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대학, 구조개혁, 자율성
[교수칼럼] 대학, 구조개혁, 자율성
  • 정진웅 문화인류학과 교수
  • 승인 2015.09.01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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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구조개혁이란 미명 하에 교육부가 대학을 줄세우고 이에 기초해 퇴출을 압박함으로 인해 많은 대학들이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됐다. 우리 대학도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지정되는 등의 ‘위기’를 겪었으나, 최근 교육부의 대학평가에서 ‘기대 이상’의 성적표를 받아 당분간 한숨 돌리는 분위기다. 하지만 평가에 대비한 지속적 지표 관리는 여전히 대학의 ‘지속적 생존’을 신경써야 하는 대학행정의 최우선 고려사항이 될 것이다. 근래에 겪었듯이 대학의 학문적 일상과 교육적 실천이 이토록 외부의 평가에 심하게 종속돼 좌지우지되는 상황에서 교수나 학생은 여전히 교육의 주체일까, 아니면 꼭두각시일까? 이런 상황에서 대학에서 어떤 교육이 가능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오랫동안 대학은 일종의 지적 ‘해방구’로 존중돼 왔다. 사회의 흐름을 따라 가는 곳이 아니라 사회의 흐름에서 비켜 그 흐름 자체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성찰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대학의 역할과 그 가치를 공동체와 사회가 인정해 대학의 자율성도 가능했다. 학문과 교육에 있어서 대학의 자율성은 존중돼야 하며 이는 국가와 같은 외부권력에 의해서든 대학 내부의 권력에 의해서든 침해돼서는 안 된다는 문화적 합의가 꽤 광범위하게 존재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현 한국사회에서 학문과 대학의 자율성은 그저 수사일 뿐이며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자본과 국가권력에 종속돼 고사 직전의 상태다. 요컨대 돈과 국가권력이 대학을 쥐고 흔들고 있는 것이다. 가령 개별 학문분야의 중요성은이제 자본의 이윤증식에 기여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 위계화 됐다. 학문의 내용과 가치가 아니라 자본과 수요가 학문의 위상을 재배치한다. 이와 함께 대학은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인간이 아니라 기업이 요구하는 종류의 인간을 생산, 조달하라는, 즉 취업준비기관이 되라는 자본의 압력에 투항하고 있다. 그래서 대학은 자본이 원하는 졸업장과 전공과 학점이라는 상품을 판매하는 기관이 됐다. 이제 이윤과 상품성에서 자유로운 학문과 대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인용되는 “대학은 사람을 목수로 만드는 곳이 아니라 목수를 사람으로 만드는 곳”이라는 말이 점점 더 공허하게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대학의 자율성이란 중앙일보나 교육부에 의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자발적’ 노력 이외의 영역에서는 불순하거나 시대착오적인 것이 됐다.

  교육부는 국가와 자본의 지배를 매개한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것은 지금의 과도한 대학정원 사태를 부른 장본인인 교육부가 뻔뻔하게 이 사태를 해결하는 주체가 돼 국가의 돈을 쥐고 재정지원을 빌미로 대학을 흔들고 처벌하고 있고 이를 우리 누구도 막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이제 자본의 이익을 대변해 대학을 관리하는 행동대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교육부의 명칭이 한 때 과학기술부, 교육인적자원부 였던 사실도 국가권력과 자본이 어떻게 결탁돼 있는지를 시사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대학이 이번 대학평가에서 예상보다 나은 평가를 받았다고 더한 위기에 처한 수많은 대학들의 불행을 보며 안도하고 다음 평가를 대비하면 그만인 것일까? 이런 시대에 대학교육의 주체인 교수와 대학생들에게는 ‘상품’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어떤 의미 있는 자율성의 영역이 남아있을까? 개인적으로는 교수로서 학생들을 동시에 ‘시민’과 ‘상품’으로 키우려는 어정쩡하고 모순적인 줄타기를 하며 항상 흔들린다. 적어도 계속 흔들리기라도 해야겠다. 모순의 시대에는 역설이 불가피하다는 생각도 든다.

  돌이켜 보면 대학은 지금의 나를 만든 실험실이었고 새로운 사고가 삶을 얼마나 다르게 경험할 수 있게 하는지를 생생하게 체험한 시공간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대학시절은 ‘상품’으로 존재하는 것이 유예됐던 시기였기에 ‘인간’으로서 삶의 다양한 가능성에 눈뜨고 모색하고 실험할 수 있었다. 삶의 환경이 더 경쟁적이고, 팍팍하고, 불확실성에 찬 세상에서 살게 된 오늘의 대학생들에게도 상품이 아닌 존재영역에서의 상상력과 탐색과 실험들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어쩌면 모든 것이 상품이 돼가는 시대여서 더 그럴지도 모른다. 결국 삶에서 마주하게 되는 진하고 풍성하고 애틋한 경험들은 상품같은 삶에서는 거의 경험하기 어려운 것들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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