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너에겐 사랑, 나에겐 폭력
[여성]너에겐 사랑, 나에겐 폭력
  • 손혜경 기자
  • 승인 2014.04.02 18: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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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박에서 폭행까지 잘못된 사랑의 말로, ‘데이트 폭력’

  최근 다시 사귀자는 요구를 거절한 전 여자친구를 홧김에 목 졸라 살해하려 한 혐의로 20대 남성이 구속됐다. 이전에는 한 대학생이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자 질투심에 여자를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렇듯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연인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인 여성을 상대로 한 ‘데이트 폭력’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단순한 협박과 폭행 수준을 넘어서서 피해자의 목숨까지 위협하는 데이트 폭력에 대해 알아보자.


  A씨는 몇 년간 사귄 남자친구 B씨와의 관계를 정리하려 한다. 하지만 B씨는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며 헤어질 경우 둘의 성관계를 담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유포하겠다고 A씨를 협박해왔다. A씨는 하루빨리 B씨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싶었지만 성관계 동영상이 이곳저곳에 퍼질 것을 생각하니 B씨와 쉽사리 이별할 수 없었다.

  C씨는 남자친구 D씨와 싸우던 중 무차별적인 욕설과 함께 뺨을 맞았다. 하지만 다음날이 되자 D씨는 ‘어제 일은 내가 잘못했다’며 눈물로 용서를 빌었다. 오히려 평소보다 C씨를 다정하고 따뜻하게 대해줬다. C씨는 남자친구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것이 화가 났지만 이를 빼놓고는 모든 것이 완벽한 D씨였기에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데이트 폭력’이란 연인이 사귀고 헤어지는 과정, 그리고 헤어진 후에 발생하는 이성, 동성관계 간 모든 형태의 폭력을 의미한다. 꼭 사귀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호감을 전제로 만나는 인간관계, 이른바 ‘썸’을 타는 과정에서의 폭력 또한 데이트 폭력이라 칭한다. 데이트 폭력은 서로에 대한 정보가 많은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그 피해가 일반 폭력보다 심각하고 지속적이며 대응 또한 어렵다.

  데이트 폭력의 유형은 크게 △성폭력(성추행, 강간, 일방적인 성관계 요구, 피임 거부) △언어적 폭력(욕설, 폭언, 멸시) △신체적 폭력(폭행, 상해, 감금) △정신적 폭력(스토킹, 협박, 통제) △경제적 폭력(갈취)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유형들은 대부분 각각 발생하기보다는 복합적으로 나타난다. 경제적 폭력은 주로 동거, 데이트를 하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돈을 갈취한다거나 상대방이 이별을 요구할 때 여태껏 들인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하는 등의 형태로 이뤄진다. 특히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종속관계하에 있을 때 이러한 폭력에 대응하기가 더욱 어려워진다.

