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적해나가는 인생이 됐으면 좋겠어요
축적해나가는 인생이 됐으면 좋겠어요
  • 최한나 기자
  • 승인 2014.12.08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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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이 소리는 ○○○마을에서 ○○○할아버지가 보리타작하는 소리입니다.” 라디오를 좋아하는 애청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한 번쯤 이 멘트를 들어봤을 것이다. 바로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MBC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토속민요를 들려주는 매우 유익한 방송이다. 방송에서 들려주는 토속민요들은 최상일 PD의 노력으로 탄생한 작품들이다. 최상일 PD를 만나기 위해 상암동 MBC로 향했다.


  좋아하는 것을 찾아
  자신의 여건에서 최선을 다해라
  우리의 소리를 찾아 자료를 만드는 일에 25년 PD 인생을 바쳐 온 그는 어릴 적부터 음악에 관심이 많았다. 전통문화가 남아있던 시대의 끝자락에 태어나 전통음악을 맛보며 소년시절을 보낸 것이 오늘날 그가 이룬 업적에 뿌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경기도 여주에서 초등학교까지 다녔는데 당시 민요가 많이 없어지긴 했어도 1960년대 초반이라 상여소리 같이 살아있는 소리들이 남아있었죠. 여럿이서 노래하는 소리가 들리면 밥 먹던 숟가락을 놓고 쫓아가 구경을 했어요. 가사를 몰라서 따라하진 못했지만 좋다고 생각하며 들었죠.”

  그는 대학에 입학해 반독재 투쟁 학생운동에 참여한다. “대학에 가서는 학생운동도 하고 농활도 열심히 다녔는데 한 번은 같이 간 선배가 할머니께 노래를 부탁드렸어요. 그때 할머니께서 부르시는 노랫가락이 너무 듣기 좋고 애잔해서 귀에 쏙쏙 들어왔어요. 감동을 받아서 곡조는 잊어버렸지만 가사 앞부분을 외웠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강원도 아라리’라는 곡이었어요. 이것이 제가 토속민요를 직접 접한 첫 순간이었죠.” 

  대학생활을 마치고 신문기자가 되려고 했지만 그때 당시 학생운동을 한 사람들은 신문기자가 될 수 없었다. 선배들의 좌절하는 모습을 본 그는 차선책으로 방송국 PD에 지원하게 된다. “방송국에 입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학생운동을 했던 전적 때문에 PD에서 행정직으로 좌천됐어요. 그러나 저는 PD를 하고 싶어했죠. 그때 라디오국 부장님 한 분이 라디오 소속인 레코드실에 사서직으로 가있으면 나중에 PD로 부르겠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그는 레코드실에서 일하면서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어릴 때의 경험들과 대학생 때 뇌리에 박힌 경험이 토속민요에 관한 방송을 기획하는 데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나중엔 모두 뼈와 살이 되는구나.’ 내 목표만 있으면 옆으로 조금 새더라도 나중에는 다 잘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어요. 원하던 것과 현재하고 있는 일이 다르다고 불행한 건 아니죠. 그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고 보람을 느끼면 된 거예요. PD 역시 차선책이었는데 음악과 문화를 모두 좋아했으니까 결국에는 이렇게 끝까지 일하게 된 거죠.”

  사라질 뻔한 우리소리
  소중한 자료로 남아
  산업화가 진행되고 상업적인 음악이 쏟아져 나오면서 토속민요는 점차 사라져갔다. 현재는 토속민요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를 거의 만날 수 없다. 최상일 PD가 있어서 사라질 뻔한 우리나라 토속민요들이 그나마 기록으로 남게 됐으며 소중한 우리나라의 자료가 됐다.

