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학술문예상 소설 우수작> 후쿠시마 사람들은 언제 문학을 할까
<제39회 학술문예상 소설 우수작> 후쿠시마 사람들은 언제 문학을 할까
  • 추윤선(국어국문 3)
  • 승인 2013.11.21 1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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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람들은 언제 문학을 할까

“병원 가봤어. 2개월이래.”
“…….”
“기쁘지 않아?”
  내 앞의 남자는 말이 없었다. 듣기는 한 것 같았다. 건조한 그의 얼굴이 파삭 비틀렸다. 그 얼굴에 아침에 잘라낸 푸른 수염이 또 삐죽 나와 있었다. 그는 대답 대신 마른 세수를 두어 번 했다. 밥상을 먹다 든 손에 물기는 없었다. 수분 기 없는 그의 손의 마찰은 그의 얼굴을 더 상하게 할 것이다.
  그의 키는 아침에 식탁을 막 나설 때 훤칠했던 그의 키가 지금은 초라해진 것 같았다. 아아, 중력. 언제나 중력은 우리를 내리누르고 있었지. 누워서 자는 동안 우리는 가로로 중력의 영향을 받아 키가 늘어났고 일어나서 서 있는 동안은 다시 중력의 압력으로 키가 줄어든다고 했었다. 하물며 그는 회사에 다녔다. 시내 중심가의 고층 빌딩의 사무실 한 켠에서, 가장 중력의 영향을 많이 받을 그 곳에서 하루를 보낸 것이다. 그의 양복은 각이 죽었고 볼 수 없지만 나의 화장은 번졌을 것이다. 시간은 하루라도 지나온 흔적을 우리에게 남겼다.  
“우리한테 아이가 조금 일찍 온 것 같아.”
  그것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벌거벗겨져 세상 앞에 혼자 서 있는 기분을. 여름 밤이라도 알몸으로 세상 앞에 혼자 서게 되는 것은 추웠다. 저녁 9시 무거운 일과의 집을 지고 탁자에 앉아, 지나온 하루의 흔적이 어깨에 켜켜이 쌓여 있을 때 예기치 않게 급습하는 일격. 관통 당하지 않은 육신은 피 한 방울 흘리는 자국이 없는 데 어딘가는 분명히 아렸다.
“아침에는 좋아했었잖아. 테스트기에 두 줄 뜬 거 보자마자 아버님, 어머님이랑 우리 집에 전화 건 게 누구인데.”
“우리한테 아이가 생기는 것은 즐겁지. 근데 우리가 축복처럼 온 그 애를 잘 기를 수 있을까?”
“……당신한테 현실적인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는 게 아니었는데.”
“여보, 우리 아직 아이를 맞을 준비가 안 됐어. 우리가 가진 게 없잖아.”
  남편과 내가 발을 디디고 있는 24평 아파트는 위치로는 서울 어디로든 한 시간 내로 다닐 수 있었다. 수도권이라면 두 시간이 걸렸다. 그 안에는 할부가 삼 개월 전 끝난 오븐, 이제 막 시작한 김치 냉장고 같은 갖은 생활용품들을 구비해놓고도 부부 방 한 칸 리빙룸 한 칸 화장실 한 칸에 베란다까지 딸려 있었다. 그리고 재정적 가치로는 둘이서 갚아나가면 오 년 내로 해결될 융자가 있었다. 딱 두 사람이 살면 좋을 집이었다. 그래도 세 살, 네 살 아니 다섯 살까지는 공공요금도 무료고 한 사람 몫으로 치지도 않는데.
“강사 일도 인맥이야. 당신이 애 낳고 몇 년간 집에서 애보다 느즈막히 다시 일 나간다고 하면 그럼, 누가 당신한테 일을 가져다주는데?”
  남편은 대기업 대리를 달고 있었고 세후면 3으로 내려앉지만 그럭저럭 앞자리 4의 연봉을 받고 있었다. 연차와 실적이 붙어 일이년 안으로 과장이 될 것 같다고도 했었다.
  나는 작가가 되겠다고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가 학력만 쌓여 시간강사로 강의를 나가고 있는 처지였다. 취직을 포기하고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을 때 연하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석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대기업에 입사한 전도유망한 남편과 사귀었고 박사과정을 끝냈을 때는 그와 결혼한 후였다.
“가짜가 진짜가 될 때까지 기다려주면 안될까?”
  가짜 행복, 이라는 말을 그는 입에 달고 살았다. 카드를 긁어 계산할 때마다 그는 여보, 이거 아직 우리 행복 아니야. 쇼윈도에 있는 물건 내 집에 전시중인거지. 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나는 말이 없었고 남편은 내 대답을 기다리다가 이내 처음부터 진짜 우리 물건이었던 냉장고를 열어 맥주를 꺼냈다. 치익, 밀폐된 캔 속을 두드리던 기포들이 출구가 열리자마자 미친듯이 세상 밖으로 뛰어나왔다. 남편의 목울대를 힘껏 두드리는 그것들의 상쾌한 난동이 손에 잡힐 듯이 느껴졌다. 그래, 툭 쏘아버려. 나는 맥주를 꽈악, 쥐어보고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포도주스로 옮겨갔다. 남편은 그 동작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나는 아직 임신한 사람이었다. 내가 시선을 돌리기 전에 남편은 얼른 보지 않은 채 TV로 시선을 돌렸다.
「왜 다시 원전지역으로 돌아왔습니까?」
「시외에 있는 대피소로 갔더니 사람이 꽉 찼고, 친척집에선 절 받아주기를 거절해서 그냥    왔습니다.」
「슬프거나 무섭진 않나요.」
「살던 대로 살아야죠.」
  후쿠시마 사고가 난 지 지금이 며칠 째더라. 얼마 전까지 원전폭발 당시 장면과 유출량만 계산하던 TV에선 이제 후쿠시마 사람들의 현장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TV 속 현지인은 무척 덤덤하게 인터뷰를 진행했다. 뻔히 알면서 뭘 저런 걸 묻나 하는 순간까지도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에게는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았다.

