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부터 나오는 열정을 화선지에 담다
온몸으로부터 나오는 열정을 화선지에 담다
  • 강소현 기자
  • 승인 2014.09.02 10: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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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최아영 기자
  몸 전체로부터 힘을 끌어내 그림을 그리는 석창우 화백. 비록 두 팔을 잃었지만 오히려 더 많은 것을 화선지에 담을 수 있게 됐다. 긍정 에너지와 열정을 그려내는 석창우 화백의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살기 위해 선택했던 일에서
하고 싶은 일을 찾기까지
  30년 전 전기 관리자로 일하던 석창우 화백은 전기 시설 점검 중 감전 사고를 당했다. 양 팔과 발가락 두 개를 절단해야 했던 사고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29세였다. 그러나 그는 1년 반 동안 12번의 수술을 하면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양 팔을 잃었지만 살아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병원 생활도 아침마다 피를 뽑거나 주사 맞는 거 빼고는 다 괜찮았어요. 일주일마다 환자가 바뀌는 2인실을 썼는데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즐거웠죠.”

  일상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재활치료를 받고 있던 어느 날 그의 어린 아들이 뜬금없이 그림을 그려 달라고 했다. 그는 팔을 잃고 아무것도 못 해준 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온종일 그림을 그려 아이에게 주었다. “우연히 그 그림을 본 처형이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워보는 건 어떻겠냐고 권유했어요.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했죠.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아빠보다 팔 없이도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아빠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때부터 재활치료도 그만두고 그림 그리는 데 초점을 맞췄죠.” 그는 전문적으로 그림을 그려보고자 그림을 가르쳐줄 스승을 찾아 다니기 시작했다. 하지만 양 팔이 없는 그를 선뜻 받아주는 이는 없었다. “미술학원을 몇 군데 갔더니 양 손 없는 사람들은 가르쳐 본 적도 없고 많은 물감을 다루는 데 힘들 테니 차라리 다른 취미생활을 찾아보라며 거절했어요.” 하지만 그는 그림 배우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그때 머릿속에 사군자가 떠올랐죠. 사군자는 먹물 하나만 있으면 되니까 다양한 물감을 필요로 하는 채색화에 비해 배우기 쉬울 거라 생각했어요. 우연히 처제가 자신이 다녔던 서예학원의 여태명 선생을 소개시켜줘 찾아갔죠. 그 분에게 가 그동안 그렸던 그림을 보여주며 그림을 배우고 싶다 하니 여태명 선생 역시 대답을 망설였어요. 그래도 내가 포기할 때까지만 가르쳐달라고 부탁했더니 결국 허락해주더라고요.” 그렇게 석창우 화백은 붓에 구멍을 뚫어 의수에 끼우고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두 팔을 잃고 새로운 인생이 시작된 거죠. 먹고 살기 위해 선택했던 전기 관리자의 길보다 비록 두 팔을 잃었어도 지금이 행복해요.”
석창우 화백의 이러한 선택에 가족들 또한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병원에 있을 때 아내가 집에 가면 그림만 그려도 된다고 했었어요. 덕분에 부담감이 하나도 없었죠. 일하면서 후원을 해주는 아내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껴요.”

‘서예 크로키’라는
새로운 미술 분야를 창조해내다
  서예 크로키의 개척자이자 1인자로 불리는 석창우 화백. 그림과의 만남이 그랬듯이 크로키와의 만남도 우연했다. “여태명 선생에게 서예를 배우면서 서예에 대해 깊이 알고 싶어졌어요. 마침 현대미술관에 미술 이론 강의가 있다는 것을 알게됐죠. 강의에서는 서예 이론뿐만 아니라 크로키 이론을 포함한 다양한 미술 이론들을 가르쳐주더라고요. 어느 날 함께 강의를 듣던 수강생이 누드 크로키를 같이 그리러 가자기에 따라갔죠. 누드 크로키 모델이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데 그 포즈의 변화를 보며 이걸 서예로 그려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서예를 배우며 익숙해진 붓을 사용해 크로키 작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그는 서예와 크로키를 접목시켜 ‘서예 크로키’를 탄생시켰다.

  석창우 화백은 스포츠를 소재로 한 서예 크로키를 많이 그린다. “초기에는 정적이고 단순한 포즈만을 그렸었죠. 그러다가 나가노 올림픽 은메달 리스트였던 미셸 콴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보게 됐어요. 그 선수의 경기를 보며 그 순간적인 동작을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지요.”

