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에코의 슬픈 사랑
[교수칼럼] 에코의 슬픈 사랑
  • 손경애 불어불문학과 교수
  • 승인 2015.03.30 20: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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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 물러나지 않을 듯이 기세등등하던 겨울이 어느새 스르르 사라졌다. 그리고 항상 그래 왔듯이 올해도 예외 없이 봄이 우리를 찾아왔다. 역시 따뜻한 봄날이 좋다. 봄이 되니 봄바람이 들었는지 산에 가서 울긋불긋한 진달래들을 보고 싶다. 그리고 올봄에는 무엇보다도 산속에 울려 퍼지는 메아리 소리가 듣고 싶다. 메아리는 영어로 에코(echo)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에코 요정의 이름이다.

  에코는 숲과 언덕을 좋아했다. 그녀는 숲 속에서 사냥을 하거나 즐겁게 놀며 시간을 보냈다. 아르테미스는 아름답고 명랑한 에코를 총애해 사냥을 갈 때 늘 데리고 다녔다. 그러나 아름다웠던 그녀의 육신은 모두 사라지고 목소리만 남았다. 그녀에게 말을 걸어도 그녀는 우리가 했던 말을 되풀이할 뿐이다. 상대방이 하는 말만 앵무새처럼 따라 하는 목소리로 그녀가 변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사건 때문이다.

  그녀의 비극적 운명의 시발점이 된 사건은 헤라와 관련이 있다. 천하의 바람둥이를 남편으로 둔 헤라는 남편 제우스가 몰래 아름다운 여신이나 여인들과 연애를 하고 있지 않은지 늘 노심초사했다. 그러던 어느 날 헤라는 제우스가 요정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에코는 제우스와 함께 있던 요정들에게 달아날 시간을 주기 위해 헤라를 붙들고 재잘거렸다. 그 결과 헤라는 제우스와 더불어 요정들을 그만 다 놓치고 말았다. 헤라는 분통이 터졌다. 그녀의 분노는 남편과 예쁜 요정들이 아니라 에코를 향해 분출됐다. 헤라의 저주를 받은 에코는 다시는 하고 싶은 말들을 할 수 없었다. 결코 먼저 말을 할 수 없고 다른 사람이 말을 하면 같은 말로 대답만 할 수 있게 됐다. 이것이 에코 요정의 첫 번째 불행이었다.

  두 번째 불행은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당대 최고의 차갑고 도도한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그녀가 사랑에 빠진 사내는 나르키소스였다. 그는 어찌나 잘생겼는지 그를 한 번 본 사람들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를 향한 숙명적인 사랑에 빠진 요정들이 무수하게 많았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고 냉정하게 사랑을 거절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고통만을 안겨줬다. 그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에 친구들도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냉정한 나르키소스가 숲에 들어가 사슴을 사냥하고 있었다. 사냥에 몰두하고 있는 나르키소스의 아름다운 모습을 그만 에코가 보게 됐다. 그를 본 사람들이 모두 그러했듯이 에코도 나르키소스를 본 순간 깊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헤라의 저주 후에 소심해진 에코는 감히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바위나 나무의 뒤에 숨어 그의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다. 남의 말을 따라 할 수만 있었던 에코는 그에게 다가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는 처지였다.

  그래도 에코는 나르키소스에게 사랑을 고백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사냥을 나온 나르키소스가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가 됐다. 마침내 나르키소스에게 말을 건넬 좋은 기회를 맞이했지만 에코는 혼자가 된 나르키소스가 친구들을 찾으며 외치는 말만을 따라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더는 견딜 수 없었던 그녀는 숨어있던 풀숲에서 뛰쳐나와 나르키소스의 목을 힘껏 껴안았다. 그러나 나르키소스는 자신에게 구애했던 사람들에게 늘 그랬듯이 모욕인 말을 하면서 에코의 팔을 뿌리쳤다.

  나르키소스의 매몰찬 응대에 놀란 에코는 슬프고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절대 나오지 않았다. 동굴 속에서 가여운 에코는 사랑의 아픔에 고통스러워했다. 그러자 그녀의 아름다운 육신이 점점 사라져 갔다. 결국 오늘날 우리가 산속에서 들을 수 있는 그녀의 목소리만 남게 됐다.

 
그녀의 다정한 성품이 불행의 근원이었다. 올봄에는 우리학교 가까이 있는 도봉산에 올라가 에코 요정을 만나려 한다. 아름다운 봄날 산속에 혼자 숨어있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다. 밀턴의 표현을 빌려 “다정한 에코여, 더없이 다정한 요정이여!”라고 말이다. 그러면 에코는 고마워하면서 수줍게 대답해줄 것이다. “다정한 에코여, 더없이 다정한 요정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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