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학술-진공은 無로 채워지지 않았다
영화로 보는 학술-진공은 無로 채워지지 않았다
  • 박인규 서울시립대 물리학과 교수
  • 승인 2014.09.02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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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화 <맨 오브 스틸 (Man of Steel, 2013)>

  조드 장군이 지휘하는 크립톤 우주선은 지구의 중력을 증가시켜 지구 문명을 파괴한다. 우주선 앞에서 지구인들의 미사일과 전투기는 무용지물이 된다. 이러한 중력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입자가 바로 ‘힉스입자’이다. 신의 입자라 불리는 힉스입자는 과연 우리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까?


 

  우주는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이 질문은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돼 지금까지도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심오한 질문 중의 하나이다. 일찍이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삼라만상의 모든 물질이 ‘물, 불, 공기, 흙’ 이 네 가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4원소설을 주장한다.

 19세기, 영국의 달튼은 우리 주변의 모든 물질이 그 물질의 성격을 유지하면서 더 이상 깨질 수 없는 원자들로 이뤄졌다는 원자설을 주장한다. 즉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원소들은 서로 다른 원자들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반세기가 더 지나자 멘델레예프는 원소들의 성질을 잘 분류하여 원소주기율표를 만들었고 이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원자의 개수가 대략 1백여 개임을 잘 알게 됐다.

  19세기 말에 J.J. 톰슨은 전자를 발견하고 서로 다른 원자들이 사실은 모두 같은 재료로 이루어져 있다는 플럼파이 모델을 주장한다. 원자는 양전하를 띈 베이스와 전자라는 두 가지 기본물질로 만들어진다는 획기적인 발상이다.

  같은 연구소의 러더퍼드는 이 모델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얇은 금박을 만들어 원자를 향해 알파입자 방사선을 쪼인다. 러더퍼드는 이 역사적인 실험을 통해 원자핵을 발견함으로써 사람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몇 년 뒤인 1915년경 보어는 역학과 전자기력을 바탕으로 원자 속에 존재하는 태양계와 같은 미시세계의 케플러 법칙을 원자모델로 만들게 된다.

  중력은 태양계 같은 거대한 구조를 만들고 그보다 훨씬 힘이 센 전자기력은 원자핵과 전자를 합쳐 원자 구조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원자보다도 훨씬 더 작은 수 펨토미터(1천조분의 1미터) 크기의 핵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어떤 힘으로 뭉쳐있을까. 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구성되어 있고 양성자 중성자 등의 핵자들을 붙잡아 두는 힘을 강력이라고 부르고 있다.

  한편 현대물리학은 양성자와 중성자 또한 기본입자가 아니라는 것을 밝혀냈다. 이들은 u쿼크와 d쿼크라는 두 개의 쿼크를 섞어서 만들어진 복합 입자였던 것이었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물질을 이루는 기본입자는 u쿼크, d쿼크, 그리고 전자 이렇게 세 가지가 있고 물질 간의 상호작용도 중력, 전자기력, 강력 이렇게 세 가지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 눈에 잘 띄지 않는 또 다른 입자와 힘이 있다. 바로 중성미자와 약력이다.

  핵이 변환되는 여러 방법 중 베타붕괴라고 알려진 현상은 핵 속의 중성자가 양성자로 깨지면서 전자를 핵 밖으로 뱉어 놓는 현상이다. 이런 현상은 아주 드물게 일어난다. 즉 상호작용의 크기가 작다고 할 수 있고 그래서 이를 약력이라고 부른다. 한 가지 덧붙일 사실은 이 중성자의 붕괴과정에는 항상 중성미자라는 입자가 동반한다는 것이다. 이제 기본입자는 중성미자, 전자, u쿼크, d쿼크 이렇게 4개가 있는 것이 된다.

