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또 다른 나예요“
“소설은 또 다른 나예요“
  • 류지형 기자
  • 승인 2015.03.17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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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정화되고 정형화된 모든 것을 뒤집어보고 거꾸로 보는 매서운 눈썰미를 지녔다.’ ‘고드름 녹은 차디찬 물에 머리통을 들이밀며 단련한 듯한 문장이다. 단단하고 야무지다.’ 최진영 동문(이하 최 동문)이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받았을 당시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이다. 소설에서는 특유의 독한 언어로 현실을 직설적이면서 날카롭게 묘사하는 작가이지만 실제로 만난 최 동문은 앳된 외모에 아이 같은 웃음을 가진 소녀 같았다. 최 동문을 만나 그녀의 대학시절 이야기와 인생 이야기를 들어봤다.

  글쓰기를 통해 속마음을 터놓다
  “어렸을 때 꿈이 없었어요. 자존감이 낮은 아이였죠. 초등학교 때는 전학을 자주 가서 친구를 사귀기 어려웠어요.” 유년시절 부모님을 따라 이사를 자주 다녔다는 최 동문은 초등학교만 4곳을 다녔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유일하게 친구가 되어준 것은 글쓰기였다. “마음에 담아둔 얘기들이 많았지만 터놓고 속마음을 얘기할 곳은 없었어요. 이것을 해소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어요. 혼자서 글을 쓰는 것은 좋아했지만 막상 소설가가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어요. 소설을 제대로 쓰기 시작한 것도 대학교 4학년 때부터예요.”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최 동문은 자신은 의외로 책을 많이 읽지 않았다고 웃으며 답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읽은 책이라곤 <어린왕자>, <갈매기의 꿈>이 전부에요. 책은 대학교에서 많이 읽었죠. 덕성여대가 나에게 준 것이 있다면 바로 도서관이에요.” 최 동문은 우리대학에 입학한 후 공강 시간마다 대강의동 옥상에 올라가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 한 권과 김밥 한 줄을 가지고 대강의동 옥상에 올라가서 주로 시간을 보냈어요. 도스토옙스키와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책을 많이 읽었죠.”

  예나 지금이나 나에게 유일한 선생님
  그녀는 유난히 우리대학 이명찬(국어국문) 교수(이하 이 교수)와의 추억이 깊다. “저에게는 유일한 선생님이에요. 뭐랄까, 전형적인 선생님 같지 않은 분이었어요. 훈수하거나 윽박지르지 않고 학생들을 인간적으로 대해주셨죠.” 기자가 이 교수와 특별한 추억이 있었느냐고 묻자 최 동문은 기억나는 일이 있다며 기자에게 얘기를 들려줬다. “1학년 때 처음 교수님 수업을 들었었는데 하루는 과제를 내주셨어요. 다들 노트북으로 작성해왔지만 저는 노트북도 없었고 한글 파일을 작성할 줄 몰라서 색색의 볼펜으로 글씨를 써서 과제를 제출했죠. 근데 선생님은 손으로 쓴 리포트를 너무 오랜만에 받아 보셨나 봐요. 첫 수업인데 점수를 굉장히 잘 주셨어요. 2학년 때는 한창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 없었어요. 과 친구들은 서로 모여서 노는데 지방에서 올라온 애가 겉도니까 관심을 써 주셨던 것 같아요. 저를 ‘아르바이트의 여왕’이라고 부르기도 하셨어요. 한 개밖에 안 했는데도요(웃음). 교류가 많았던 건 아니지만 많이 신경을 써주셨죠.” 예나 지금이나 최 동문의 유일한 선생님이라는 이 교수는 지금까지도 최 동문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이후 3학년이 된 그녀는 우리대학 문학 동아리인 운지문학회에 들어가게 된다. “친구를 따라 동아리방에 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지문학회에 들어가게 됐어요. 원래 1학년 때 가입을 해야 했는데 늦게 들어간 거죠. 운지문학회에서는 화평과 세미나도 하고 1년에 한 번 꼭 문집을 냈어요. 저는 4학년 때 문집 속에 제 작품을 넣으려고 처음 소설을 쓰게 됐어요.” 기자가 소설의 제목을 묻자 최 동문은 손사래를 쳤다. “비밀이에요. 그땐 작정하고 소설을 쓴 게 아니었어요(웃음).”

