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엄마이자 학생, ‘마던트’를 체험하다
[여성] 엄마이자 학생, ‘마던트’를 체험하다
  • 장우진 기자
  • 승인 2014.03.17 16: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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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글마던트’라는 단어를 아는가. 마던트란 엄마(mother)와 학생(student)의 합성어로 학업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는 젊은 엄마(임부 포함)를 뜻한다. 이 중에서도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기르는 싱글마던트는 사회의 차가운 시선까지 더해져 양육과 일상생활에 어려움이 크다고 한다. 20대 미혼모의 증가와 함께 싱글마던트 역시 늘고 있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 이해도는 아직 미흡한 현실이다. 이에 싱글마던트가 대학생활에서 어떤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기자가 약 10kg의 임신체험복을 착용한 채 2일간 생활해봤다.


 

  “나 임신했어. 혼자 키워야 할 것 같다.”

  남산만 한 배를 안고 약속 장소에 나타나자 오랜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창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애, 애기 아빠는?”하고 말을 더듬는 친구에게 모른다고 말하며 웃었을 때 친구는 말을 잃었다. 짧지만 긴 침묵이 흐르고 내 손을 꼭 잡은 친구는 연신 괜찮다고 말했다. 전혀 괜찮지 않은 표정으로 무엇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진 / 손민지 기자

  2만여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지만
  내 주위에는 있을 것 같지 않은 존재

 
개강 첫 주 목요일, 10kg의 모래주머니를 펑퍼짐한 원피스와 쫄바지 아래 숨긴 채 만삭의 임산부로 변신했다. 스스로도 어색해하며 들어선 캠퍼스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만 같았다. 호기심을 담아 힐끔거리는 학우들의 시선은 따가운 바늘이 돼 고스란히 등에 와 박혔다. 학내로 배달을 온 배달부 아저씨도 만삭의 여학생이 캠퍼스를 활보하는 것이 놀라운 듯 내게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오토바이를 몰고 지나갔다.

  평소보다 무거운 다리로 계단을 올라 강의실에 들어섰을 때 임신체험 중인 사실을 몰랐던 동기들은 경악에 찬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말도 안 돼, 대체 어쩌다가…”라고 말을 잇지 못하는 친구에게 사실 체험이라고 속삭이자 나를 처음 본 순간에 머릿속으로는 오만가지 상상이 지나갔다고 했다. “어떤 말을 하건 상처를 받을 것 같은데 아무 말도 안 할 수는 없어서 당황했어.”부른 배를 안고 맨 앞줄에 앉아 있는 나를 본 교수님은 몇 년 전에도 이런 대책 없는 속도위반을 한 학생이 있었다며 아찔한 표정으로 그때를 회상했다.

  사회적 편견이나 냉소적인 시선으로 미혼모들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특성상 싱글마던트와 관련한 정확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약 1만 5천~2만 명의 20대 초반 미혼모가 있을 것으로 추정할 뿐이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0% 이상이 대학에 진학하는 우리나라의 현실을 고려하면 그들 대부분이 대학생일지도 모른다. 2만여 명이라면 그다지 적은 숫자가 아니지만 20대 여성 6천여 명이 오가는 우리대학에서도 강의실에 앉아 수업을 듣는 20대 임산부 학생은 생소한 존재였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상생활도 임신체험복을 입은 채 하면 금새 피로가 밀려왔다.  사진 / 손민지 기자

