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원하는 것, 그게 바로 아이디어고 문화다
사람이 원하는 것, 그게 바로 아이디어고 문화다
  • 손혜경 기자
  • 승인 2013.10.08 1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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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현 상상공장 대표, 문화기획가

 젊음과 문화의 성지, 홍대 앞. 문화를 만드는 공장이 있다면?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 사일런트 디스코, 나이 없는 날 등 문화와 노는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익히 들어봤을 만한 문화 행사들. 그들을 탄생시킨 문화기획 대안기업 ‘상상공장’이 바로 그것이다. 기계 소리도 굴뚝도 없는 공장을 돌리고 있는 상상 장인(匠人) 류재현 감독(이하 류 감독)의 상상을 엿보고 왔다.



‘생각’은 없어도 ‘꿈’만은 많았던 대학시절
  “사람들은 내가 문화기획가니까 학교 다닐 때 축제 기획에 많이 참여했냐고 물어. 그런데 난 그래본 적이 없어.” 4수 끝에 서울대에 입학한 류 감독은 그저 방과 후 축구부 생활과 친구들과의 농구 한 판을 좋아했던, 또 사진과 광고에 미쳐있던 대학생이었다. “생각해보니까 토익이나 토플 시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더라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주 관심사였지 별다른 스펙 그런 것 자체가 내 눈엔 안 들어왔어.” 때문에 요즘 대학생들을 바라보는 류 감독은 안타까운 마음이 크다. “지금 대학생들 보면 불쌍할 정도야. 과제하고 스펙 쌓고…. 그런 데서 무슨 대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대학생 때부터 강박관념을 갖고 사는데 그러지 않아도 다 살아지거든. 취업 안 되면 안 하면 되지, 왜 그런 배짱이 없어?” 그저 하루하루를 즐겁게 물 흐르듯 살았던 대학생 류 감독은 함께 졸업한 친구들이 정년퇴직이란 벽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내일은 어떤 일을 꾸며볼까?’라는 생각으로 꿈꾸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클럽데이에서 하이서울페스티벌까지
홍대 춤꾼, 문화 장인이 되다
  1990년대 초, 대학을 졸업한 후 직장생활을 하던 류 감독은 ‘클럽’이라는 신세계에 눈을 뜨게 됐다. 실험적인 공연들과 전시회, 나이트클럽에선 들을 수 없었던 새로운 음악들, 그리고 재밌는 사람들까지. 당시 클럽은 춤추고 술 마시는 곳이 아닌 ‘복합 문화·예술 공간’이었다.

  그렇게 춤에 죽고 춤에 살던 홍대 클럽 키드 류 감독은 약 10년 후, 클럽문화의 화려한 부활을 꿈꾼다. “르네상스라고 말하고 싶어. 옛날에 내가 경험했던 클럽문화를 되살려내서 공유하고 싶었지. 또 홍대 앞 클럽들 간 공동마케팅을 통해서 클럽들을 잘 먹고 잘 살게 해주고 싶기도 했고.” 그렇게 탄생한 것이 홍대 앞 ‘클럽데이’다. 하나의 티켓으로 여러 클럽을 드나들며 즐길 수 있게 하자는 류 감독의 상상에서 탄생한 21세기형 신 클럽문화였다.

  2003년에는 ‘제1회 하이서울페스티벌’에 감독으로 참여했다. ‘딱딱한’ 공무원들과 ‘말랑말랑’한 영혼의 소유자인 류 감독의 만남이었다. 류 감독은 지루한 마라톤 회의 중 ‘나라면 인디밴드, 비보이 배틀, 디제이 같은 콘텐츠로 축제를 꾸며보겠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비보이 배틀 얘기를 했더니 ‘베 짜는’ 프로그램이냐 그러더라고(웃음).” 서울시 주최의 축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다. 공무원들도 주변 사람들도 모두 우려했지만 축제는 성공적으로 끝났고 비주류였던 인디밴드, 비보이, 디제이 문화는 주류 문화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착한 기업’ 상상공장의 탄생
  같은 해 류 감독은 현재 대표로 있는 ‘상상공장’ 법인을 설립했다. 대학시절부터 아이디어 내기를 좋아했던 류 감독은 자신이 죽은 후 ‘그 사람 정말 아이디어 하나 잘 내던 장인이었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마음속에만 담아뒀던 상상공장이란 기업을 현실세계로 이끌어냈다. “상상공장이라고 하는 그 정체성이 그냥 류재현이라는 사람의 특성을 반영한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생각해.” 사실 상상공장의 ‘공장’은 ‘factory’의 의미가 아닌 ‘장인 공(工)’자와 ‘장인 장(匠)’자를 차용해 ‘장인’의 의미를 갖는다. 상상하는 상상 장인 그 자체가 류 감독인 것이다.

