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를 바탕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어요
서예를 바탕으로 한글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싶었어요
  • 류지형 기자
  • 승인 2014.11.10 19: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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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류지형 기자

  단언컨대 누구나 한 번쯤은 그의 작품을 접해봤을 것이다. 일상에서 쓰이는 제품의 로고뿐만 아니라 수많은 영화·드라마의 타이틀, 광고 포스터, 책 표지에도 그의 작품이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는 바로 캘리그래퍼 강병인(이하 강 캘리그래퍼)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tvN 드라마 <미생>과 소주 브랜드 ‘참이슬’의 타이틀, 숭례문 복원공사 가림막에 쓰였던 글씨가 모두 그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캘리그래퍼로 손꼽히는 강 캘리그래퍼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연히 시작된 붓과의 운명적 만남
  강 캘리그래퍼는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화가를 꿈꿨다. 그러나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서예를 접한 후 그 매력에 빠지게 된다. “시골에 있던 학교라 선생님이 학교에서 양봉을 하셨는데 서예반에 들어오면 꿀을 실컷 먹게 해준다고 하셨어요. 먹을 갈고 글씨를 쓰는 매 순간이 좋았죠. 돌이켜보면 서예를 좋아하게 된 데는 선생님의 격려와 칭찬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서예를 좋아했던 그는 중학생 때 교과서에 실린 추사 김정희 선생을 통해 서예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조선시대 최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 선생님을 알게 된 후 휼륭한 서예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요. 어렸지만 김정희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한자로는 김정희 선생님을 따라갈 수 없으니까 나는 한글로 서예의 대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이때 영원히 먹과 함께 살겠다는 다짐을 담아 스스로 ‘영묵’이라는 호도 지었어요. 그 이후로는 글씨를 쓰는 것이 마냥 좋아서 어딜 가든 붓과 함께 했죠.”

캘리그라피의 세계에 눈뜨다
  강 캘리그래퍼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 졸업 후 공장에 다니며 일을 했지만 손에서는 붓을 놓지 않았다. “낮에는 일을 하고 밤이 되면 서예를 독학했어요. 그러나 서예를 좋아하고 즐겼기 때문에 전혀 힘들지 않았죠.” 서울로 올라와 출판사 디자이너로 일하게 되면서도 그의 서예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계속됐다. “한글 서예전에 다니면서 똑같은 모습에 가지런하기만 한 한글을 보고 한글의 서체가 너무 정형화돼 있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예술성과 아름다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한글은 왜 한문처럼 다양한 서체가 없는지 궁금했죠. 또 김정희 선생님의 서예는 내용과 글귀에 따라 서체가 달랐어요. ‘그렇다면 한글도 김정희 선생님처럼 글귀에 따라서 글꼴을 바꾸고 단어에 뜻에 따라 느낌을 살린 글씨를 쓸 수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죠.”

  틈틈이 글씨를 쓰며 디자이너로 살아가던 30대 초반, 그는 일본여행을 가서 캘리그라피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길거리를 걷는데 붓글씨로 쓰인 가게 간판이 많이 보였어요. 간판뿐만 아니라 제품의 로고와 광고 카피까지 서예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었죠. 이때 처음 서예가 상업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후 IMF가 터지고 그가 운영하던 디자인 회사가 문을 닫게 되면서 강 캘리그래퍼는 새로운 무엇인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 끝에 나온 것이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캘리그라피였다.

