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9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 우스운 당신에게
<제39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 우스운 당신에게
  • 이수정(영어영문 4)
  • 승인 2013.11.2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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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당신에게

  저는 그 날 신나게 컴퓨터를 하고 있었어요. 재밌었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점심 때 쯤 당신 아들은 제 방문 앞에 왔어요. 저는 그 발소리를 듣고는 그 다음 소리를 예상했죠. “수정아, 밥 먹자.” 그런데 웬걸요. 제 귀에 들리는 그 다음 소리는 “수정아, 할아버지 돌아가셨다.”였어요. 당신 아들은 제 뒤통수에 대고 말했어요. 마치 “수정아, 밥 먹자.”라고 하듯이. 그렇게 한마디 내뱉고는 태연하게 본인방으로 돌아갔어요. 그렇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는 마세요. 제가 대신 울었으니까요. 아무 계산 없이 울 수 있었던 건 그 때 뿐이었어요.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되더라고요.

  장례식장에 가니 당신의 큰아들, 둘째아들, 셋째아들 그리고 딸, 모두 모여 있었어요. 명절이 아닌 날에 그들이 함께 있는 모습은 아마 처음 보는 듯 했어요. 다들 흰 상복을 입고 있었죠. 제 눈엔 그저 흰 상복을 입은 그들이었지만 당신 눈에는 어쩌면 하얀 배냇저고리를 입은 아이들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아주 오래전엔 당신이 흰 배냇저고리를 입고 곤히 자는 그들을 내려다보았겠지만 그 날 만큼은 그들이 잠들어 있는 당신을 내려다보았겠네요. 당신이 그들을 내려다봤을 땐 얼굴 가득히 미소가 번졌겠지만 그들이 당신을 내려다볼 땐 얼굴 전체가 일그러져 있었겠죠. 그 때 당신의 기분은 어땠나요.

  당신은 기억하나요? 당신이 우리 집에 있을 때 가끔 나에게 이것저것 선물을 했죠. 어쩔 땐 낡은 볼펜, 어쩔 땐 지저분한 머리끈, 또 어쩔 땐 포장지도 뜯지 않은 머리핀이기도 했죠. 선물을 내밀고는 입꼬리를 실룩대며 하는 말은 “네 이거 할래? 안 필요하나?”였죠, 언제나. 당신은 단 한 번도 “이거 가져라.”하는 식의 말은 하지 않았고 저는 단 한 번도 그 선물을 받지 않았죠. 제 대답은 “아뇨, 필요 없어요.”였어요, 언제나. 그 때 당신의 기분은 어땠나요.

  제가 그렇게 매번 당신의 선물을 보란 듯이 거절한 것은 아마 당신이 우스워보였기 때문이에요. 당신도 알고 있었겠죠. 저 뿐만 아니라 모두가 당신을 우습게 생각한다는 걸. 당신은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도 그 어떤 힘도 없었어요. 이가 빠지고 귀가 멀고 병들었을 뿐이었죠. 모두가 우습게 생각할만한 것들을 두루 갖춘 셈이죠. 

  당신이 제일 우스웠던 때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이었어요. 설날 덕분에 저는 오랜만에 시골에 내려갔죠. 당신에게 인사를 하러 갔지만 당신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었어요. 당신 방에서는 항상 정체모를 매캐한 냄새가 가득했어요. 그 냄새가 싫어 얼른 다시 문을 닫았어요. 그러곤 저는 당신의 존재 자체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곤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어요. 바로 그 때 당신 방문이 슬며시 열리더니 열린 문 틈새로 빼꼼히 내다보는 당신 얼굴이 보였어요. 기억나나요? 당신은 저를 보며 활짝 웃었죠. 살점하나 없는 새까만 피부에 새하얀 머리카락을 달고 있는 당신의 얼굴은 정말 활짝 웃고 있었어요. 그 때 왜 그렇게 아무 말 없이 웃었던 거예요? 저는 아직도 궁금해요. 제가 당신 둘째 아들의 딸이란 걸 아셨나요? 제가 당신 손녀 ‘수정’이란 걸 알고는 웃으신 건가요? 치매에 걸린 당신은 왜인지 건강했을 때 보다 훨씬 더 자주 웃으셨죠. 누가 무어라 말하면 당신은 “허허”하고 웃었죠. 잘 들리지 않아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듣지 못한 당신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대답이었겠죠.

  빠끔 내밀고는 미소 짓는 당신의 얼굴은 정말 우스웠어요.

  그게 너무 우스워서였을까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어, 안녕하세요.”라며 인사 같지도 않은 인사를 하고는 당신이 그 문틈 사이로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멍하니 보기만 했어요. 소파에 앉아 당신 방에 들어가 다시 인사를 하고 잠깐 옆에 앉아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당신 방의 그 매캐한 냄새가 싫어서, 귀가 어두운 당신을 위해 소리를 지르듯 말하는 것이 싫어서 관뒀어요. 아니, 사실 이 모든 건 핑계예요. 당신이 우스워서 관뒀죠.

