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여성주의 문화 만들기
남성들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여성주의 문화 만들기
  • 김민정 기자
  • 승인 2004.04.18 0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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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일 아트레온 토크 아카데미 부스에서는 ‘여성주의 문화 만들기’라는 주제로 영 페미니스트 포럼이 열렸다. 제 6회 서울 여성 영화제에서 새로 기획된 이번 포럼 섹션은 권은선 프로그래머의 사회로 사전에 선발된 6명의 젊은 페미니스트들이 각자 토론의 주제를 정하고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나누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새로운 여성주의 문화 구성을 모색을 위해 세상을 향해 외치는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자.

■ 페미니스트는 그 시대의 멋지고 ‘나쁜 여자’
 제 2회 여성영화제에 출품된 독립영화 <샌드위치>의 감독이자 현재 이화여대 영상학과의 석사 과정 중인 임우정씨는 페미니스트를 ‘나쁜 여자’라 말한다.
 그녀는 예술이건 정책이건 새로운 제도의 시도로 남성지배적인 사회를 들썩이게 한 페미니스트를 시대의 시스템에 순응하는 정숙하고 착한 여자가 아닌 나쁘고 위험하며 성적으로 활발한 정복적인 여성들로 정의하고 있다. 그리고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서는 이렇게 위험한 시도들이 계속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전략적인 방법에 따라 어떤 시도는 아무런 무리 없이 받아들여지는 반면 또 어떤 시도들은 왜곡되어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외면 받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하지만 이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녀는 언제까지나 순종과 인내를 미덕으로 삼으며 착한 여자로 살기 보다는 따가운 눈총과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차라리 세상을 쥐고 흔들 수 있는 배짱을 가진 나쁜 여성으로 살기를 권한다.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라는 말처럼 세상의 이목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직도 여성들이 해 보지 못한 ‘나쁜 짓’을 한번 제대로 벌여보기를 바라는 것이다.

■ 여자들이 꿈꾸는 유쾌한 타락의 한 사례
 페미니즘 소모임 <희희낙락> 멤버이자 평범한 대학생인 루나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놀고 즐기는 가운데 벌이는 유쾌한 페미니즘을 소개하고 있다. 두꺼운 여성학 개론서를 읽고 여성 작가의 소설, 문화 이론서 등을 함께 읽으며 토론을 하는 대신 안티 미스코리아 대회에 출전하고 밴드를 만들어 공연을 하는 등 몸으로 부딪히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음악을 직접 만들고 능숙한 연주를 할 능력도 되지 않지만 음악을 사랑하고 밴드를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기에 그녀들은 일단 저질렀다고 한다. 그리고 왁스의 지나치게 반동적인 노래인 <부탁해요>를 급진적인 내용으로 개사하여 부르거나 송골매의 어떤 곡을 레즈비언의 사랑가로 탈바꿈 시키는 등 그녀들만의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이제 젊은 여성주의자들에게 있어 페미니즘은 ‘놀면서 운동하는 일’이라 말한다. 즉 ‘예술적 창작욕구’와 ‘정치적 소신’을 함께 실천하는 일과 ‘재미있는 것’과 ‘가치 있는 것’을 동시에 성취하는 일이 가능해 진 것이다. 오늘날 젊은 세대들은 구호를 외치거나 연설을 통해 공격대상을 명확히 겨냥하고 그것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방식 외에도 다른 방식의 운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자기가 좋아하는 놀이 문화 안에서 자기의 정치적 입장을 구현하려는 영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소위 내용과 형식이라는 것, 혹은 일상과 운동이라는 것은 모두 따로 가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개념이 되고 있다.

■ <벌거벗은 페미니스트>에 대한 수다
 장애여성 공감의 회원인 니마와 영페미니스트 출판 기획 집단인 ‘달과 입술’의 마야는 포르노를 성매매 논쟁과 같이 찬· 반의 이분법적 논리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고 있다. 즉 우리사회에서는 ‘건전한 성’, ‘정상적인 성’의 바운더리 안에서 표현 될 수 없는 모든 성적 표현이 ‘포르노’라고 명명해 왔다는 점에서 포르노는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존재하는 현실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녀들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관념적인 판단보다 남성중심적인 태도와 신념을 유포하고 있는 포르노,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여성들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같이 고민 하는 태도라고 말한다. 여성들이 자조모임을 통해 정보를 교환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어떤 문제에 공동으로 대응하며, 그 사업 내에서 여성이 돈을 벌어 제작자가 되어 조금 더 여성친화적인 포르노 생산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여성의 욕망을 말 하는 것 자체가 아직은 위험천만인 현실에서 남성들의 힘과 연대를 공고히 해 온 포르노를 과연 여성리그로 만들어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 페미니스트들은 쉽게 포기하기 보다는 이렇게 우리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나은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여성들끼리 서로의 비전을 나누며 연대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 영화와 페미니즘은 어떻게 현실을 만나고, 담아내는가?
 2001년부터 2년간 ‘소녀들의 페미니즘’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한 독립영화 감독 원은 ‘페미니즘 안에서의 삶’의 중요성을 말한다. 그녀는 두 편의 독립영화를 완성했고 이를 매개로 하여 페미니즘 안에서 보다 많은 여성들과의 소통을 시도하고 싶었다고 한다. 먼저 첫 번째 영화 <바다를 간직하며>는 자신을 포함한 3명의 소녀들이 유흥가와 대학가들이 동시에 밀집한 신촌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신촌이라는 사회 속에 각자의 아픔과 고민을 가지고 있는 소녀들을 대비시켜 세우고 이 소녀들의 언어가 담긴 노래로 사회를 비판하려는 그녀의 의도는 모두에게 전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촬영 중간에는 “화끈하게 찍어봐!” 라며 낄낄거리는 아저씨들을 상대해야 했고 영화가 상영된 후에는 주제를 묻는 관객의 질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 때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읽는 관객들도 페미니즘안에 있어야 소통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동성애 문화에 관한 내용을 다룬 두 번째 영화 <헬멧>에서도 그녀의 고민은 계속 되었다고 한다. 얼굴과 신분을 노출하기 어려운 동성애자들의 보호장비로 헬멧을 등장시켰지만 동성애 문화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이 영화를 보고 헬멧을 쓰고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힘이 빠지는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영페미니스트이자 여성감독인 그녀에게는 페미니즘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에 대한 이해방식, 그리고 그것을 영화에 담아낼 때의 접근 및 표현 방식, 또 영화를 매개로 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할 때의 문제 등이 큰 숙제로 남아있다. 하지만 그 해결방법은 그리 어렵지 않은 것 같다.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고 계속 심화시켜 간다면 더욱 좋은 영화, 해석과 상상력의 여지가 풍부한 영화들을 만들어 갈 수 있으리라 감독 스스로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남성 중심의 우리 사회에서 ‘페미니스트’라 하면 피해 의식으로 똘똘 뭉쳐 이것저것 트집을 잡는 골칫거리나 배울 만큼 배운 엘리트 여성들의 전유물 정도로 취급받기 쉽다. 하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되고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순간 자신의 여성성이 마치 장애처럼 내 발목을 잡고 있다고 느꼈을 때 그 누구라도 페미니스트가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있어 있으면 좋을 고상한 취미 정도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는, 삶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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