강병인 캘리그라피 연구소 ‘술통’을 만들다
  강 캘리그래퍼는 전문적으로 캘리그라피를 하기 위해 준비하면서 디자인 잡지를 만들기도 했고 광고회사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글씨에 대한 실험을 멈추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에 일러스트 작가들의 모임 ‘다비전’의 로고를 붓글씨로 만들었어요. 또 광고회사에 일하면서 롯데 칠성 음료의 ‘따자마자 대축제’ 신문광고 문구를 손글씨로 쓰기도 했죠.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 광고회사를 그만두게 되면서 캘리그래퍼의 꿈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이후 그는 2002년 강병인 캘리그라피 연구소 ‘술통’을 만들었다. 회사를 설립하고 처음에는 수개월간 일이 들어오지 않았지만 한 번도 후회하거나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당시 사람들에겐 캘리그라피라는 것이 생소했고 글씨에 대가를 지불한다는 인식이 없었죠. 회사를 힘들게 유지했지만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캘리그라피가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강 캘리그래퍼는 캘리그라피 작업을 시작하면서 스스로 두 가지 목표를 세웠다.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해 디자인의 한 장르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에 더해 제가 좋아하는 글씨를 쓰면서 경제적으로 자립도 하고자 했죠. 또 12년 전만 해도 한글 서예는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어요. ‘한글은 너무 단순하다’라는 편견도 있었고요. 그래서 나만의 해석을 통해 한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겠다고 다짐했죠.”

좋은 글씨에는 인간의 희노애락까지 들어가 있어요
  그가 술통에서 대가를 받고 글을 쓴 첫 작업은 한 교회 포스터의 제목을 쓰는 일이었다. “교회 포스터에 들어갈 ‘해바라기’라는 글씨를 쓰게 됐어요. 결과가 매우 좋았죠. 손글씨로 썼더니 전체적인 분위기도 살았을 뿐만 아니라 메시지 전달 효과도 있었어요.” 이후 그는 KBS2 드라마 <엄마가 뿔났다>, KBS1 드라마 <정도전>, 영화 <의형제> 등 각종 영화·드라마 타이틀, 참이슬과 산사춘 등의 제품 로고 등의 수많은 작업을 진행했다. 그의 노력에 힘입어 2000년대 중반 우리나라에는 캘리그라피 열풍이 불었다. 각종 광고 카피와 포스터를 넘어 일반적인 제품 로고에도 유행처럼 캘리그라피가 사용됐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KBS2 드라마 <대왕세종>을 꼽았다. “<대왕세종>을 쓸 때는 매우 어려웠어요. 세종대왕의 삶을 다룬 드라마이기 때문에 글씨 안에 담아낼 얘기가 너무 많았죠. 또 한글을 창제하신 분이기에 더욱 부담감이 크기도 했고요. 수많은 고민 끝에 세종대왕의 이성적인 면모와 부드러운 면모를 모두 표현했어요. 힘들었지만 결과가 좋았고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꼈기 때문에 가장 애착이 가요”

  강 캘리그래퍼는 하나의 작업을 하기 위해선 수없이 글을 써봐야 한다고 말한다. “누군가는 그냥 ‘글씨를 썼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사실 글씨 하나를 쓰는 데도 많은 노력이 들어가요. 같은 말이라고 해도 작가의 시점에 따라 작가의 감정이 개입되는 거잖아요. 저는 ‘꽃’이라는 단어 하나를 쓸 때도 내가 꽃을 바라보는 감정을 살려서 글씨를 써요. 조형성과 심미성도 나름대로 중요하죠. 또 글씨 안에 인간의 희노애락까지 들어있어야 좋은 글씨라고 생각해요.”

강병인 캘리그래퍼는 tvN 드라마 <미생> 타이틀을 작업할때 알에서 깨지 못한 사회 초년생의 모습을 표현했다.

즐기는 것이 이기는 길이에요
  강 캘리그래퍼는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말한다. “제가 쓴 글이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가 될 것인지 생각하면 글씨를 막 쓸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공부하고 노력해서 더 좋은 글씨를 보여줘야 하죠.”

  그는 대학생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당장 할 수 없다고 포기하지 마세요. 계속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언젠가 기회는 찾아와요. 저도 한 번에 서예가나 캘리그래퍼가 된 것은 아니잖아요. 또 즐기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도 디자이너로 있을 때는 즐기지 못했기 때문에 성공할 수 없었죠. 그러나 캘리그래퍼를 시작할 때는 돈을 버는 것에 매달리다 보기는 ‘그냥 즐기자’라고 생각을 했기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어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무조건 최선을 다하고 즐기세요. 즐기고 최선을 다하면 기회가 찾아올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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