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구에는 문화가 없다
문화지구에는 문화가 없다
  • 김민정 기자
  • 승인 2004.03.29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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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쉽게 변질되고 만다. 따라서 모든 단어의 수식어 앞에는 그 영향에 관계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순수’라는 단어가 앞 다투어 붙여지곤 한다. 사랑도 왠지 미덥지 않아 순수한 사랑이라 미리 쐐기를 박아두는 편이 낫고 양심에도 상대방에 대한 호의에도 ‘순수’라는 수식어가 붙어야 왠지 안심이 된다. 문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과연 이 땅에 자본의 논리에 구애 받지 않은 순수 문화가 존재할 수 있는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흥청망청 먹고 마시며 즐기는 생활이 문화가 되어 가는 요즘, 솔직한 심정으로 우리 문화의 미래는 불안할 뿐이다.
 지난 22일 홍대 앞에서는 반라의 남성들이 풍악을 울리며 상여를 메고 행진하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졌다. 그 누구의 죽음도 아닌 순수 문화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에서 그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웃통을 벗은 채 질펀하게 막걸리를 마시며 한 바탕 춤판을 벌이고 있었다. 인디문화의 메카이자 ‘대안공간 루프’나 극단 ‘씨어터 제로’와 같은 새롭고도 다양한 실험 예술이 숨쉬고 있는 홍대 앞이 ‘문화지구’로 지정되면서 상업자본에 밀려 그 순수성을 잃게 될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문화지구’는 2000년부터 정부가 지역문화 육성을 위해 도입한 제도로 인사동에 이어 올해에는 홍익대 앞이 지정, 곧 실행 될 예정에 있다. 하지만 그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발전시키고 부흥시켜야 하는 문화지구는 현재 오히려 순수 예술을 죽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 즉 문화지구로 지정이 될 경우 상권이 형성되면서 땅 값은 자연히 올라가게 되고 이에 따라 건물주들은 재건축이나 건물 세를 올리는 등 돈이 될 만한 장사를 궁리하게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작 자본이 부족한 극단이며 문화 예술인들은 자신들이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이 날 열린 퍼포먼스를 기획한 아방가드르의 새로운 문화 창출 공간인 ‘씨어터 제로’ 역시 건물주의 재건축 요구로 4월말 폐관이 될 예정으로 극장을 살리고 순수 예술을 살리기 위하여 이 같은 행사를 열게 되었다고한다. 극단의 대표 심철순씨는 “장기적으로 문화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대안까지 모두 충분히 고려한 후 문화지구로 만들어야죠. 주먹구구식의 이러한 방식은 결국 순수 예술, 정말 문화를 발전시킬 수 있는 대안 예술을 죽이는 겁니다.”라며 문화지구가 문화의 발전이 아닌 오히려 문화의 쇠퇴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과 무리를 일으키면서 까지 누드를 선택한 것은 시민들에게 예술을 통해서 느낄 수 있는 일탈의 해방감과 대리만족을 주는 동시에 가장 순수한 형태의 모습으로 순수 예술을 대변해 주고 싶었기 때문이라 답했다. 
 현재의 상업문화가 값비싸고 화려한 옷을 입으며 사람들을 유혹한다면 순수 예술은 이렇게 인간의 몸 자체를 솔직하게 보여주는 데 그 의미가 있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네온사인을 밝히는 불빛과 그 크기로 사람을 압도하는 멀티플렉스 극장, 대형 레스토랑과 같은 문화가 가지고 있는 자본의 화려함에 익숙한 나머지 무엇이든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착각에 사로잡혀 버렸다. 하지만 정신적인 부분의 영역을 물질로 대신해서 채워 놓는다 한들 그게 얼마나 갈까? 그리고 그 돈으로 포장된 문화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발전할 수 있을까? 문화의 발전을 가장 가로막는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획일화 하려 드는 태도이다. 자본에 의한 예술은 그 액수에 따른 약간의 차이일 뿐 똑같아 질 수 밖에 없다.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도할 때에는 그만큼의 모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을 중시할수록 상업적 성공의 가능성이 높은 분야만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흥행 영화처럼 국민 천 만명이 보고 그만큼의 수익을 올리는 문화만이 다가 아니다. 찾는 이는 얼마 없더라도 그 일부 사람들에게 충분히 감동을 주고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실험예술도 문화의 한 부분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아무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자꾸만 밖으로 내몰아 간다면 우리 모두는 기계가 찍어낸 듯한 판에 박힌 문화생활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곧 인간의 복잡한 뇌를 하나의 사고로 통제할 수도 있는 무시무시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문화란 그 무엇보다도 인간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어떻게 보면 인간의 삶, 그 자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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