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분노의 물결이 일고있다
중동, 분노의 물결이 일고있다
  • 경희대학교 평화복지
  • 승인 2004.03.30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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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류의 역사 속에서 예기치 않은 사건의 발생이 때로 통제불능의 급격한 상황전개를 야기하는 경우가 있다. 사소한 듯 보이는 일말의 사건이 미묘한 파장을 불러 일으켜 세게대전이라는 엄청난 참화를 가져온 도화선이 되기도 한다. 카오스이론은 이것을 '초기조건의 민감성'이라 부른다.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마리 나비의 날갯짓이 유럽에 폭풍을 불러올 수 있다는 메타포로 설명되는 현상이다.

 지난 3월 22일 발생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인 하마스의 지도자 셰이크 아메드 야신의 암살사건은 중동을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보복의 소용돌이로 몰아가고 있다. 불도저로 불릴만큼 강경론자로 알려진 샤론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 철군을 앞두고 야신이 선거참여를 선언하는 등 무장테러조직이 아닌 주도적 정치세력으로 부상하려는 움직임을 심히 우려하여 테러라는 비합법적 방법으로 그를 제거하였다. 샤론은 야신을 제거하면 하마스조직이 급속히 붕괴되리라는 예상하였다.

 그러나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뼈속까지 하마스'라고 불릴만큼 강경파로 알려진 알뎁 아지즈 란티시가 야신의 뒤를 이어 하마스의 지도자로 선출되어 피의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그동안 이스라엘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아랍국가들마저 이스라엘을 맹렬히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이스라엘의 전통적 우방인 EU회원국들도 이스라엘을 비난하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급기야 유엔은 24일 이스라엘의 야신 살해를 비난하는 결의안을 채택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사건의 전개는 이스라엘의 우방인 미국을 고립시키고 있다. 이스라엘을 편향적으로 지지하여 왔던 미국에 대한 반감이 아랍권 전역에 걸쳐 급속도로 확대되고 있다. 또한 대 테러전을 명목으로 수행되었던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그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페인으로부터 비롯된 이라크 철군은 도미노를 야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지원할 명분을 잃게 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의 전개과정을 간략히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양측의 반목(反目)과 투쟁은 멀리 기원전까지 올라간다. 현재 양측이 대치하고 있는 지역은 구약성서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언급된 '가나안'이다. 유대인들은 외세의 침입으로 가나안에서 쫓겨나 2000여년 동안 유랑생활을 하다가 1800년대 말 시오니즘(유대인 조국재건 운동)에 힘입어 조상들의 땅인 팔레스타인 회복 운동이 시작되었다. 특히 독일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과 박해를 경험한 유럽의 유대인들은 그동안 축적한 부(富)를 이용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수립을 인정해 달라고 미국 등 세계 열강에 요구햇다. 마침내 1974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땅 52%지역에 유대국가를 세우고, 나머지 48%는 아랍국가를 수립하는 분할안을 제시했고, 이듬해 이스라엘 건국이 선포됐다. 이후 이 지역에서 4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이 발발하였고 수 차례의 평화협상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여전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아니라 '피와 눈물이 흐르는 비극의 땅'으로 존재하고 있다.

  최근의 유혈사태는 1987년 팔레스타인인들의 제1차 인티파다(무장봉기) 이후 더욱 악화되었다. 1995년 이스라엘과 PLO(팔레스타인 해방기구)가 오슬로 평화협정서에 조인했으나 2000년에 일어난 제 2차 인티파다로 다시 한번 휴지 조각이 되고 말았다. 지난해엔 미국, 유럽연합(EU), 러시아, 유엔에 의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 등 중동평화 로드맵 구상이 마련됐지만, 하마스에 의한 예루살렘 버스테러로 논의 자체가 연기됐고, 이는 다시 야신에 대한 보복암살로 물거품의 위기에 놓이게 된 것이다.

  테러와 보복으로 점철되었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갈등과 대립의 기나긴 역사는 이제 정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본질적으로 영토분쟁의 성격을 띠나 기나 긴 역사 속에서 종교적 대립으로 더욱 증오의 골이 깊어진 이 분쟁의 끝은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수 차례 시도된 평화협상의 경험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신(神)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선(善)의 가면을 쓰고 악(惡)을 행하기에 가장 추악한 모습을 드러낸다. 테러에 자살테러로 맞서는 가나안땅의 살육현장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사랑이나 알라신의 자비가 드리워질 여지가 없다. 오직 신(神)의 이름을 빙자한 증오가 넘쳐날 뿐이다. 오늘날 새롭게 재연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바라보면서 가나안땅에서 불어오는 카오스의 날갯짓이 폭풍을 불러올것만 같아 두려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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