그림을 마무리 하는 석창우 화백의 모습은 그림 속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만큼 열정적이었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화려한 수상 경력, 개인전 36회, 그룹전 240여 회 등  많은 국내외 전시 경력을 자랑하는 석창우 화백이지만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공고와 공대를 나왔는데 미술시간이 없어 그림을 그려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중학교 시절 그냥 교실 뒷벽에 걸리는 수준이었죠”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뒤로 10년 넘게 아침 먹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자기 전까지 연습했어요. 동세를 익혀야 하기 때문에 매일 10초를 그리더라도 그 사물을 6개월 이상 관찰했죠. 특히 동영상을 보고 그려야 하는 경우 사람과 직접 소통하고 교류하는 게 아니잖아요. 몸은 비록 여기 있지만 내면은 그 화면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그 움직임을 보면서 내적인 교류가 이루어져야만 해요. 그래야 선이나 움직임이 보이거든요.” 그의 말에서 무언가를 잡아도 그걸 잡았다는 걸 느낄 수 없던 그가 붓을 잡고 있다고 느낄 수 있기까지의 노력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가 두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과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 데는 천부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과거는 참고사항일 뿐
현재에 최선을 다해라
  그는 두 팔을 잃고 힘들었던 적이 없었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두 팔을 잃고 그림을 그리면서 힘든 건 없었어요. 힘들기보다는 재밌다고 생각했죠. 허리 아프고 몸살이 나기도 하고 코피까지 나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팔을 잃었지만 덕분에 재능을 찾고 행복도 얻은 거죠.” 그래도 두 팔을 잃어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화백은 “가려운 거. 발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가려울 때 힘들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다행히 괜찮아져요”라 웃으며 답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면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돈과 명예만을 좇는 것보다 내가 좋아서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죠.”

  끝으로 그는 과거에 잡혀 앞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항상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야 해요. 지나간 거 생각해봐야 가슴만 아프니까요. 과거가 필요 없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무게를 두면 안 돼요. 무게 중심은 항상 앞에 세상이 빨리빨리 변하는데 거기에 맞춰나가야지 예전에 맞추려고 하면 뒤처지는 거잖아요. 항상 앞을 보면서 가야 해요.”

  화려한 수상 경력, 개인전 36회, 그룹전 240여 회 등  많은 국내외 전시 경력을 자랑하는 석창우 화백이지만 어릴 때부터 미술에 소질이 있었던 건 아니라고 한다. “공고와 공대를 나왔는데 미술시간이 없어 그림을 그려본 적이 거의 없었어요. 중학교 시절 그냥 교실 뒷벽에 걸리는 수준이었죠” 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본격적으로 그림을 시작한 뒤로 10년 넘게 아침 먹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자기 전까지 연습했어요. 동세를 익혀야 하기 때문에 매일 10초를 그리더라도 그 사물을 6개월 이상 관찰했죠. 특히 동영상을 보고 그려야 하는 경우 사람과 직접 소통하고 교류하는 게 아니잖아요. 몸은 비록 여기 있지만 내면은 그 화면 속으로 들어간 것처럼 그 움직임을 보면서 내적인 교류가 이루어져야만 해요. 그래야 선이나 움직임이 보이거든요.” 그의 말에서 무언가를 잡아도 그걸 잡았다는 걸 느낄 수 없던 그가 붓을 잡고 있다고 느낄 수 있기까지의 노력과 열정이 느껴졌다. 그가 두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들과 비교해서 전혀 뒤지지 않는 데는 천부적인 능력 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두 팔을 잃고 힘들었던 적이 없었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대답했다. “두 팔을 잃고 그림을 그리면서 힘든 건 없었어요. 힘들기보다는 재밌다고 생각했죠. 허리 아프고 몸살이 나기도 하고 코피까지 나기도 했지만 그 자체가 힘들다는 생각보다는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팔을 잃었지만 덕분에 재능을 찾고 행복도 얻은 거죠.” 그래도 두 팔을 잃어 일상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있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화백은 “가려운 거. 발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가려울 때 힘들어요.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다행히 괜찮아져요”라 웃으며 답했다. “정말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면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들어요. 돈과 명예만을 좇는 것보다 내가 좋아서 계속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 중요하죠.”  끝으로 그는 과거에 잡혀 앞을 보지 못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고 항상 현재와 미래를 생각해야 해요. 지나간 거 생각해봐야 가슴만 아프니까요. 과거가 필요 없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 무게를 두면 안 돼요. 무게 중심은 항상 앞에 세상이 빨리빨리 변하는데 거기에 맞춰나가야지 예전에 맞추려고 하면 뒤처지는 거잖아요. 항상 앞을 보면서 가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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