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를 강요하는 사회
인내를 강요하는 사회
  • 조진만(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3.08.26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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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한 눈에 봐도 더위를 많이 탈 것 같은 체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은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무더운 여름으로 기억될 정도로 유독 무더웠다. 그래서 나에게 이번 여름은 괴롭고 힘든 시간의 연속이었다. 특히 폭염이 절정이었을 때, 절전의 미덕을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더위를 참아내야만 하는 일은 너무도 괴로웠다. 더운 것도 참기 어려웠지만 그보다도 이 상황을 인내하도록 강요받고 있다는 느낌이 더 싫었다. 잘못한 사람 따로, 책임지는 사람 따로 같은 기분이 들어서였다. 

  참을성이 많다는 것은 우리사회에서 중요한 미덕으로 간주되고 있다. 사사건건 불평하는 사람보다는 묵묵하게 인내하면서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이 우리사회에서는 더 높게 평가받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국가나 사회가 국민들에게 인내를 요구할 때에는 그 이유에 대한 타당한 논리와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의 인내가 자발적인 성격을 갖고, 진정한 미덕이 될 수 있다. 왜 인내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리와 설명이 타당하지 않거나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면 그것은 인내를 강요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기 힘들다.

  인내가 강요되는 사회, 그것도 빈번하게 강요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이번에 무더위를 인내한 국민들 덕분에 정부는 원전 비리 문제로 초래된 심각한 전력 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그러자 원전 비리의 문제를 방조했거나 간파하지 못한 정치권과 언론 등은 앞 다투어 무더위를 인내한 국민들의 미덕을 찬양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이번에 국민들은 무더위에 대한 인내를 강요받는 측면이 강하다. 왜냐하면 국민들이 전기를 지나치게 소비해 전력 부족의 문제가 생겨난 것도 아닌데 갑작스럽게 폭염을 견뎌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기 때문이다. 즉 국민들은 스스로 원하지 않았던 무더위에 대한 인내를 강요받게 됐고, 그 대가로 인내의 미덕이라는 위로를 듣게 된 것이다.

  국민들은 이번 일처럼 인내를 강요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희망을 항상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게 인내를 강요하게 만든 원인들에 대한 명확한 진단과 엄중한 처벌, 그리고 재발 방지를 위한 진심된 노력들이 필요하다. 심각한 문제를 일으켜 놓고 선량한 국민들에게 인내를 강요하는 것, 그리고 이것을 미덕으로 찬양하는 것은 문제에 대한 책임 추궁과 해결을 어렵게 만든다.   

  그런데 요즘 한국사회는 국민들에게 너무도 많은 인내를 교묘하게 강요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요즘 젊은이들은 과히 학대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엄청난 인내를 강요당하고 있다. 대학생들이 졸업 이후 정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명시적 또는 암묵적으로 요구하는 많은 조건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 조건들을 맞추고, 더 이상의 것들도 갖추기 위해서 오늘의 대학생들은 정말로 바쁘고 우울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다. 강한 인내심이 없다면 버티기 힘든 수준이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도 대학생들에게 돌아올 보상은 여전히 불확실하다.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재화가 부족해 까다로운 조건들을 더 많이 만들어냈다고 보는 것이 진실에 가깝기 때문이다.  

  사회가 젊은이들에게 인내를 강요하고 있는데 기성세대가 기껏 해줄 수 있는 말이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것은 부끄럽다. 아무리 좋은 말로 그 내용을 포장하더라도 나에게 “아프니깐 청춘이다”라는 말은 젊은이들에게 인내를 강요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순간 청춘을 아프게 만들었던 모든 요인들은 개선과 극복의 대상이 아닌 인내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차라리 기성세대가 솔직하게 “미안하다. 청춘아!”라고 젊은이들을 위로하면 어떨까? 그래야 청춘을 아프게 만들었던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진정으로 고민할 수 있지 않을까?

  인내를 강요당하고 아파할 수밖에 없으니 젊은이들은 무한 경쟁 속에서 무기력해지거나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전의를 불태운다. 그리고 그런 상황들이 반복되면서 젊은이들을 아프게 만들었던 것들은 더욱 견고한 모습으로 진화한다. 더 늦기 전에 “기쁜 우리 젊은 날”을 어떻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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