힉스 메커니즘의 존재를 예측한 프랑수아 앙글레르(좌)와 힉스입자의 존재를 제시한 피터 힉스(우)는 2013년에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제공/ 박인규 교수


  최첨단 물리학의 이론에 따르면 위에서 이야기한 중력, 전자기력, 강력 등은 힘들을 매개하는 보존입자를 주고받으면서 생긴다. 중력은 중력자라는 보존입자가 매개하고 전자기력은 가상광자, 즉 빛 알갱이가 매개체고 강한 핵력은 글루온이라는 입자가 매개한다는 이론이다. 이들 매개입자의 질량은 0이라고 여겨진다. 한편 약력은 위의 세 가지 힘들과는 달라 이 힘을 매개하는 보존입자가 큰 질량을 가지고 있다. 이 무거운 보존입자는 W입자와 Z입자 두 가지 종류가 있고 이들의 질량은 양성자 질량의 80배, 90배나 된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하면 자연계의 상호작용은 중력, 전자기력, 강력, 약력으로 네 가지가 된다. 물질을 구성하는 기본입자는 4명을 한 식구로 하여 3세대까지 세대 반복을 하며 이 12개 입자를 물리학자들은 페르미온이라는 특별한 이름을 붙여 부른다.

  한편 표준모형에서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네 가지 힘 중 매우 작은 중력은 제외하고 전자기력, 강력, 약력만 다룬다. 힘들의 세계도 γ(가상광자), W, Z, g(글루온) 이렇게 4개의 입자로 설명될 수 있다. 이와 같이 현대물리학의 최첨단 이론인 표준모형에서는 물질과 상호작용을 모두 다 입자로 설명한다. 즉 물질은 12개의 페르미온으로 구성돼 있고 힘은 4개의 보존입자로 구성된다는 이론이다.

  표준모형에 한 가지 더할 것이 있다면 이런 기본입자들이 어떻게 질량을 갖고 있는가를 설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1960년대에 브로우와 앙글레르, 그리고 피터 힉스가 힉스장을 도입함으로써 해결하게 된다. 만약 공간이 원래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無)의 진공이라면 질량이 0인 모든 기본입자들이 광속도로 여기 저기 돌아다닐 텐데 진공이 무의 공간이 아니라 어떤 장(場)이 가득 차 있어서 그 영향으로 입자들이 서로 다른 질량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이를 쉽게 설명하기 위해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어보겠다. 필자와 탤런트 김수현씨는 수학적으로는 같은 입자이다. 즉 같은 남자이고, 머리 하나에, 코 하나, 귀 두 개 등등 모든 면에서 숫자로는 똑같다. 물리학 전문용어로는 둘 다 같은 양자수를 가졌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빈 운동장에서는 둘 다 똑같이 편하게 움직일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운동장이 관객들로 차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필자는 여전히 관객들과 무관하게 돌아다닐 수 있겠지만 김수현 씨는 관객들에 둘러싸여 커다란 질량을 갖게 되고 쉽게 움직일 수 없게 된다. 바로 이들 관객이 힉스장인 셈이다. 이처럼 힉스장은 서로 다른 입자에게 서로 다른 정도의 크기로 달라붙어 입자들에게 질량의 효과를 준다.

  이 힉스입자는 2012년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에 의해 그 존재가 세상에 알려지게 되고 바로 그 다음해에 앙글레르와 힉스는 2013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게 된다. 브로우 박사는 그 전에 사망해 노벨상 수상을 하지 못했다.

  21세기판 원소주기율표인 표준모형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가져다줄까? 지금까지의 물리와 화학이 우리세계에 엄청난 문명의 변화를 가져왔음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반도체와 컴퓨터, GPS와 원자력 발전 등 무궁무진한 과학문명의 이기들이 우리 주변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전기를 처음 다룰 때는 그 원리를 몰라 사고도 많이 났겠지만, 지금은 아주 안전하게 전기를 사용한다. 나는 원자력, 즉 핵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는 우리가 핵력을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해 공포의 대상이 되곤 하지만, 이제 이 표준모형을 바탕으로 인간은 핵력을 완전히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매우 안전하게 풍부한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의 생활 모습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상상은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사실 표준모형은 지금까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정밀한 과학이론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렇다고 맞는 이론은 아니다. 표준모형은 중력을 포함하고 있지 않은 이론이니 불완전한 이론이고, 또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최근 밝혀진 우주를 가속팽창 시키고 있는 미지의 암흑에너지는 어떤 힘에서 오는 지도 설명하지 못한다. 이들 모든 미해결 문제점들을 설명해주는 궁극의 이론은 아마도 표준모형을 발전시킨 전혀 새로운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이 최종이론을 만드는 일은 여러분들의 몫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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