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은 내 삶의 전부입니다
한복은 내 삶의 전부입니다
  • 류지형 기자
  • 승인 2013.12.02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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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고유 의상 한복. ‘한복’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바로 한복 연구가 박술녀다. ‘한복 전도사’라 불리는 그녀는 지금까지 흘린 땀방울이 있었기에 지금의 자신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한복 인생 29년, ‘한복이 나의 전부’라고 말하는 한복 연구가 박술녀(이하 박 연구가)에게 그녀의 인생과 한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어릴 적 한복집 앞에만 가면 발을 떼지 못했어요
  “저희 어머니는 한복을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생계를 위해 동생을 등에 업고 생선 장사를 하셨지만 집안에 결혼식이라도 있는 날에는 허름한 바지 대신 한복을 입고 외출을 하셨어요. 어머니의 한복이 예뻐서 만지작거리고 몰래 입어보기도 했죠.” 박 연구가가 한복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 컸다. 7남매 중 셋째 딸로 태어난 그녀는 어머니가 한복을 입은 모습을 눈여겨보면서 어떻게 하면 한복을 맵시 나게 입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어머니가 한복을 입으신 것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어머니의 큰 가슴을 잘 조여매 날씬하게 보일 수 있을까’ ‘주름을 다리미로 펴볼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점차 한복에 매료됐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시장에 가면 한복집 앞에서 발을 떼지 못했어요.” 박 연구가가 평생 한복의 길을 걷게 된 시작점이었다.

 

26살 늦깍이 문하생, 한복을 배우다
  박 연구가는 어려운 집안 형편 탓에 일찍이 생계에 뛰어들어야 했다. 동생들을 위해 천안의 방직공장에서 일하다 26살에 서울로 상경해 1세대 한복 디자이너 이리자 선생의 문하생으로 들어가게 됐다. “선생님의 문하로 들어가기를 수차례 청한 끝에 한복 짓는 일을 본격적으로 배우게 됐어요. 26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시작했기 때문에 남들보다 몇 배는 노력해야 했죠.” 그녀는 이리자 선생에게 한복 짓는 기술과 한복 연구가로서의 면모뿐 아니라 강인함까지 배웠다고 한다. “선생님께서는 칭찬을 절대 하지 않으셨어요. 옷에 얼룩이 져 있으면 이건 얼굴에 침을 뱉은거나 마찬가지라고 호통을 치셨죠.” 박 연구가는 많이 혼나기도 했지만 그 덕분에 지금의 위치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한복에 대한 열정이 나를 만든 원동력
  비교적 늦게 한복 짓는 일을 시작한 박 연구가는 문하생 시절, 아침 9시부터 새벽 4시까지 잠자는 시간을 쪼개가면서 한복을 만들었다고 한다. “한복에 대한 열정뿐이었죠. 한복에 미쳐 살았어요. 제가 사랑하는 한복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죠. 자식들에게 배고픔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저를 더욱 열심히 살게 만들었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한복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 일을 즐길 수 있었죠.”


  지금도 여전히 별을 보고 출근하고 별을 보고 퇴근한다는 그녀. 한복 일에 뛰어든 지 어언 29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박 연구가는 하루도 쉴 수 없다고 말한다. 모든 일을 직접 챙기고 관리해야 직성이 풀린다는 박 연구가는 말 그대로 한복 ‘장인’이다. 몇 년 전에는 과로와 스트레스로 갑상선 암을 얻어 투병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의 장인정신은 수술한 지 이틀 만에 그녀를 툭툭 털고 퇴원하게 했다. “박술녀라는 이름을 신뢰하고 매장에 오는 손님들이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쉴 수 없었죠. 내가 좋아하는 일을 시작한 것에 대한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어요. 또 한복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이기도 했죠. 비단에 한땀 한땀 공을 들여 한 벌의 한복이 완성될 때면 여전히 가슴이 벅차올라요.”


전 세계에 한복을 알리는 것이 한복 전도사의 역할이죠
  매년 국내외에서 한복 패션쇼를 여는 박 연구가는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대중에게 한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한복 전도사’로 불린다. “우리 옷이 사람들에게 잊힐지 모른다는 생각에 한복 전도사를 자처해왔죠. 한복을 잘 만들어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또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박 연구가는 많은 연예인들과 방송인들이 한복을 원한다고 하면 조건을 따지지 않고 빌려주기도 했다. 방송을 통해 한복의 아름다움도 자연스레 알릴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연구가는 우리대학 창업 동아리 ‘꽃신을 신고’ 주최 한복파티에 첫 회부터 참여해 한복을 대여해주고 심사위원을 맡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덕성여대 학생들이 부탁을 해왔을 때 한복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것이 느껴졌어요. 무엇보다 젊은 세대가 한복에 관심을 가져줘 기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복의 앞날에 대한 희망이 보였다고 할까요?”

  그녀는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 의상인 한복이 잊히지 않기 위해선 국민의 의식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복은 명절과 결혼식 날에만 입는 옷으로 인식돼왔습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특별한 날조차 한복을 입지 않아요. 한복은 조상의 얼이 담긴 우리 옷입니다. 우리가 입지 않으면 한복은 묻히고 말 것입니다.”

한복을 사랑하는 사람이 입은 한복이 좋은 한복입니다
  ‘한복을 사랑하는 사람이 입어야 좋은 한복이 된다’고 말하는 박 연구가는 그냥 입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입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보통 한복을 입는다고 하면 형태만 걸쳐 입는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옷의 매력은 단아함과 품위입니다. 옛날에는 7가지 정도를 갖춰 입었어요. 바쁜 세태로 인해 지금은 순서가 간소화됐지만 이마저 챙겨 입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복을 입을 때에는 속바지를 입고 어울리는 신을 챙겨서 신으며 머리는 가지런히 묶는 정성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무엇보다 사람과 의복이 하나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옷을 잇는 박음선이 울지 않아야 입은 사람의 격이 높아지는 법입니다. 굵은 것을 가늘고 곱게 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바느질 솜씨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박음선을 정성스럽게 바느질하고 평평하게 만들고 세세한 것까지 정성을 다해야 아름다운 한복이 됩니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한복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복’이란 무엇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박 연구가는 ‘한복은 나의 전부’라고 답했다. “가족을 제외한 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가족이 삶의 원동력이라면 한복은 나의 전부입니다. 저는 한복을 만들면서 가족과 모여 밥을 먹고 아들의 끼니를 챙겨주는 등 평소에 누리는 소소한 행복을 포기했어요.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복에 혼신을 다 부었기 때문에 지금의 박술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회하지 않아요”라며 뿌듯한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으로 덕성여대 학우들에게 한마디 해달라는 기자의 부탁에 박 연구가는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선을 다하면 좋은 결과는 분명히 옵니다. 상투적인 말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제가 살면서 깊이 느낀 것입니다.”

  그녀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한복을 짓고 싶다고 한다. “물론 100살까지 건강이 허락한다면 좋겠지만 적어도 90살까진 한복을 짓고 싶습니다. 저를 겉으로 보이는 화려한 모습보다는 그냥 한복을 사랑하는 박술녀로 봐줬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한복 연구가로서 저를 인정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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