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터넷에서 잊혀질 수 있을까
우리는 인터넷에서 잊혀질 수 있을까
  • 이원영 기자
  • 승인 2014.05.12 15: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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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주홍글씨 막기 위한 방안으로 ‘잊혀질 권리’ 논의돼

  고등학생 김 군은 학교폭력으로 중상을 입어 병원에 입원했다. 김 군이 입원해 있는 동안 SNS에서는 보상금을 뜯어내기 위해 김 군이 자작극을 벌인 것이라는 허위 비방글이 퍼져나갔다. 정신적 충격을 받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진 김 군은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어 전학을 선택했다. 그러나 새로운 학교에까지 해당 SNS글이 퍼지면서 김 군의 새 출발은 물거품이 됐다. 인터넷 주홍글씨의 낙인이 김 군을 놓아주지 않은 것이다. 인터넷이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우리에게 ‘잊혀질 권리’는 있는 걸까?

쉽게 지워지지 않는 인터넷 주홍글씨
  지난해 유명 웹툰 작가 마인드C(본명 강민구)는 하루아침에 성폭행범이 돼버렸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여성이 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내용의 글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그가 연재하고 있던 웹툰에는 수만 개의 악플이 달렸고 준비하던 신작은 계약이 취소될 위기에 처했다. 마인드C는 자신을 둘러싼 허위사실이 계속해서 확산되자 해당 여성을 명예훼손죄로 신고했고 여성의 자백으로 그 글이 거짓임을 밝혀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 ‘마인드C’ 혹은 ‘강민구’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에 ‘성폭행’ ‘성추행’ 등이 함께 검색됐기 때문이다. 그가 무고하다는 사실이 입증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인터넷 상에 널리 퍼진 허위 게시글이 그에게 성폭행범이라는 낙인을 찍어버렸다.

  인터넷 환경의 특성상 한 번 퍼진 정보는 진위 여부와 관계없이 빠르게 확산된다. 더구나 마인드C의 사례처럼 악의적 루머, 신상 털기 등의 자극적인 게시글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더욱 빨리 확산되고 당사자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는 결과를 유발한다. 설령 당사자가 관련 정보를 삭제하더라도 이미 다른 사람들이 해당 정보를 공유했다면 곳곳에 정보가 남게 된다. 더욱이 삭제 과정에 복잡한 절차와 오랜 시간 등이 필요해 정보의 완전한 삭제가 어렵다.

  현행 정보통신망법은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에게 사생활 침해 및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가 유통되지 않도록 하는 의무를 정하고 있다. 그러나 서비스 제공자가 정보 삭제 요구에 응하지 않아도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는 실정이다.

복잡한 삭제 절차로
삭제 대행사 등장하기도
  인터넷에서 게시글의 완전한 삭제는 기대하기 힘들다. 다른 사람에게 공유된 게시글까지 찾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더군다나 기업들은 게시글을 삭제하고자 하는 개인에게 복잡한 절차를 요구한다. 한 인터넷 유저는 “국내 사이트의 경우 권리침해를 증빙하는 서류를 요구해 삭제 절차가 복잡했고 삭제 신청을 해도 삭제가 거부되는 경우도 많았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상황에서 게시글 삭제 요청을 대행해주는 회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회사들은 삭제 요청을 어디서, 어떻게 하는지 정보를 제공하고 인터넷에 퍼져있는 개인정보 데이터를 찾아내 삭제 요청을 대행해준다. 대행사 프라이버시앤컴퍼니의 한 관계자는 “게시글 삭제뿐만 아니라 자신의 실명 또는 자주 쓰는 아이디를 검색했을 때 나오는 개인정보를 삭제해달라는 요청이 많다”며 “청소년 시절 무심코 올린 게시글을 삭제해달라는 20대 여성이 주요 고객이다”고 말했다.

현대사회의 새로운 권리,
 ‘잊혀질 권리’의 등장
  인터넷 주홍글씨의 피해 사례가 계속해서 발생하자 이를 방지하고 사생활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잊혀질 권리’가 주목받고 있다. 잊혀질 권리란 개인이 인터넷 상에 노출돼 있는 자신과 관련된 각종 정보의 삭제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해석된다.

  2012년 유럽연합(EU)은 세계 최초로 잊혀질 권리를 명문화한 데이터보호법을 만들었다. 올해 발효를 목표로 하는 데이터보호법은 합법적 근거 없이 획득된 정보의 삭제를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인터넷 이용자에게 부여한 것으로 이러한 요청을 받은 정보처리자는 즉시 이에 합당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EU 집행위는 이번 개정안을 EU 전체 회원국에 직접 적용시키는 최고 수준의 규범인 ‘규정(regulation)’ 수준으로 격상해 법적 구속력을 강화하고자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도 잊혀질 권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일부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자신이 올린 게시물이 검색되지 않게 삭제할 수 있는 내용의 법안을 입법 추진하고 있다.

언론 기록, 역사 기록 삭제와
알 권리 침해 우려있어
  그러나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에 우려를 표하는 이들도 있다. 잊혀질 권리의 무제한적인 적용이 알 권리를 저해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흉악범죄를 저지른 자가 형기를 마치고 나온 후 자신의 과오를 기술한 기록들을 잊혀질 권리에 의거해 지워달라고 한다면 범죄자 정보에 대한 국민들의 알 권리가 침해된다는 것이다.

  또한 저널리즘 분야에서는 잊혀질 권리 보장으로 언론 기록, 역사 기록 행위가 중단될 수 있음을 우려한다. 만약 잊혀질 권리가 법제화돼 친일파들이 자신의 사생활 보호를 주장한다면 친일인명사전의 편찬과 같은 역사 기록은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EU는 잊혀질 권리 입법화에 노력을 기울이면서도 언론 기록은 잊혀질 권리의 대상에서 제외했다.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 가능할까
  이처럼 잊혀질 권리의 법제화는 인터넷 유저의 사생활을 보장해주고 과거 기록에 구속되지 않도록 하는 순기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몇몇 부작용을 우려하는 반대 의견도 있는 상황이다. 한편 미국의 경우 위키피디아, 페이스북, 마이스페이스, 유튜브, 트위터 등 자국 네트워크 기업들이 국내외에서 대규모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어 잊혀질 권리 보장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잊혀질 권리 연구 포럼 유상엽 본부장은 “개인정보와 관련한 인터넷 기록은 개인이 지울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돼야 한다”며 “단 인터넷 기사, 공론화된 의견과 같은 사회적 정보에는 잊혀질 권리의 적용을 제한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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