬한 문장을 품은 작품은 찰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 누구나 쉽게 읽는 소설 안에 혁명의 시대와 숭고한 희생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두 도시 이야기를 이원복(시각디자인) 교수에게 들어봤다. 


▲ 이원복 교수의 추천도서 <두 도시 이야기>

  교수님께선 평소 독서를 어느 정도 하시나요

  보통은 시간절약을 위해 필요한 부분만 읽는 경우가 많고, 예외적으로 소설만은 지식이 아닌 이야기를 전달한다는 특성상 한 권을 모두 읽는다. 소설을 워낙 좋아해서 해외에 갈 때는 비행기 안에서 읽을 소설책을 꼭 챙기는데 특히 스토리텔링이 뛰어난 작품을 선호한다. 오늘 추천한 <두 도시 이야기>와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개인적으로 스토리텔링이 가장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작품들이다.  
 

  <두 도시 이야기>를 추천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재밌으니까(웃음). 요즘 학생들에게 갑작스레 고전을 추천해도 읽지 않을 것 같았다. 우선 책과 가까워지도록 돕고 싶었는데, 문장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는 소설이 추천도서로 적절하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이 책은 18세기 영국과 프랑스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그저 즐겁게 읽는 데서 그치지 않고 프랑스혁명이라는 중요한 시기의 역사도 공부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이 책에는 교수님의 개인적인 추억도 얽혀있다고 들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미국의 컬러 만화를 흑백으로 출판하기 위한 흑백원본을 제작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컬러 만화에 종이를 대고 흑백으로 베껴 그리는 작업인데 그때 그렸던 작품이 만화로 된 <두 도시 이야기>였다. 사춘기 소년의 예민한 감수성에 어찌나 감동을 받았던지 얇은 종이 너머 검은 잉크와 여백으로 이야기를 떠오르게 하는 작업 내내 내용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면 오늘의 추천도서 <두 도시 이야기>는 어떤 내용인지 소개해주세요
  <두 도시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프랑스혁명이 한창이던 18세기 말의 파리와 런던 두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18년을 억울하게 바스티유 감옥에서 보낸 닥터 마네뜨와 그런 아버지를 사랑으로 모시는 상냥한 딸이자 두 남자의 사랑을 받는 루시, 귀족가문에 환멸을 느껴 자신의 모든 특권을 버리고 영국으로 건너온 루시의 남편 찰스 다네이 그리고 냉소적인 주정뱅이 변호사 시드니 칼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칼튼은 프랑스 첩자라는 누명을 쓰고 고소된 청년 찰스 다네이를 돕다 루시를 만나 그녀의 상냥함에 감회돼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루시는 그가 구해준 다네이와 결혼하고, 칼튼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돼버린 루시를 위해 시민법정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다네이를 탈옥시키고 다네이와 꼭 닮은 자신의 얼굴을 이용해 그 대신 형장의 이슬이 된다.
  이 책은 역동적인 혁명기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현실에서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희생을 긴장감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다룬 명작이다. 흔히 찰스 디킨스는 <크리스마스 캐롤>로 알려져 있지만 <두 도시 이야기>를 읽어보면 디킨스가 그 이상으로 뛰어난 이야기꾼임을 알게 될 거다.

  교수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과 구절을 꼽으신다면
  단연 냉소적인 변호사에서 사랑하는 루시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남자로 변하는 주인공 ‘칼튼’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 역시 칼튼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은 어느 한부분도 버릴 게 없다. 고뇌하던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죽기만 기다리던 다네이에게 자신의 옷과 신발을 신겨 내보내고 감옥에 남아 다네이를 연기하며 단두대로 나아가는 그의 모습은 안타깝지만 숭고했다. 처음 책을 읽은 뒤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나는 아노니, 그녀가 또 아기를 낳아서 내 이름을 붙여주고 그 애를 가슴에 껴안고 있을 것을.
나의 이름을 붙여준 자기의 아들, 내 눈에도 역력한 앞이마와 금발을 가진 아들을 이 장소로 데려와 상냥하고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은, 내가 지금까지 행해온 중에서 가장 훌륭한 행위이며, 지금 내가 가려는 길은,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중에서도 가장 평안한 길이라는 것을…


  소설은 18세기 파리와 런던, 두 도시를 배경으로 합니다. 또 작가 찰스 디킨스는 칼튼과 같은 영국인인데요, 이것이 작품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역사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물과 불에 비유됐다. 명예혁명 이래 단 한 번도 피를 흘리지 않은 채 현대로 이어진 정치적 역사를 가진 영국과 세 차례의 대혁명이라는 급진적인 방법으로 체제를 바꾸고 이후에도 격정적인 변화를 계속하는 프랑스는 그야말로 물과 불이다. 이는 사람들의 성격에도 그대로 반영돼 영국인들은 변화를 싫어하고 보수적인 반면 프랑스인들은 피가 뜨겁고 격정적이다. 이 작품도 영국 소설이라 인물들의 내적 갈등이 많이 부각되는데 프랑스인이 <두 도시 이야기>를 쓴다면 보다 격정적인 칼튼과 다네이, 루시가 등장하지 않았을까(웃음).

  <두 도시 이야기>는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보니 영화나 뮤지컬로도 만들어져 있는데요, 소설로 읽는 것의 매력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줄거리 자체는 어떤 형태로 접한다 해도 크게 관계없다. 하지만 영화나 뮤지컬을 먼저 접한다면 등장인물의 이미지가 처음 본 배우의 이미지로 굳어진다. 소설로 접하면 독자가 상상한 루시와 칼튼이 독자의 수만큼 태어나지만 영화나 연극에는 수백 명의 관객이 본다 해도 배우 한 명이 연기한 루시와 칼튼밖에 없지 않나. 수백분의 일로 상상의 범위가 한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소설로 읽길 권한다.

  끝으로 이 책을 통해 덕성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인생의 메시지가 있다면
  요즘 학생들은 좋게 말하면 개인주의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다소 이기적이다. 열심히 공부해 얻은 소중한 대학시절인데 대학생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보내지 않으면 아깝지 않나. 또래 학생들과 어울리며 공부하는 일이야말로 대학생이기에 가능한 것인데 스펙 쌓기에 정신이 팔려 혼자 다니는 모습을 보면 우리 학생들에겐 그럴 여유가 없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하지만 사랑하는 루시의 남편을 대신해 단두대에 서는 칼튼의 희생이 우리 학생들이 잊고 있던 타인과 함께 하는 삶을 상기시켜 줄 것이라 믿는다. 칼튼처럼 목숨을 내놓는 희생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저 타인을 배려하고 양보하는 여유를 가진 덕성인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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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수님의 서재’를 읽고 덕기자 페이스북(www. facebook.com/press.duksung)에 짧은 소감을 남겨주시는 분 중 한 분을 선정해 조우호 교수님의 메시지가 적힌 추천도서 <에티카>를 선물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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