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과잠을 입는가
우리는 왜 과잠을 입는가
  • 최한나 기자
  • 승인 2014.11.10 1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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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잠을 입는 대학생, 소속감을 입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캠퍼스엔 ‘과잠(학과 점퍼)’을 입고 다니는 학우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학과마다 다른 과잠의 색과 디자인을 살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학과 학생끼리 맞춰 입는 이 과잠은 외투 대신 편하게 입을 수 있고 소속감을 갖게 해 많은 대학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과잠의 계절을 맞아, 과잠을 바라보는 다양한 생각들을 알아봤다.




우리대학 캠퍼스를 돌아다니다보면 과잠을 입은 학우들을 많이 마주치게 된다.  사진/ 최한나 기자

  대학가에 자리잡은
  과잠문화
 
  이제 과잠 없는 대학과 학과가 없을 정도로 대학생들에게 과잠은 보편화됐다. 등교시간 대학가를 지나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학생들이 다양한 색깔과 디자인의 과잠을 입은 모습을 볼 수 있다. 대학생들의 과잠 선호를 증명하듯 등판에 적혀있는 대학이름과 학과, 소매에 박힌 학번, 학교 마크 또한 다채롭다.

  요즘 대학생들은 고등학생 때 입었던 교복을 벗어 던진 지 얼마되지 않아 또 다시 자신들만의 교복인 과잠을 찾기 시작했다. 이렇게 대학생들 사이에서 과잠이 유행하자 과잠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판매점도 하나둘 생겨났다. 과잠 전문 제작업체 썬어패럴 이은철 본부장은 “1년에 약 3만 장 정도의 과잠이 판매되고 있다”며 “해가 갈수록 과잠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메시지를 담은 단체 티에서
  소속감을 주는 과잠으로

  과잠문화의 시작은 언제부터였을까? 그 시작은 1970년대 유행하던 ‘대학 배지’라고 할 수 있다. 그 당시 대학생들은 자신이 대학생이라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 가슴에 소속 대학을 상징하는 배지를 달았다. 1970년대에는 대학에 진학하는 비율이 30%에도 미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학생의 지위는 현재보다 훨씬 높았고 학생들은 대학을 다니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다.

  시간이 흘러 학생운동이 활발했던 1980~9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학생들은 연대감을 나타내기 위해 저항의 메시지가 새겨진 단체티를 맞춰 입었다. 그러나 당시 학벌 과시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로 인해 대학생들은 눈치를 보며 단체티를 맞춰 입어야만 했다.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점퍼 형태의 과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서울 소재 대학들이나 위계 질서가 중요하게 여겨지는 예체능 계열 학과를 중심으로 과잠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 외화드라마의 영향으로 미국에서 유행하던 후드 점퍼나 야구점퍼가 과잠으로 쓰이게 됐다. 그러나 당시에만 해도 자신이 명문대생이라는 걸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 분위기에 어긋나는 행동이었기 때문에 과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긍정적이지만은 않았다.

  2008년 전후부터 본격적으로 대학가에는 야구점퍼 형태의 과잠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의류 브랜드의 야구점퍼가 유행하는 시기이기도 했고 대학생들이 학벌을 드러내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봤던 시선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였기 때문에 학생들은 과잠에 대해 별다른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됐다. 우리대학 이응철(문화인류) 교수(이하 이 교수)는 “최근에는 과잠이 단체옷이라기보다 소속에 대한 표식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며 “요즘 학생들은 고등학교 때부터 이미 반티를 맞춰 입기 때문에 대학에서 과잠 맞추는 것을 예전에 비해 덜 부담스러워 하는 편이다”고 말했다.
  
