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목소리, 화면에 영혼을 입히다
그 남자의 목소리, 화면에 영혼을 입히다
  • 장우진 기자
  • 승인 2014.06.10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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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성우

 

  첫사랑의 목소리를 기억하는가. 엄마 손을 잡고 유치원에 다니던 시절 기자의 첫사랑은 만화 <카드캡터 체리>의 등장인물 청명이 오빠였다. 누군가에게는 <타이타닉> 속 애절한 사랑의 주인공 디카프리오로, 누군가에게는 <명탐정 코난>의 남도일로, 누군가에게는 첫사랑 청명이 오빠로 기억되는 천의 얼굴 강수진 성우.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뜨겁게 불태운 대학에서의 4년
  
  그는 처음부터 성우가 되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를 좋아했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빙 영화가 많았기 때문에 성우라는 직업이 친근했죠. 그러나 같은 방송 일 중에서도 감독·연출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는 대학시절 학내 방송국에서 활동했던 경험이 자신을 성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돌이켜보면 대학시절만큼 치열하게 보낸 시간이 없어요. 학교에서 먹고 자며 일해도 즐겁고 보람찼죠. 제게 학내 방송국은 강의에서 배운 것을 실제로 적용해볼 수 있는 실전의 기회였어요. 그곳에서 직접 방송기계도 만지고 연기도 하며 시야가 넓어졌죠. 학내 방송국에서 라디오 드라마를 제작했는데 그때 연기에 매력을 느껴 성우 시험을 봤어요."
 

  시작된 성우의 삶, 좌절과 재기

  이후 1988년 강수진 성우는 KBS 공채 21기로 선발돼 성우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KBS의 성우들은 전속계약기간 5년간 KBS의 라디오 방송을 주로 녹음하고 이후 프리랜서가 돼 각종 외화나 애니메이션의 오디션을 보며 성우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전속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강수진 성우에게 대학 선배가 함께 연기학원 사업을 제안했다. “당시 좋은 배역이 돌아오지 않아 불만에 차 있었죠. 내 연기가 성숙하지 않았던 탓이겠지만 그때는 젊다 보니 스스로가 아닌 외부에서 문제를 찾은 것 같아요. 그래서 선배의 제안을 받아들여 전속기간이 끝난 후에는 오디션도 보지 않고 사업에 매달렸죠.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선배는 경제사범이었고 몇 년후 빈털터리가 돼 성우계로 돌아왔을 때 업계에서 저는 이미 그만둔 사람이었어요. 오디션을 보러 다니기도 여의치 않았죠. KBS 성우실에 앉아 잡지나 읽고 있을 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해 도전한 성우극회 연극 <레미제라블>을 통해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에서
  천재소년 디카프리오를 만나다
 
  20여 년의 성우생활 동안 연기해온 역할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배역이 있는지 묻자 그는 쉽게 한 배역을 고르지 못하고 망설였다. “어느 하나를 꼽을 수 없죠. 데뷔작 <란마 1/2>과 <디즈니 만화동산>의 알라딘도 떠오르고 기자님이 좋아한다는 청명이도 생각나고(웃음). 굳이 고르라면 <길버트 그레이프>라는 작품의 어니가 기억에 남습니다. 다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하면 타이타닉을 떠올리겠지만 제가 디카프리오라는 배우를 처음 만난 건 이 작품이에요. 이 영화에서 디카프리오가 정신지체 장애아를 연기하는데 처음에는 정말 장애를 가진 미소년을 캐스팅한 줄 알았어요. 이걸 어떻게 연기하라는 건가 싶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천재로 이름을 날리던 배우더라고요. 그가 워낙 훌륭히 연기해낸 역할이라 부족함 없이 소화하기 위해 더욱 노력했던 기억이 나요.”

 

 

 

   노력이 끌어올린 최고의 자리

  데뷔 후 지금까지 인기 애니메이션의 남자 주연을 도맡고 있으며 대한민국에 강수진만한 남자 성우는 없다고 일컬어질 정도의 위치까지 오른 그. 데뷔한 지 어언 20년이 흘렀지만 식을 줄 모르는 인기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특별한 비결이 없다고 말했다. “나만의 장점이라고 내세울 것은 없었어요. 다만 남들에게 뒤지지 않을 만큼의 노력을 했습니다. 청소년 연기에 적합한 목소리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 맡고 있는 10대 남자 주인공의 역할이 내게 돌아오리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잘생긴 배우가 연기를 못하면 욕을 더 많이 먹듯 제가 목소리만 믿고 나태해졌다면 지금까지 사랑받지 못했을 거예요.” 대학시절 그를 가르쳤던 교수는 끝없는 관찰에서 좋은 연기가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강수진 성우는 자신이 주로 연기하게 될 10대 청소년이 있는 고등학교 앞에서 지나가는 학생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아이들과 대화하고 관찰노트를 만들었는데 연기에 적용하려고 보니 10대 언어의 상당수가 욕설이라 연기에 쓸 수 없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방송에서 사용할 수 없는 대신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10대들의 심리적 불안을 연기에 담아내고자 노력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제 연기에 더 공감해준 것 같습니다.”

  “성우와 배우는 같은 나무의 가지입니다”

   강수진 성우는 스크린 속 배우와 성우는 표현의 수단만 다를 뿐 근본적으로 연기라는 나무에서 뻗어난 같은 가지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는 최근 인기 배우나 아이돌이 성우의 고유 영역이던 더빙에 뛰어드는 것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연기 영역 간의 교류는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의 문을 열어둬야 성우들도 영화나 연극 등 다른 연기 분야로 진출할 수 있죠. 다만 실력이 보장된 이가 더빙을 했으면 합니다. 더빙이 제대로 되지 않아 대중이 그를 기피하게 되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더빙을 본업으로 삼는 성우들이거든요.” 그는 배우가 한 더빙의 성공사례로 배우 이순재가 주연을 맡은 픽사의 애니메이션 <업(UP)>을 꼽았다. “<업>에서 이순재 선생님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셨죠.”

  또한 그는 재능을 갖춘 성우들이 다른 연기 분야에 진출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성우들은 얼굴이 보이지 않는 특성 때문에 대중들에게서 쉽게 잊힙니다. 배우나 가수를 스타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년도 걸리지 않는 반면 성우는 10년 이상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기에 앞으로 데뷔하는 젊은 성우들은 방송이나 다른 연기 분야에 적극적으로 진출해 인지도를 쌓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욱 탄탄한 연기력과 다양한 끼를 갖춰야겠죠.”

  덕성인들에게 한마디

  끝으로 그는 스무 살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처절하게 연애하고 뜨겁게 공부하고 무엇이든 도전해보세요. 요즘 학생들은 성적에 맞춰서 대학을 가다 보니 좋아하는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죠. 나는 운 좋게도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하다가 좋아하는 일을 찾았지만 모든 사람이 그러기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저 남들을 따라서 고시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보다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갖고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 20대는 넘어져도 얼마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으니까요. 뜨겁고 처절하게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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