“안 잘 거야?”
“강의안을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아서. 먼저 자.”
  화장대에 앉아서 나이트 크림을 바르며 남편에게 대답했다. 남편이 알았다며 먼저 침대에 들어갔다. 그러거나 말거나 면세점에서 모셔온 스네이크 크림을, 스패츌러로 손톱만큼 떠서 조심스럽게 펴 바르는 데 집중한다. 바르는 보톡스라던가, 주름 완화에 그렇게 효과가 좋다며 주위에서 안 바르는 여자가 없었다. 털컥. 화장품을 바르는 데 집중해서 그 소리를 정말 늦게도 알아차렸다. 무심코 바라보니 늦게 자는 변명의 이유로 둘러댄 강의안이 화장대 밑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있었다.
‘문학이란 무엇인가’
  강의안 제목이 보였다. 문학이란 정말 무엇일까. 그것을 알기 위해 나는 학교에 오래도록 머물렀다. 작가가 되고 싶어서 국문과에 진학했지만 작가는 문창과 애들이 되는 거였다. 사실 사회학과도, 심리학과도, 심지어는 회계학과도 작가가 되었으니 그런 문제는 아니었다.
강의안을 내려놓고 싶었다. 오래도록, 한 아이가 클 때까지.

  우리 일이래도 사실은 우리 일 만은 아닌 거니까, 라는 내 말에 남편은 시댁과 친정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에 동의했다.
“첫 손주인데 죄송하지만, 이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한창 사회에서 자리 잡아 나가는 시기이잖습니까. 지금 아이가 들어서면 저희도 힘들고 애도 잘 못 해줄 것 같아서, 한 두해라도 더 미루고 싶어요.”
시댁은 썩 좋아하는 눈치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머리띠 매고 결사반대하는 눈치도 아니었다.
“그래, 뭐. 우리 때 같으면 무조건 낳는 게 수였지만, 요즘에 애 하나 기르는 게 원체 힘드니. 우리가 길러줄 것도 아니고, 너희 결정인데 더 뭐라 하진 않으마.”
“그나저나 과일이 당기면 딸인데…….”
  그녀는, 묘하게 감이 좋은 데가 있었다. 예리한 시어머니의 시선이 금방이라도 내 자궁을 갈라 아이의 밑을 들여다 볼 듯 했다. 시선이 불편해 먹던 포도를 내려놓았다. 남편의 집안은 손이 귀했지만 그 와중에도 백마 해에 딸을 배고는 백말 띠는 기가 세서 남편 잡아먹는다며 지워버린 시어머니였다.
   영어 유치원이다 뭐다, 애를 기른다고 하면 으레 하는 얘기가 오가고 수입이 반토막 날 미래를 걱정하며 이 결정으로 그 미래가 조금 미뤄진 것에 즐거워했다.
“내가 몸이 이래놔서. 많이 도와준다 하지도 못하겠고…….”
“아뇨, 어머님. 건강 챙기셔야죠.”
  엄마를 보고 결심이 섰다. 아이를 낳고 내가 이도저도 못하고 있으면 결국 힘들다 힘들다 해도 낡은 삭신으로 헤진 젖을 물려줄 사람은 우리 엄마였다.

