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긍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행복해졌어요
스스로를 긍정하는 순간 모든 것이 행복해졌어요
  • 최한나 기자
  • 승인 2014.09.15 19: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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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50살이라는 김조광수 감독(이하 김 감독)은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젊어보였다. 친절한 미소와 자상한 목소리는 이웃집 삼촌을 떠올리게 했으며 반짝이는 눈빛은 그가 몸담고 있는 영화사 ‘청년필름’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성소수자이지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그를 만나 그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사진/ 최아영 기자

후회 없이 보낸 대학에서의 10년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던 그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이루기 위해 한양대학교 연극영화과에 들어갔다. 그가 대학에 다녔던 시기는 대학생들이 정권에 대항하여 학생운동을 일으키던 때였고 그도 자연스럽게 학생운동에 뛰어들게 됐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20대를 온전히 대학생활로 보낸 그는 긴 대학생활 동안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살았기 때문에 20대의 삶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부모님은 제가 학생운동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지만 저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어요. 오로지 제가 원하는 삶을 살았죠. 저는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했고 그걸 위해서 살았던 것 같아요.”

무지개 같은 영화제작소 ‘청년필름’
  학생운동을 하면서 그는 영화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대학을 졸업하며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 김 감독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영화를 다시 찾게 됐다. “졸업 후 독립영화단체인 ‘영화제작소 청년’에서 활동을 했어요. 그러나 독립영화단체에서는 많은 관객들에게 제 영화를 선보일 수 없었죠.” 김 감독은 영화를 열심히 만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막상 많은 관객을 만나지 못해 아쉬움이 컸다고 한다. “많은 관객과 소통하기 위해 상업영화로 넘어와야 했어요. 집단적으로 상업영화를 해보자는 생각으로 같이 일하던 ‘영화제작소 청년’의 멤버들과 1997년 ‘청년필름’이란 영화사를 설립했죠. 그때부터 청년필름에서 제작자로 활동하게 됐어요.”  


  한국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청년이 되자는 마음으로 청년필름을 설립한 김 감독과 동료들은 20년이 지난 지금 모두 중년이 됐다. 그러나 영화제작에 대한 열정만큼은 청년시절의 열정 그대로였다. 청년필름은 ‘개성이 있으면서도 완성도 높은 영화를 만들자’라는 모토를 가지고 현재까지 약 20편 정도의 영화를 제작했다. “청년필름은 무지개 같은 회사예요. 아직까지 자부심을 느낄 만큼은 아니지만 부끄러운 영화는 안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늦깎이 연출가, 삶을 유쾌하게 담다 
  실질적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은 연출가이기 때문에 제작자는 자신이 계획했던 의도대로 영화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영화가 완성되지 않은 경험이 몇 번 있다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만족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일을 하기엔 조금 늦은 나이일 수도 있는 44살, 그는 뒤늦게 연출가가 됐다. 영화 <소년, 소년을 만나다>는 그의 첫 연출작이다. “물론 늦은 나이에 다른 직업을 선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죠. 저 스스로도 두려움이 많았고 주변에서 말리기도 했어요. 그러나 영화 연출을 너무 하고 싶었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김 감독의 영화들은 유쾌하다. “밝은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이성애자 중심인 사회에서 성소수자로 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행한 일도 아니거든요. 가끔 한국 이성애자들이 퀴어 영화를 볼 때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그런 시선이 싫었죠. 성소수자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렇다고 김 감독의 영화가 마냥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달콤하기만 하다고 해서 모두 행복한 것은 아니잖아요. 불행을 겪어야 행복함이 더 느껴지는 것처럼 아픔을 딛고 행복해지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으려고 해요.” 

  그는 지금까지 동성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여러 편의 단편영화와 한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했다. “한국에는 퀴어 영화가 많지 않아요. 성소수자의 비율이 전체인구에 5%가 넘는다고 하는데 그만큼 영화의 비중도 비슷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균형을 맞추고 싶었어요. 또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이 퀴어 영화이기도 했고요.” 현재 캐스팅 중에 있는 두 번째 장편 영화는 퀴어 영화가 아닌 남자들의 우정을 담은 영화라고 한다. “지금까지는 일부러 퀴어 영화를 해왔다면 이제는 자연스럽게 내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할 생각이에요. 이젠 영화를 여러 편 연출해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 자신감도 생겼고 영화 장르의 폭을 넓혀나가고 싶어요.”
 

 커밍아웃에서 공개 결혼까지, 용기를 내다
  “15살 때 처음 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나 30살이 될 때까지 저의 성 정체성을 부정했죠. 게이로 살면 행복하게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가 게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당시, 우리나라는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으며 언론에서는 동성애를 부정적으로 표현했다. 그게 진실이라고 믿었던 그는 게이로 살면 자신의 꿈과는 상관없이 인생을 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갑자기 내 스스로가 나를 차별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전까지는 ‘사람들은 왜 나에 대해 편견을 가질까’라고 생각하며 속상해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부정하면서 남들에게 나를 인정해달라고 이야기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거죠.” 그렇게 큰 깨달음을 얻은 그는 이후 자신의 존재에 대해 긍정하고 스스로를 인정하게 됐다. “구석에 움츠리고 있던 15살 광수를 안아줬어요. 괜찮아, 너도 꿈을 이룰 수 있고 충분히 행복할 수 있어.” 이때 김 감독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숨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그는 친구들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사람들에게 성소수자로 살아도 행복한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다짐했다. “비록 나는 15년 동안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고 괴로워했지만 다른 성소수자들은 그러지 않길 바랐어요. 동성애자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주고 싶었고요. 왜냐하면 저는 15년이란 시간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김 감독은 언젠간 공개적인 커밍아웃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 앞에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이 더 흐르고 그는 영화 <후회하지 않아> 간담회에서 공개적으로 커밍아웃을 한다.

  “사회는 동성애자를 차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합법적인 결혼은 이성애자들만 할 수 있죠. 동성애자들에게도 결혼을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받아들여지는 순간 많은 차별이 사라지게 될 거예요.” 그는 자신이 공개적으로 결혼식을 올림으로써 사람들이 동성애자도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쯤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결혼식 자체가 로망이자 꿈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꿈을 이룬 거죠.” 결혼을 함으로써 오는 약간의 불편함이 있지만 그것보다 결혼이 주는 행복과 삶의 안정이 더 크다고 말하는 그의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

  끝으로 기자는 우리대학 학우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는 “예전에 덕성여대에 여러 번 갔었는데 잔디밭도 있고 뒤에 산도 있어서 캠퍼스의 분위기가 참 좋았던 것으로 기억해요.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만큼 좋은 생각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이기적인 생각은 하지 말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생각을 많이 하세요.” 그리고 그는 자신을 위한 꿈을 찾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그는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깨닫고 꼭 행복을 찾기 바라요”라며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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