 
나는 대학생이다
  고로 과잠을 입는다

  그렇다면 과잠의 매력은 무엇일까? 학생들은 가장 먼저 편리함을 꼽았다. 우리대학 박현정(사회복지 1) 학우는 “언제 어디에서든 편하게 입을 수 있다”며 “과잠이 워낙 따뜻하기 때문에 요즘 같이 쌀쌀한 날씨에 입기 좋다”고 말했다. 우리대학 국한비(정치외교 1) 학우는 “입을 옷이 없을 때 옷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며 “어떤 옷이랑 함께 입어도 무난하게 어울리고 부담스럽지 않게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잠의 또 다른 매력은 과잠을 입으면서 학과에 대한 애정과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화여대 양세영(인문과학 1) 학생은 “대학 안에 과잠을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많아 교복 같은 느낌이 든다”며 “학과가 정해지지 않은 학부제라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었는데 과잠을 입고 나니 소속감이 생겨서 좋다”고 말했다. 이렇듯 대학생들은 과잠을 통해서 집단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그곳에 자신이 속해있다는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  또한 학생들은 소속된 학과에 대한 자부심과 연대감을 표출하기 위해 평범한 과잠에 만족하지 않고 각 과마다 색깔이나 디자인에 차별성을 두고 있다.

  또한 과잠이 대학생을 나타내는 하나의 상징물로 기능한다고 보는 학생들도 있다.  인하대 서민주(교육 1) 학생은 “과잠을 입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것은 대학생활의 로망이었다”며 “과잠을 입는 것은 그 학교 학생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고 말했다. 또한 우리대학 인문대에 재학 중인 한 학우는 “대부분의 학과 동기들이 과잠을 입는데 만약 나 혼자 과잠을 입지 않게 될 경우 소외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현재는 고등학생 때의 ‘반티’ 개념으로 과잠을 입고 다닌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과잠을 입는 학생들이 다양한 것처럼 개인마다 각각 다른 의도를 가지고 과잠을 선택한다”며 “과잠은 입는 사람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과잠을 입는 이유는 매우 다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학벌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이러한 과잠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다. 대학의 서열이 과잠을 통해 느껴지고 확인된다는 것이다. 과잠문화가 처음 명문대에서 시작되었고 현재도 대체적으로 명문대학의 학생들이 다른 대학의 학생들보다 과잠을 더 많이 입고 다니기 때문이다. 지하철 등의 공공장소에서는 소위 명문대의 과잠이 더 자주 눈에 띈다. 자신들의 대학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이외의 대학 학생들은 공공장소에서는 과잠 입기를 기피하기도 하고 학교에서만 과잠을 입고 다니는 경우도 있다. 우리대학 역시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학우들이 있다. 우리대학 사회대의 한 학우는 “우리대학이 창피한 것은 아니지만 지하철을 탈 때는 잠깐 과잠을 벗고 있는다”며 “아무래도 지하철에는 명문대의 과잠을 입은 학생들이 많다 보니 주눅이 든다”고 말했다. 이렇듯 자기 스스로 과잠을 통해 대학의 급을 매겨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 또한 문제이다.

  온라인에선 한동안 서울대 학생들이 과잠을 입고 홍대 앞 클럽에 간 것에 대해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비난하는 사람들은 ‘놀러 가서까지 학교를 자랑하고 싶은가’ ‘클럽에서까지 학벌주의를 봐야 하는가’라는 목소리를 냈다. 이러한 시각에 반대하는 여론도 일고 있는데 ‘무엇을 입고 다니든 그것이 왜 비난거리가 되어야 하나’이다. 이에 대해 우리대학 국한비(정치외교 1) 학우 역시 “명문대 학생들이 자신들의 학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과잠을 입는 것이 나쁘게 보이진 않는다”며 “그들의 자유이기 때문에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복이 주었던 소속감이 사라지자 대학생들은 자신이 어딘가에 속해 있다는 안정감을 주는 수단이 필요했고 그러한 기능을 과잠이 대신하게 됐다. 이 교수는 “과잠은 내가 집단에 속해있다는 걸 굉장히 명확하게 보여주는 좋은 장치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개인의 정체성은 가려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과잠은 현재 학벌 과시의 수단을 넘어 하나의 대학문화로 자리 잡았다. 과잠은 경쟁사회에서 자신의 소속감을 찾지 못하는 우리에게 안정감을 준다. 자신의 대학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이 과잠으로 드러난다면 비판을 받겠지만 과잠보다 훨씬 실용적이면서 소속감을 주는 무언가가 나타나지 않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과잠을 입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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