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잘못인 까닭은?
[교수칼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잘못인 까닭은?
  • 한상권 사학과 교수
  • 승인 2015.09.22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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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국정교과서 문제는 2013년 말 교학사에서 출판한 고등학교 <한국사>가 학교 현장에서 철저하게 외면당한 데서 비롯됐다. 이는 물론 엉터리 교과서를 쓴 필자들에게 일차적인 잘못이 있지만 검정 심사를 맡은 국사편찬위원와 교육부 책임 또한 적지 않다. 교학사 교과서 검정 통과 이후, 국사편찬위원회는 ‘검정 심의’ 대신 ‘교정 작업’을 했으며 교육부는 ‘교학사 산하 교열부’라는 놀림을 당했다. 그런데 대국민 사과를 해도 모자랄 교육부가 적반하장으로 이듬해 대통령 업무 보고에서 엉뚱하게 ‘국정을 포함한 한국사 교과서 발행 체제’를 공론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교학사 교과서 사태는 검정제도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다.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역사인식을 학생들에게 강요하기 위해 검정제도를 악용한 데 교학사 사태의 본질이 있었음에도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교육부만 모르쇠한 채 ‘교과서 국정화’라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국정교과서는 교과서의 집필과 편찬은 물론 수정과 개편까지 교육부의 뜻대로 하는 독점적인 교과서다. 국정제는 정권이 원하면 얼마든지 역사를 왜곡할 수 있고, 정권에 따라 교과서 서술이 뒤바뀌어 역사 교육 현장에서 일대 혼란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한 제도이다. 1974년 유신체제 성립 후 채택됐던 한국사 교과서 국정제가 민주화의 진전으로 40년 만에 폐지된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에 국정화가 강행된다면 정권의 입맛대로 그때그때 역사교과서가 바뀔 수 있는 유신시대로 돌아가는 것이 된다. 다양성과 창의성을 특징으로 하는 21세기에 하나의 역사 인식만을 강요하는 국정교과서를 발행하겠다고 옹고집을 피우고 있으니 참으로 딱 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는 교학사 이외의 한국사 교과서를 좌편향, 종북 등으로 몰아세우고 수능과목 필수를 빌미로 국정교과서 도입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교육부가 좌편향, 종북 딱지를 붙이고 있는 현재의 한국사 교과서는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교육과정’에 따라 집필했고, 박근혜 정부가 ‘검정 심의’해 통과시킨 교과서이다. 더구나 검정통과 당시 교과서 편향성 시비가 일자, 교육부는 ‘수정심의위원회’를 급조해 “국가 정체성을 왜곡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수정·보완”을 명령했으며 출판사를 앞세워 자신들이 원하는 내용을 모조리 관철시켰다. 이런 과정을 거쳐 편찬된 한국사 교과서를 좌편향, 종북으로 규정한다면, 마땅히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대해서도 그렇게 규정해야 할 것이다.

  현행 헌법 전문에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 “4·19민주이념의 계승”,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 명시돼 있다. ‘독립운동 정신’과 ‘민주주의’, 그리고 ‘평화통일’은 대한민국이 지향해야 할 핵심가치이다. 이러한 헌법가치를 부정하고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것은 대한 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더욱이 헌법에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명시돼 있다. 헌법이 말하는 정치적 중립성의 핵심은 국가가 교육에 부당하게 개입하는 것을 금하는 데 있다. 따라서 국가가 직접 교육과정에 개입하는 국정교과서는 학생의 알 권리와 교육을 받을 권리, 교사의 양심에 따라 가르칠 권리를 제한한다는 점에서 반 헌법적이다.

  유엔은 바람직한 역사 교육 지침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역사 교육은 애국심을 강화하고 민족적인 동일성을 강화, 공적인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젊은 세대 육성을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 폭 넓게 교과서가 채택돼 교사가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교과서 선택은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필요에 기반해서는 안 된다. 역사교과서(내용)의 선택은 역사학자에게 맡겨져야 하고, 특히 정치가 등 다른 사람들의 의사 결정은 피해야 한다.”

  역사 교육은 기본적으로 다양한 교과서를 바탕으로 이뤄져야 하며 국가 주도의 단일한 교과서, 즉 국정교과서는 역사 교육이 특정한 이념을 일방적으로 주입하기 위한 도구가 될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는 게 국제사회의 제언이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올인’하고 있는 정부가 귀담아 들어야 할 충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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