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애장서 1호이자
나의 애장서 1호이자
  • 덕성여대 기자
  • 승인 2004.03.15 1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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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7호 내인생의 책

▲삼국지 내용을 그린 그림 /
『삼국지』(김동성 역, 김기창 삽화, 1963(제8판), 을유문화사)

“천하 대세는 나누인 지 오래 되면 모이고, 모인 지 오래 되면 나누인다.” 이 말로써 『삼국지』는 시작한다. 장구한 인류 역사를 한마디로 통관하는 힘, 그것이 바로 숱한 세월 숱한 독자들로 하여금 『삼국지』에서 일순간도 눈을 뗄 수 없도록 하였던 것이다. 초등학교 5학 때 어린이신문에 연재되던 만화를 통하여 처음 삼국지를 알게 되었는데, 그 때 선친께서 당신이 애독하시던 번역서를 내게 주셨다. 다섯권으로 된 그 책은 이후 나의 애장서 제1호이자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사춘기의 반항기를 달래 준 것도, 입시위주의 고3시절을 위로해 준 것도, 80년대 초반의 암울한 대학시절에 숨통을 틔워준 것도 이 책이었다. 유비가 관우, 장비와 도원결의를 하는 대목에서는 친구들과 우정을 다짐하였으며, 황건적을 토벌하고자 의병을 일으키는 대목에서는 함께 의분을 느꼈다. 삼고초려끝에 제갈공명을 얻고 천하를 삼분하는 장면에서는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이 된 듯한 착각에 빠졌으며, 관우와 장비가 비명횡사하고 유비 자신조차 중도에서 무너지는 장면에서는 함께 안타까워하였다. 무엇보다도 한나라 왕실의 부흥이라는 선제의 유명을 실현하고자 혼신의 힘을 쏟던 제갈공명이 위를 정벌하러 출정하면서 올린 「출사표」에서는 그 비장함에 함께 눈물을 적셨다. 주지하다시피 『삼국지』의 정식명칭은 ‘삼국지연의’로서 명나라 때 나관중이 지은 일종의 역사 대하소설이다. 3세기에 편찬된 공식 역사서인 『삼국지』가 조조의 위(魏)를 중심으로 서술하는데 비하여, 소설 『삼국지연의』는 유비가 세운 촉(蜀)을 정통으로 삼는다. 문제는 소설이기에 독자층의 흥미를 유발하고자 역사적 사실을 과장 내지 왜곡하거나 각색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그 전략은 곧 성공하여 조선시대에 일단 수입되자 곧바로 식자층에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마침내 과거시험 볼 때 『삼국지』가 아니라 『삼국지연의』를 전거로 인용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 때문에 뜻있는 유학자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올바른 도를 훼손시킨다는 이유에서 이 책을 금서목록에 올리곤 하였다. 조선 후기 문예를 크게 부흥시킨 정조 임금이, “나는 본래 잡된 책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삼국지연의』와 같은 책은 한 번도 들여다 본 적이 없다”고 선언하였으니, 이 책이 한동안 불온도서로 낙인 찍혔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지금은 식자층들이 『삼국지』 대신 『삼국지연의』에 열광하며, 시대를 대표한다는 문인들이 다투어 번역서를 내고 있으니, 흥미를 좇아 세태가 경박해진 것인가? 『삼국지연의』를 처음 읽으면 유비를 좋아하고, 두 번째 읽으면 제갈공명을 좋아하고, 세 번째 읽으면 조조를 좋아하게 된다고들 말한다. 혹은 달리 말하기도 하는데, 누구 말이 옳다고 하기는 어렵다. 읽는 이의 처지와 시대에 따라서 역사는 다양하게 해석될 따름이다. 지금은 서가 한쪽에 비켜있지만, 언젠가 시절이 도래하면 나는 다시 이 책을 펼쳐 예의 첫구절부터 천천히 읽어내려갈 것이다. 그것은 생각만하여도 가슴 두근거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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