  앉기 힘든 비좁은 강의실 책상 
 발 밑이 보이지 않아 계단은 위험천만

  대학에서 임신체험복을 입은 나를 반기지 않는 것은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늘 수업을 듣던 강의실과 교내 시설들은 부푼 배를 달고 다니기에는 너무 불친절한 공간이었다. 책걸상이 빽빽하게 들어선 강의실은 만삭의 몸이 통행하기에는 너무 좁았다. 책걸상이 붙어있는 강의실 책상에서 앉을 때는 모서리에 배를 부딪치지 않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려야 했다. 강의가 끝난 뒤 강의실을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책상을 밀어서 길을 터야 했다. 몸을 구겨야 앉을 수 있고 배 바로 앞에서 접이식 책상이 펴지는 대강의동의 경우 불편은 더욱 컸다. 공간이 좁은데다가 배 때문에 앞으로 몸을 숙일 수도 없다 보니 실수로 떨어뜨린 펜 한 자루도 스스로 주울 수가 없었다. 강의실 이동을 위해 학교를 누비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할 때는 부푼 배 때문에 발밑이 보이지 않아 돌부리에 걸리고 계단을 잘못 딛는 등 곤욕을 치르기 일쑤였다. 아직 체험을 시작한 지 두세 시간도 지나지 않았건만 당장에라도 임신체험복을 벗고 평범한 학생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일상생활도 임신체험복을 입은 채 하면 금새 피로가 밀려왔다.  사진 / 손민지 기자
 
   학업과 육아, 생계를 병행하는 생활
  정부 지원은 한 달 5만 원이 고작

  임신체험복을 입은 채 수강한 첫 전공 수업이 끝난 뒤 나는 결국 그다음 교양 수업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지 않고 기자실로 돌아왔다.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강의실에서 남산만한 배를 하고 홀로 앉아있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랫배를 압박하는 10kg의 임신체험복을 입고 몇 시간을 돌아다닌 탓에 허리는 무척 아팠다. 그러나 공강이 생겼다고 해서 쉴 수만은 없었다. 보통의 대학생들처럼 공부를 하면서도 생활비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는 다수의 싱글마던트들처럼 공강 시간에는 교내근로 활동을 했다. 봉투에 신문을 접어 넣는 단순작업을 하는 중에도 임신체험복의 무게 때문에 금세 허리가 아파왔다. 실제 임신을 했거나 어린 아이가 딸린 여성이 아르바이트를 하기란 이보다 더욱 고생스러울 것이다. 또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싱글마던트들은 교내근로보다 훨씬 강도 높은 노동을 해야 한다. 이런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싱글마던트들은 성인이라는 이유로 10대 미혼모들에 비해 정부 정책의 보호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 달에 5만 원 가량 지급되는 지원금과 보건소의 의료혜택 정도가 싱글마던트가 국가에 기대할 수 있는 도움의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싱글마던트 중에는 학업을 포기하거나 우울증에 빠져 아이를 버리거나 자살을 선택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이와 자신의 미래를 위해
  학생으로, 엄마로 살아가는 ‘마던트’들

  모든 강의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에 올랐을 때 퇴근시간이 겹쳐 북적거리는 지하철 안을 보고 집까지 서서 돌아갈 것을 생각하니 암담한 마음이 앞섰다. 그러나 시민들의 양보로 이용자가 많은 퇴근시간 임에도 앉아서 귀가할 수 있었다. 학교 밖에서라면 보통의 임산부와 다를 것이 없다 보니 어린 나이에 결혼했나 생각하는지 학내를 돌아다닐 때보다 힐끗대는 시선도 줄어들었다. 간혹 진짜 임신인줄 알고 흥미를 보이며 말을 거는 할머니들에게 임신체험이라는 사실과 의도를 구구절절 설명하며 내릴 역에 이르기만을 기다렸다. 이제 끝이 보이는구나. 집에 도착하면 끝이다. 집에 도착하는 순간 내던져버리리라.

  10kg의 임신체험복과 함께한 긴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도착해 오늘 하루 내 소중한 아이였던 조끼를 벗은 순간 해방감과 함께 엄청난 피로와 근육통이 찾아왔다. 다수의 싱글마던트들이 휴학을 하거나 학업을 포기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불룩한 배가 어딘가에 부딪힐세라 신경을 곤두세우고 가는 길마다 곱지 않은 시선에 시달렸던 하루를 돌이켜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아이와 자신이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학교로 향하는 싱글마던트들은 오늘도 어딘가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복잡한 대중교통에 무거운 몸을 싣고,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에 상처받으면서도 학생으로, 엄마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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