  “1989년 <한국민요대전> 방송을 시작하면서 1995년까지 집중적으로 토속민요를 수집했어요. 처음에는 ‘토속민요를 방송에서 틀고 싶은데 음원이 없다’라는 생각으로 수집을 시작하게 됐죠. 계획을 세우고 윗사람들을 설득시켰어요. 본격적으로 수집을 하려니까 예상보다 민요가 많이 남아있어서 계획보다 일이 좀 커졌어요.” 당시 예산도 증가해서 여러 명이 동시에 수집을 하기도 했다. 7년 동안 그가 수집한 자료는 총 1만 8천 곡 정도이다. “심지어는 추적 끝에 북한에서 자체적으로 녹음한 음원도 입수했어요. 그것까지 합치면 지금까지 수집한 음원이 2만 곡이 넘는데 굉장히 귀중한 자료죠. 토속민요는 적어도 내 손에서 남북통일을 시킨 거예요(웃음).” 그는 직접 수집한 1만 8천 곡 중에서 방송에 쓸 수 있는 질 좋은 곡들을 뽑아 103장의 CD로 제작했다. 이렇게 수집한 민요는 <한국민요대전>과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방송에 쓰였다. <한국민요대전>은 2008년에 종방했지만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는 지금까지 축적된 토속민요를 토대로 계속 방송될 예정이다.

  그는 7년간의 민요 수집을 끝내고 후속작업으로 굿 음악도 수집했다. 그 후 <최상일의 민속기행>이란 프로그램을 맡게 됐다. 어르신들을 만나서 민요를 부르던 시절, 공동체 문화가 살아있었던 옛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 프로그램이었다. “제가 직접 원고를 쓰고 나레이션부터 편집까지 모든 일을 맡아서 했어요. 1인 방송을 한거죠(웃음). 3년 전까지 방송했으니까 꽤 오랫동안 했네요.”

  이렇듯 하나의 테마를 가지고 꾸준히 오랫동안 방송을 하다 보니 그의 방송은 사람들이 알아주는 방송들이 됐다. 인지도가 높아져 패러디도 되고 상도 받았으며 MBC의 대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게 됐다. “학문적, 문화적으로 가치가 있는 방송이다 보니 이걸 가지고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어요. 제가 만든 자료를 가지고 음악도 만들고 공연도 해요. 얼마 전에도 초대를 받아서 공연을 보러갔다 왔죠. 제가 만든 자료를 활용해주니까 고맙고 뿌듯하더라고요.”

  행복했던 PD 생활
  은퇴 후, 아시아 민요까지
  한 달 후면 은퇴를 하게 되는 최상일 PD는 지난달 16일에 개편을 맞으면서  PD로서의 마지막 방송을 마쳤다. 지금은 방송을 하지 않아 꽤 여유롭다고 말하는 그는 현재 수집된 자료들을 데이터베이스에 정리하는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시대가 갈수록 자료들은 값비싼 재산이 돼요. 이런 자료를 잘 정리해놓고 나가는 것이 제가 할 일이죠.” 그는 지금까지의 PD생활을 돌아보면 정말 행복했었다고 말했다. “방송일은 정말 보람이 있는 일이고 문화를 이끌어가는 영향력 있는 일이에요. 지금 생각해보면 저같이 뚜렷한 테마를 가지고 PD생활을 한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학술적인 부분에도 기여했기 때문에 행복한 PD인생이었다고 자부해요.”

최상일 PD는 은퇴 후 작업의 범위를 아시아의 토속민요로 넓혀가고 싶다고 했다.

  다른 나라의 전통음악에도 관심이 많다는 그는 은퇴 후 아시아 민요로 연구 범위를 넓히고 싶다고 한다. “예전에 아시아 쪽 민요를 채록했었는데 그러면서 관심이 더 커졌어요.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도 우리나라처럼 개발이 된다면 점차 토속민요가 사라질 것이기 때문에 기록이 필요해요.” 그러나 그는 아시아 민요들의 범위가 너무 넓고 돈이나 언어 때문에 모든 민요를 채록하는 데 벅찰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지만 일단 혼자서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로라도 관심을 가지면 안 될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시간도 많고 또 하면 하는대로 남게 되니까 해 보려고 해요. 그러다 함께할 수 있는 기관을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 하세요
  그는 마지막으로 덕성여대 학우들과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자신만의 콘텐츠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만의 관심사를 빨리 찾아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가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에요. 뭔가 축척해나가는 인생이 됐으면 좋겠어요. 남들이 안 하는 것, 못 하는 것, 내가 잘할 수 있고 좋아하는 것을 유행에 휩쓸리지 말고 열심히 찾으세요. 그럼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당장은 힘들 것 같더라도 인생을 길게 보고 꾸준히 노력한다면 자신만의 전문 영역을 구축할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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