  상상공장은 영리기업과 시민단체의 중간에 위치한 ‘대안기업’이다. 언뜻 보면 사회적 기업과 비슷해 보이지만 대안기업 형식을 채택한 데에는 문화를 기획하는 류 감독만의 철학이 담겨있다. “사회적 기업은 국가로부터의 혜택을 많이 받지만 나는 그런 것 전혀 없이 내 능력만으로 돈을 벌고 동시에 공공적인 일을 하고 싶었어. 공공적인 일을 하는데 세제 혜택도 받고 국가 지원도 받고 그런 게 싫었지.”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상상력의 힘
  끊임없는 상상력과 아이디어의 원천은 무엇이냐는 물음에 류 감독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라 답했다. “처음엔 내가 야외에서 음악 틀어놓고 마음껏 춤추면서 놀고 싶었어. 그래서 만든 게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이야. 그게 1년에 한 번 열리는데 사람들이 언제든지 다른 사람들에게 소음 같은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놀고 싶다길래 나온 게 ‘사일런트 디스코’. 또 어르신들도 홍대 앞에 있는 젊은 문화를 접하고 싶으시대. 그게 ‘나이 없는 날’로 이어진 거지.” 이외에도 시청 광장에서의 캠핑,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인디밴드 공연, 고궁에서의 클래식 공연 등 서울시민들이 서울의 어떤 곳에서든 쉽게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한 ‘서울 문화의 밤’, 그리고 환경의 날을 맞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환경에 대한 인식을 일깨우자는 의도에서 출발한 프리허그, 아니 ‘트리허그’까지 그의 손이 닿은 기획들마다 사람을 향한 그의 끝없는 탐구와 도전정신이 듬뿍 묻어나왔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서비스하고 디자인 해주는 것’. 그가 내린 문화기획의 정의이자 의미였다.

  특히 2007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이하 월디페)은 최근 외국발 페스티벌의 홍수 속에서도 명실상부 우리나라 최고의 독립 일렉트로닉 뮤직 페스티벌로 자리 잡고 있다. “월디페에는 오리지널리티와 철학이 있어. 오리지널리티라는 건 다른 페스티벌들을 보고 만든 따라쟁이 페스티벌이 아니라는 거고, 철학이라고 하면 월디페 관객의 95%가 20대야. 20대의 예술적·문화적 해방구와 소통을 꿈꾸면서 만든 거지.” 실제로 월디페에는 다른 페스티벌들에선 찾아볼 수 없는 축제마을, 20대들이 주축이 된 기획단으로 아티스트와 스태프의 중간인 ‘아티스탭’까지 특별한 문화적 요소가 가득하다.


상상 장인의 상상력은 현재 진행 중
  지난 8월에는 농촌과 함께하는 농촌 문화 활동 ‘문활’을 기획하고 강원도 양양에서 실행으로 옮겼다. 문활은 농촌봉사활동을 의미하는 ‘농활’에서 착안한 것으로 도시 젊은이들의 문화적 역량으로 농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나온 아이디어였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도시에, 홍대 앞에 있으니까 문화를 하는 데 굉장히 유리하겠다고들 말하더라고. 그래서 류재현이란 사람이 농촌에 가면 어떤 기획을 할까 상상해봤어. 젊은이들이 농촌에서 일손도 돕고 문화 활동도 하면서 어르신들과 소통하면서 그 어르신들이 그동안 축적해 놓으신 지혜들을 배우고 이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만들고 싶었어.”

  내년 월디페에서는 국내 페스티벌 최초로 ‘티켓 값 할부’라는 결제 방식을 도입할 예정이다. “월디페에 오는 대부분이 학생들인데 보통 10만 원 돈 되는 티켓 값을 한 번에 내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이틀 티켓을 4개월 할부로 팔아보려 해. 재밌는 실험이지.

  대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류 감독은 이렇게 답했다. “공부 안 했으면 좋겠어! 더 중요한 공부들이 많거든. 사람에 대한 가치를 알고 좋은 경험, 친구들을 만나는 곳이 대학이었으면 해. 나 또한 학창시절에 별 생각 없이 살았는데 지금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잖아(웃음).”
   우리 문화와 전통의 지혜가 공존하는 공동체 마을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는 류 감독. 도전과 자유를 즐기는 류 장인의 상상이 멈추지 않는 한 우리나라 문화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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