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집단지성으로 미래를 기획할 때
[사설] 집단지성으로 미래를 기획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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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9.21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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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암살>이 세간의 인기를 넘어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화려한 캐스팅은 둘째 치고 극의 전개가 야무지고 맵시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아베 총리가 우리의 심정을 건드리는 이때에 우리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보면서 허리띠를 조금 느슨하게 하고 즐길 수 있는 영화가 다가온 시점이 매우 공교롭게도 광복절이다. 영화를 보면서 독립투사였던 염석진(이정재 분)의 배신과 반전도 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지만, ‘누구 몇 명 죽인다고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의 잔상은 현실에서도 여전히 아른거린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다르지만 비슷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단편소설로 염상섭의 「만세전」이 있다. 이 단편소설에서의 주인공 이인화는 경성(京城)가는 열차가 대전에 정차했을 때 잠시 내려 주위를 살펴보는데 그의 눈에 들어온 장면들이 그에게는 역겨움으로 다가온다. 차장 안에서 이야기 나누는 청년들, 길거리에서 떨고 있는 아이를 등에 들쳐 업은 아낙네, 그 옆을 지키는 순사의 모습에서 그는 사람들의 삶이 ‘공동묘지 속의 구더기’와 같다고 느낀다. 죽어 묻히는 공동묘지에 있는 실존의 구더기들. 살아 숨 쉬고 있으나 죽은 것으로 간주되고, 죽은 것과 진배없는 삶...
 
  조국 독립을 위한 노력이 부질없는 몸짓으로 느껴지는 게 어찌 그리 닮았을까. 어떤 모습이건 간에 숨통을 죄여오는 암울한 사회구조 덩어리 때문에 살아 있음이 별 의미 없는 절망의 시간들. 그 속에서 먼 훗날은 고사하고 내일조차 없어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혼돈과 좌절이 비단 일제 강점기의 전유물일까?

  대학 본연의 사명을 비트는 정부의 대학 정책 아래 각 대학들은 오늘도 살아 꿈틀거리지만 그래봐야 공동묘지 안에 있다. 실존의 움직임조차 생명력을 유지하려는 발버둥에 불과하다. 여느 다른 생명체와 다를 것이 무엇인가. 더 나을 바도 없다. 저항도 ‘정부 보조금’의 햇살 앞에서는 금세 녹아버린다. 아니, 햇살에 대한 맹목적 추종은 저항할 기운마저 말살시켜 버렸다. ‘그렇게 한다고 뭐가 달라질까…….’ 어디서 많이 보던 대사다.

  그렇다고 대학 정책, 교육부만 탓하고 있을 터인가. 숨통을 죄여오는 교육부의 간섭 행정을 두둔할 생각은 당초부터 없었지만 눈을 내부로 돌려보면 우리대학의 생명체를 의미 있게 만들려는 노력의 부재와 단속(斷續)이 아쉽다.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미 출발해 있는지도 모른다. 이, 삼년 아니 당장 내년을 준비해야 하는 승부수에 조직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참담함 앞에서도 우리대학이 어디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보석 같은 생각의 파편들만 교정을 떠돌아다니고 있다. 하루살이는 10년을 걱정하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주위의 시선이 두려운 것일까. 아니면 하루하루를 연명해서 그래도 10년은 더 살 수 있다는 개인적 보신주의일까. 그 무엇이든 간에 우리의 체질을 개선하고 체력을 길러 다가오는 미래의 새역사를 쓰려는 마음들이 용솟음치고 하나로 모으려는 대세가 그립고 간절하다. 당장 내일을 준비하는 뱀 같은 지혜와 미래를 바라보는 역동적인 집단지성이 조화롭게 이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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