  피로함, 슬픔, 죄책감에 지쳐 모두가 자는 척 하며 널브러져 있는 깜깜한 장례식장 마룻바닥에서 저는 자꾸만 문 틈 사이로 빠끔히 내민 당신의 얼굴이 생각났어요. 새까만 피부에 하얀 머리카락을 달고 활짝 웃는 얼굴. 그 얼굴이 제가 당신을 마지막으로 본 얼굴이었네요. 그 땐 몰랐어요. 그게 마지막이 될 줄은. 고요한 마룻바닥에 누워서 수없이 되뇌었어요. 그 때 나는 당신의 방에 다시 들어갔어야 했다고. 그 매캐한 냄새가 아무리 싫었어도 소리 지르며 말하는 것이 아무리 싫었어도 아니, 당신이 아무리 우스워보였어도 그 때 저는 당신의 방에 다시 들어갔어야 했다고. 이 생각 때문에 저는 모두들처럼 자는 척하려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눈을 꼭 감고 있어도 자꾸만 눈물이 나오고 눈물이 나오니 콧물도 나와서 계속 훌쩍이게 됐어요. 그런데 눈물을 참는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게 뭔지 아세요? 제 가증스러움이요. 평소에 당신이 어떻게 지내는지 관심도 없고 어쩌다 만나도 살갑게 대하기는커녕 오히려 당신을 우습게보던 제가 당신의 죽음에 슬퍼하고 울고 있다는 게 너무나도 가증스럽게 여겨졌어요. 혹시라도 그 마룻바닥에 누워있는 사람들이 저의 가증스러움을 눈치라도 챌까 더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눈물은 멈추지 않았어요. 울고 있는 제가, 눈물을 참으려는 제가 부끄러웠어요.

  당신이 정정하실 때에 틈만 나면 신문이든 잡지든 모든 것을 읽으려고 하셨죠. 신문을 쫘악 펼쳐 놓고는 중지로 글자 하나하나 쓸어가며 소리 내어 읽었어요. 더듬더듬 그리고 또박또박 읽는 그 소리가 그 땐 시끄럽고 싫었어요. 글을 누구에게 배우지 못한 당신이 스스로 깨우쳐 공부하는 그 모습을 왜 한 번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당신은 제 방 책장에 얼마 되지 않는 책들을 보고도 “숱하다”라며 부러움의 눈길로 쳐다보곤 했죠. 당신은 그 책들 중 어느 한 권이라도 손에 쥐고 소리 내어 읽어보고 싶었겠죠. 저는 그걸 빤히 알면서도 어느 것 하나 내어주지 않았죠. 그런데도 당신은 딴 건 몰라도 제 책에 손 한 번 대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한 번 보실래요? 그 곳에서 크게 소리 내서 읽어보실래요?

  ‘나는 어머니가 좋았지만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인상을 썼다. 나는 내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어머니가 자주 웃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때 나는,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김애란 「달려라 아비」

  저는 당신이 시간이 흐를수록 왜 그렇게나 우스워졌는지 저 구절을 읽고 나서야 어렴풋이 알게 됐어요. 당신이 우리를 너무 많이 사랑했기 때문이 아닌가요? 맞나요? 그런 줄 알았더라면, 미리 알았더라면 저도 조금은 같이 우스워졌을 텐데. 저는 당신이 좋았지만 그것을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외면했어요. 미안해요.

  당신 혼자만 우습게 만들어서 정말 미안해요.

<제39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 수상소감>

  한 갓난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있습니다. 아기는 엄마를 좋아하지만 그 마음을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자꾸만 얼굴에 주름을 구깁니다. 아기가 얼굴 주름을 구길수록 엄마는 더 자주 웃습니다. 그 때 아기는 문득 깨닫습니다. 사랑이란 어쩌면 함께 웃는 것이 아니라 한쪽이 우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한 때,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품에 안겨 얼굴 주름을 구겼을 겁니다.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엉금엉금 기어 다니기도 하고 두 발로 뒤뚱뒤뚱 걷기도 했을 겁니다. 말도 안 되는 요상한 옹알이도 하고 그러면서 침은 또 얼마나 많이 흘렸을까요. 예전에 우리는 정말 우스웠을 겁니다. 이런 우리의 우스운 모습을 부모님들은 흐뭇하게 지켜보셨겠죠. 그런데 우리와 부모님의 입장이 바뀌면 어떨까요? 시간이 흐를수록 우스워지는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모두가 함께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1학년 때부터 줄곧 신문사의 학술문예에 참여해보고 싶었습니다. 매번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고 미루다 이렇게 졸업 직전에야 참가하게 되었네요. 제 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것이 부끄럽기도 하지만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읽는 분들의 마음에 오래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몸도 마음도 무거운 요즘, 수상 소식은 저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습니다. 학교를 떠나기 전 또 하나의 좋은 추억이 생겨 정말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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