  실천문학 신인상을 받고 등단하다
  최 동문은 졸업한 뒤 고향에 내려가 학원에서 중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아침에는 학생들에게 공부를 가르치고 밤에는 글을 썼어요. 이때부터 제대로 습작을 시작했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혼자 쓴 글을 남들이 소설로 봐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그래서 실천문학사에서 주최하는 실천문학 신인상 작품 모집에 제 작품을 제출했죠.” 최 동문은 그해 2006년, 실천문학 신인상 단편소설 부문에서 단편소설 <팽이>로 신인상을 받고 등단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창창한 앞날이 펼쳐진 것은 아니었다. “등단한 후 4년 가까이 청탁이 하나도 오지 않았어요. 출판사에 제 작품을 제출해도 늘 거절을 당했죠. 등단했으나 작가가 아닌 채로 살았어요.” 실제 이 시기에 글 쓰는 것을 포기하는 작가들이 많다고 한다.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만 이름이 알려져서 책이 팔리는 사람은 얼마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글 쓰는 것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고 한다. “제대로 시작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포기할 이유도 없었어요. 마치 시험 공부하듯 ‘2년 안에 반드시 합격하겠어!’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 것도 아니었고 이제까지 혼자서만 글을 써왔기 때문에 문제가 없었죠.”

  소설을 통해 자신을 이야기하다
  등단한 지 어언 4년이 지난 2010년, 최 동문은 장편소설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으로 제15회 한겨레문학상을 받게 된다. 당시 예심 심사위원뿐 아니라 박범신 작가와 공지영 작가 등 본심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그녀의 작품이 당선됐다. 그 후 최 동문은 10편의 단편소설이 실린 소설집 <팽이>와 장편소설 <끝나지 않는 노래>,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를 연이어 펴냈다. 그녀의 소설 속 인물들은 서민, 비정규직, 여성, 실업청년, 10대 등 다양하다. 기자가 ‘최 동문의 소설에는 사회적 약자들이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고 말하자 그녀는 “제 소설에 등장하는 이들은 약자가 아니라 사회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중요한 구성원이라고 생각해요. 또 제가 그런 신분이기도 하고요. 어쩌면 소설을 통해 제 얘기를 한 게 아닐까 해요”라고 답했다.

  한편 가장 최근에 출판된 장편소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에서 그녀는 공금 횡령과 살인 혐의로 도주 중인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전 소설의 주인공들은 전부 여자였어요. 사람들이 왜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만 쓰느냐고 물어봐서 ‘그럼 이제 남자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하나 써볼까?’라는 생각을 했죠. 또 어렸을 때부터 죽음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다뤄보고자 했어요.”

  대학 시절은 보석과 같아요
  “만약 도화지가 있었다면 저는 그림을 그렸을 것이고 피아노가 있었다면 피아노를 쳤을 거예요. 그러나 저에겐 펜과 종이가 있었죠. 글에 대한 재능이 있기보다는 글쓰기 외엔 다른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없었고 글쓰기에 대한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제 목표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글을 쓰는 거예요.” 최 동문에게 글쓰기는 자신을 해소하는 방법이자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다. “소설은 또 다른 나이기 때문에 제 글을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하더라도 글쓰기를 그만두지 않을 거예요. 저에겐 글쓰기가 소중해요.”

  마지막으로 최 동문에게 덕성여대가 어떤 의미냐고 묻자 그녀는 ‘고등학교 4학년’이라고 대답했다. “저는 고등학교를 좋아했어요. 운동장 계단에 앉아서 햇볕을 받으면 ‘아주 좋다. 아주 행복하다. 다시 오지 않을 시간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났죠. 대학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힘들고 외롭고 쓸쓸하고 한 치 앞을 알 수 없어서 불안하긴 했지만 대학 시절은 저에게 보석과도 같은 시간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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