  한 해 8천 건 상당 데이트 폭력 발생해
  피해 연령도, 유형도 갈수록 다양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매해 8천 건에 가까운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고 있다. 이중 극단적인 살인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는 100여 건에 이른다. 대학가도 데이트 폭력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서경현 삼육대 상담학과 교수가 건강심리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대 여성 279명 중 36.9%가 데이트 폭력을 당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남자 대학생 중 46.2%는 어떤 형태로든 한 번 이상 데이트 폭력을 행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전화의 2013년 데이트 폭력 조사를 보면 작년 한 해 접수된 데이트 폭력 상담은 전체 폭력 상담의 16.9%인 414건이었다. 이 중 남성이 가해자, 여성이 피해자인 경우는 413건이었고 나머지 1건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가 남성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연령대는 각각 20대와 30대가 가장 높았고 최저 13세, 최고 60대 이상까지 데이트 폭력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가장 많은 피해자가 경험한 폭력 유형은 스토킹과 협박을 포함한 정신적 폭력으로 총 59.3%(246건)의 피해자가 정신적 피해를 토로했으며 △성폭력(37.1%, 154건) △신체적 폭력(34.0%, 141건) △경제적 폭력(6.0%, 25건)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정신적 폭력에서의 ‘협박’이다. 눈에 보이는 신체적 폭력과 같은 경우 증거를 제출해 가해자를 신고하면 되지만 협박의 경우 신고를 하기가 애매하고 신고를 하더라도 가해자가 처벌을 받기 쉽지 않다. 한 데이트 폭력 피해 여성은 “협박죄는 성사되기도 어렵고 경찰에서도 개인 문제로 치부할까봐 신고하기가 망설여진다”며 “차라리 맞아서 멍이라도 들고 뼈라도 부러졌으면 좋겠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또한 대부분의 협박은 성적, 신체적, 경제적 폭력과 얽히면서 피해자의 취약점을 악용하는 형태로 나타나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대표적인 협박의 사례는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 ‘가족을 모두 살해하겠다’ ‘만나주지 않으면 자살하겠다’ 등이며 최근 SNS 이용이 활발해지면서 ‘SNS에 개인적인 동영상 및 사진을 게시하겠다’ 등의 협박도 빈번한 것으로 나타났다.

  갈수록 심화되지만 처벌은 ‘미지근’

  현재 우리나라에는 데이트 폭력 문제를 별도로 다루는 법률이 없다. 때문에 데이트 폭력 내 성폭력은 성폭력법, 폭행은 폭행죄, 협박은 협박죄 등으로 기존 법에 따라 각각 처벌되고 있다. 이런 탓에 데이트 폭력을 당하고도 가해자를 신고, 처벌하려면 가해자로부터 받은 무수한 피해 중에서 죄목에 해당되는 부분을 찾아내야만 하는 실정이다. 이에 많은 여성단체들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데이트 폭력 피해를 통합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법안이 생겨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여성의전화 성폭력상담소 조재연 부장(이하 조 부장)은 “데이트 폭력은 복합적으로 발생하지만 이를 통합적으로 다루는 법이 없어 드러나지 못하거나 대응할 수 없는 피해들이 생긴다”며 “여성인권기본법과 같은 기본법이 만들어지면 데이트 폭력 문제 해결 및 가해자 처벌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외국에서도 데이트 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고 관련 법안을 만들거나 캠페인을 여는 등 문제 해결에 나서고 있다. 현재 영국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남자친구의 전과를 조회할 수 있는 ‘클레어법’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2009년 클레어 우드라는 여성이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살해당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또한 미국의 경우 2월을 ‘데이트 폭력 근절의 달’로 지정하고 오바마 대통령이 직접 ‘여성데이트피해예방대책(PSA)’을 발표하는 등 데이트 폭력 문제에 적극 대처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가해자가 폭력을 행사한 이후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용서를 빌더라도 또다시 폭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관계를 정리하는 것이 좋다.

  협박에 대해서는 가해자의 요구에 그대로 반응하지 말고 단호하고 강경하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대응하기에 앞서 주변 사람들에게 문제를 알리는 등 자신이 안전할 수 있는 조치를 마련해 놓아야 한다. 조 부장은 “만약 가해자가 자신의 약점을 잡아 협박한다면 협박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의 입으로 자신의 약점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지기 때문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반드시 경찰이나 상담소,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좋다. 둘 사이의 관계에 고립되지 말고 문제를 밖으로 꺼내려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예 데이트 폭력을 막을 순 없는 걸까? 데이트 폭력은 한 쪽이 일방적으로 통제하거나 과도하게 의존하는 관계에서 쉽게 발생할 수 있으므로 주체적인 연인관계를 맺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 부장은 “남을 대하거나 자신의 성미를 다스리는 태도에서 폭력의 징후가 보이면 아예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좋다”며 “폭력을 당했음에도 ‘좋은 이별을 해야겠다’는 생각, ‘그것만 빼면 참 좋은 사람이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금물이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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