   산부인과의 줄이 길었다. 임신 확인을 받으러 온 산부인과는 공교롭게도 낙태 수술도 겸하는 곳이었다. 어쩌면 나 또한 은연중에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많은 산모들이 끊임없이 병원을 왔다갔다하는 와중에도 날 보고 아 어제 오셨던 분, 하고 웃던 간호사는 이어지는 내 말에 목소리를 낮춰 이것저것 설명해 주었다. 우리 병원에서는 수술 사유를 합법적으로 적어 주고 있다, 그래도 법망에 걸리지 않기 위해서 일반 산모들 진료 사이에 순서를 넣어두겠다 같은.
 기다리는 동안 둘러보니 산모들은 나이가 아주 어리기도 했고 적당하기도 했고 고령화 추세에 맞추어 많기도 했지만 공통점은 제각각 뭔가가 있다는 점이었다. 남편의 손을 잡고 있거나, 둘째나 셋째를 가진 산모들은 어린아이의 손을 잡고 있었고 하다못해 아무도 곁에 없으면 부푼 배라도 끌어안고 있었다.
나는 겸연쩍어 핸드폰이라도 손에 들었다.
「앞으로 살아갈 곳이 없어요.」
  인터넷을 켰을 때 나온 모바일 페이지 신문 1면 제목이었다. 강하게 슬픈 얼굴과 제목, 최근의 화제는 너무도 유명했으므로 기사 내용을 보기도 전에 후쿠시마 사태라는 것을 알았다.
「……정부와 도쿄전력은 이 사태에 대해 책임져야 합니다! 평생을 살아온 고향 땅을 뺏겼어요!」
  이 화제가 너무도 유명하다는 내 생각이 맞다는 듯이 때마침 병원 TV에서도 후쿠시마 뉴스가 나왔다. 목소리에 홀려 나는 TV로 시선을 돌렸다. 눈이 시뻘개진 여자가 격앙된 표정으로 호소했다. 녹슨 쇠를 긁는 듯한 적갈색 목소리의 여자는 청각적 선호도와 다르게 말하는 내용이 마음에 끄는 데가 있었다. 전의 인터뷰의 남자와는 정반대였다. 재앙뉴스에는 그렇게 무감각한 사람보다는 저 여자처럼 적당히 미친 것 같은 반응이 사람들의 구미에 맞을 것 같았다. 그러나 배가 부른 임산부들이 가득 있는 산부인과에서 틀어주기에는 자극적인 영상이라 곧 간호사 하나가 와서는 급히 소리를 내렸다. 틱, 틱, 틱, 틱톡, 틱, 틱. 딩동.
“393번 산모님, 수술실 들어가시면 됩니다.”
“잠깐만요.”
“괜찮아요, 산모님.”
  괜찮다는 말은 얼마나 반어적이란 말인가. 그녀는 긍정을 말하면서 내 뜻에 반하고 있었다. 핸드크림을 매일 꼼꼼히 발라온 간호사의 손은 부드러웠지만 억셌다. 
그리고 그녀가 나를 지칭하는 산모라는 말은 얼마나 아이러니한 말인가. 곧 그녀의 손으로 나를 산모가 아니게 만들텐데.
“핸드폰, 다시 확인해야 할 것 같은데…….”
“아주 금방이에요. 수술 받고 바로 일 나가시는 분들도 많으세요. 수술도 아니에요. 그냥 시술이다 생각하세요.”
빨리빨리, 그녀는 내 등을 밀었다. 당신 같은 사람들은 많이 겪어봤다는 투였다. 생과 사에서 고민하다가, 울다가, 안절부절 하다가 그러다가 결국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도로 수술실로 들어가는 산모들. 최후의 고해의 시간은 당신들의 것 일뿐, 나에게는 잔업으로 남는 타임로스라는 듯이.
미처 풀 것을 풀지 못한 채 차가운 수술실에 등을 맡겼다. 수술실 불빛이 눈물이 흘렀다.
“마취 들어갑니다. 숫자 세세요, 하나 둘…….”

