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학술 - 인질과 인질범의 심리적 동화
영화로 보는 학술 - 인질과 인질범의 심리적 동화
  • 유제민 강남대 교육학과 교수
  • 승인 2014.05.26 16: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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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영화 <홀리데이(Holiday, 2005)>

  영화 <홀리데이>의 마지막 장면에서 탈옥범의 편을 들어주는 인질을 볼 수 있다. 그는 어째서 자신의 생명을 쥐고 자유를 침해한 탈옥범의 손을 잡은 것일까. 심리학에서는 이와 같은 상황을 ‘스톡홀름증후군’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인질범이 포로나 인질에게 동정심을 갖는 것을 가리키는 ‘리마증후군’이라는 용어도 존재한다. 이러한 스톡홀름증후군과 리마증후군은 무엇이며 인질범과 인질은 어떤 심리적 상황 속에서 서로 동화되는 것일까.


 

 

  은행강도의 손을 잡은
  스톡홀름 시민들

  영화 <홀리데이>는 1980년대 발생한 지강헌 사건이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징역 7년, 보호감호 10년 형을 받아 복역 중이던 주인공과 죄수들이 이감 중 호송차를 전복시키고 탈출한 사건은 세상을 놀라게 한다. 그들은 권총과 실탄을 빼앗아 무장탈주에 성공해 인질극을 벌이며 서울을 공포에 몰아넣고 매스컴에서는 이 탈옥수들을 흉악범이라 보도한다. 그러나 인질들은 인간적이고 예의바른 탈옥수들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고 마지막에는 그들의 편을 들게 된다.

  <홀리데이>의 상황과 같이 인질이 범인의 심리에 동화되고 공감하는 상황, 인질들이 그들을 풀어주려는 군이나 경찰보다 인질범의 마음에 동화되고 그들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현상을 전문용어로 스톡홀름증후군(Stockholm Syndrome)이라고 한다.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인질범과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적 교류를 하는 인질의 사례는 심심찮게 나타나지만 그중에서도 스톡홀름증후군의 기원이 되는 사건은 1973년 8월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에서 발생한 은행강도 사건이다. 사건 당시 강도들은 시민 여러 명을 인질로 잡고 장장 6일 동안 경찰과 대치했다. 경찰의 진압작전으로 강도들은 체포됐으며 억류돼 있던 인질들은 풀려나게 됐다. 그런데 이상한 문제가 생겼다. 경찰조사에서 인질들이 강도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인질이었던 한 여성은 강도 한 명에게 애정을 느껴 약혼자와 파혼을 하기도 하는 등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다. 이 이상한 사건이 발생한 도시의 이름을 따 납치나 인질로 잡혔던 사람들이 인질범과 특수한 심리적 관계를 형성하고 인질범의 편을 들어주는 기이한 현상을 스톡홀름증후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인질은 자신을 억류하고 있는 인질범의 심리에 동화하고 의존하기도 한다.

극한의 공포에서 나오는
생존본능과 이해, 그리고 동화
 
납치와 인질극은 인생에서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끔찍한 상황이다. 이런 극한 상황에 처하면 압도적인 스트레스와 두려움으로 인해 지금까지 자신을 지키고 있던 방어기제가 순식간에 무너진다. 마치 어린애처럼 변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는 인질범들이 자신을 해치지 않는 것만 해도 오히려 고맙게 여기게 된다. 처음에는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납치범의 눈치를 보고 심기를 살핀다. 이 과정에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절실해진다. 그러다가 점차 그들의 입장이나 관점에 동화하게 되고 그들에게 온정을 느끼고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결국 우리라는 동지의식을 형성하는 단계까지 발전하게 된다.

  이 상태가 되면 자신을 구출하려는 경찰들에게 반감을 느끼면서 대처해야 할 공동의 적으로 간주하기까지 한다. 생존에 직결되는 극단적인 공포상황 때문에 인지적인 왜곡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인질범에게서 도망가지 못한다면 그와 한 몸이 돼 이해하는 동반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무의식적인 선택이다. 극단적인 공포가 피해자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피해자들은 무기력한 상태에서 자신을 억류하고 있는 강자, 무서운 가해자에게 의존하는 것이다.

  불안한 범인의 심리, 리마증후군
  인질범도 두려움을 느낀다

  스톡홀름증후군과 반대로 인질범이 인질에게 동화되는 현상을 리마증후군(Lima Syndrome)이라고 한다. 리마증후군의 명칭은 페루의 수도인 리마라는 도시에서 나왔다. 1996년 12월 17일 리마에서 페루의 반정부 조직 ‘투팍아마루 혁명운동’ 요원들이 페루일본대사관을 점거하고 인질 700여 명을 억류한 테러사건이 발생한 적이 있다. 사건 발생 127일 만인 1997년 4월 22일에 페루의 특공대가 기습작전을 수행했다. 테러범 전원이 사살되었고 인질들은 성공적으로 구출됐다. 당시 테러범들은 인질들에게 가족과의 안부편지를 허용했고 의약품과 의류도 반입할 수 있게 했다. 심지어 미사 집회도 할 수 있게 했다. 당시 테러범들은 인질에게 자신들의 신상이야기를 털어놓기도 하는 등 인간적인 친밀감을 보였다고 한다. 스톡홀름 은행강도 사건의 경우와 반대로 인질범이 인질들에게 오히려 동화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인질범도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 소탕과 진압작전의 표적이 되는 것이 인질범에게 극도의 공포심을 유발할 수 있다. 아무런 성과 없이 상대의 공격에 궤멸할 수 있다는 불안을 느끼며 도주와 은신의 가능성을 시시각각으로 점검해야 한다. 건강이 악화되는 인질들도 관리해야 하고 내부의 의견 불일치와 갈등 역시 극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고도로 복잡한 협상을 진행하는 것 자체가 인질범들에게 극심한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그런 상황에서 공포에 떨고 있는 어린애와 같은 인질은 인질범에게 동병상련의 느낌을 갖게 하고 둘 사이에서 인간적인 교류가 발생한다. 때문에 장시간 억류되는 경우 인질이 살해당할 가능성이 줄어든다는 증거도 있다.

  극단적 상황으로 인한 상처
  치유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손길

  한편 인질극의 피해자들이 이른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에 시달린다는 보고도 많아 스톡홀름증후군, 리마증후군과 같은 현상을 그저 신기한 이야기로만 여길 수는 없다. 인질극 피해자들이 겪는 극심한 외상 후 스트레스반응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심해지기도 한다. 특히나 인질극에서 사망자가 발생한 경우 살아남은 사람들은 자신을 사망자 또는 중상을 입은 희생자와 동일시하는 경향을 보이는 등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자신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자신의 무력감에 고통스러워하며 수면장애와 심신 무기력, 우울증을 느끼게 된다.

  이런 피해자들에게는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사회적 지지는 부정적인 정서반응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심리학자 로게(Rogehr)는 사회적 지지가 극심한 스트레스 피해자들이 느낄 수 있는 무력감, 죄의식, 생리적 각성 등을 현저하게 완화하는 과정을 이미 확인한 바 있다. 가족과 친구 그리고 지역사회로부터 제공되는 사회적 지지는 피해자들로 하여금 보호받고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이것은 그들이 사회에 다시 적응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되는 자원인 것이다. 

*위 글은 유제민 교수가 2009년 서현사에서 출판한 저서 『마음을 묻다』의 내용 중 ‘1부 건강과 이상’에서 ‘인질의 심리 - 스톡홀름증후군과 리마증후군’ 부분을 중점으로 기자가 일부 추가·발췌해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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