  나는 생에 남았고 내 뱃속을 기어 다니던 것은 사로 갔다. 간호사가 핸드폰을 가져다 주었다. 거봐요, 쉽잖아요 라는 듯이. 폰을 열어 연락을 확인했다.
「남편 외근 중 교통사고. 위독함」
  한 통의 문자 위로 수십 건의 부재 중 통화목록이 이어졌다. 시어머니로부터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로부터의 전화가 쏟아지고 있었다. 전화의 박력에 나도 모르게 액정 슬라이드를 슥 긋고 전화를 받았다. 네, 어머님. 그 말을 하기도 전이었다.

「애 지웠니?」
“…….”
「왜 말을 안 하니!」
“어머님, 남편은…….”
“애는!”
  휙 뒤돌아 봤다. 아니 뒤돌려졌다. 전화 상의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점차 선명해진다 싶더니 어느 순간 정말로 내 앞에 있었다. 허둥대는 내 모습을 아래위로 한번에 훑어 본 그녀의 눈동자가 붉어졌다. 그녀는 늘, 감이 좋았다. 수술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남편의 사고는 수술과 거의 동시에 일어났었다. 그 말은 시어머니가 남편의 병원은 코빼기도 안 비추고 곧장 이곳으로 달려왔다는 이야기였다.
“살인마! 이 병원 고소할거야!”
“어머 어머님, 진정하셔요…….”
“어, 어머님 환자분을 생각하셔서라도…….”
“네가 내 손주를 죽였다! 네가 우리 집안의 대를 끊었어!”
  삐익, 귀가 울렸다. 뇌가 흔들리며 분리된 고막에서 이명이 울었다. 뇌가 흔들리며 생각도 두서가 없었다. 회사 일로 차를 타고 있다 죽었으니 업무상 재해이려나. 보상금이 나오겠구나. 내일 강의는 어떡하지. 시간강사 처지에 비우기가 쉽지 않을 텐데. 시어머니가 흔드는 대로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분홍과 파랑의 귀여운 병원 벽지가 눈앞에서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했고 이 꼴을 보고 당황한 배가 부른 임산부들도 보였고 고소라는 말에 땀을 뻘뻘 흘리는 병원 사람들도 보였다. 그리고 TV에서는 아직도 후쿠시마 특집을 하고 있었다. 세슘에서 안전한 TV 안에서 그 사람들은 울고 웃었다.
후쿠시마 사람들은 언제 문학을 할, 까.


<제39회 학술문예상 소설 우수작 수상소감>
  밤새 뒤척이다 받았던 아침 11시의 당선 문자. 참 기쁘고도 부끄러웠습니다. 혼자 끼적이던 글이 모두의 앞에 보이는 글이 된다니 그때서야 글을 쓸 때 자신에게 진작 묻고 또 물어야 했던 질문들이 떠올랐어요. 투철한 고민을 했던가? 자신을 아프도록 몰아붙이고, 솔직하게 털어놓으려 노력했던가? 종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덤비려 노력 했던가……. 지금 이 순간의 부끄러움을 잊지 않고 앞으로의 글을 쓰는 자세로 삼겠습니다.

  얼마 전, ‘아픈 손가락’에 대해 글을 쓴 적이 있었습니다. 다 정리했다, 담담해졌다, 잊었노라 자신만만했던 기억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많이 울었습니다. 글을 쓰고 또 써도 쏟아지는 말이 그리도 많은지 종이장이 하얗게 질리도록 글을 썼습니다. 두서없이 말이, 문장이, 마른 줄 알았던 원망이 콸콸 쏟아졌어요. 제 글을 보니 소설은 어디가고 눈물 냄새만 실컷 났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난 지 2년이 지났습니다. 일본 정부는 이제 후쿠시마는 안전하다고, 들어가도 된다고 말합니다. 먹어서 후쿠시마를 돕자고 후쿠시마 지역 농산물을 정부 차원에서 팔기도 합니다. 일본 여행이 싸졌다고 걱정은 접어두고 다녀오는 사람들도 있죠. 후쿠시마 사태는 정말 다 끝난 건가요. 아마 지금 후쿠시마에 사는 사람이 글을 쓰면 저처럼 제대로 되지 못한 글이 나오지 않을까요. 헤아릴 수 없는 커다란 감정만이 넘치는 글이 나오지 않을까요. 고통을 단지 덮어두거나, 임시방편으로 무감각해지는 게 아니라 아프도록 절절히 소화할 수 있다면 후쿠시마에서 좋은 문학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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