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이상의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수반한 21세기 종교
믿음 이상의 사회적 이데올로기를 수반한 21세기 종교
  • 서울대 비교문화 연구
  • 승인 2004.04.18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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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종교분쟁
 2001년 9월 11일, 이슬람 테러리스트가 납치한 여객기에 의해 미국 뉴욕의 세계 무역센터 빌딩이 두 동강나던 텔레비젼 화면은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에 생생하다. 이 사건의 여파는 오늘 저녁 9시 뉴스에서 선교를 위해 바그다그로 들어가려던 한국 목사들이 납치되었다는 소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종교를 내건 국제 분쟁은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그치지 않는다. 세르비아와 알바니아 간의 코소보 사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해묵은 갈등, 인도네시아의 기독교와 이슬람, 인도의 힌두교와 기독교 사이에서도 심각한 유혈 사태가 나타난다.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에 의하면 이러한 종교분쟁으로 생긴 난민이 세계적으로 1천2백40만 명에 달하며, 국가 내의 유랑민도 1천8백여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최첨단 과학기술의 시대가 펼쳐지리라 기대되는 21세기의 국제관계가 종교 분쟁의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계종교의 세계화
 오늘날 세계의 종교분쟁에서는 이슬람 대(對) 이슬람과 같은 뿌리를 가진 기독교나 유대교 간의 갈등이 두드러진다. 종교를 명분으로 한 이러한 대립의 첨예화는 다른 한편으로는 기독교를 위시한 거대 종교의 세계화와 영향력 증대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세계의 역사는 타 민족에 대한 정치경제적 지배가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전파를 동반한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지구상의 발견, 식민지배, 제국주의, 양차대전, 냉전체제, 지역화와 세계화의 동시 진행으로 이어지는 세계 역사의 진행과정 속에서, 기독교는 특히 서구의 문화를 대변하면서 세계종교로 발전하였다. 소설가 황석영의 표현을 빌자면 ‘기독교는 맑시즘과 함께 식민지와 분단을 거치면서 자생적 근대화를 이루지 못한 우리가 타의에 의해 지니게 된 모더니티 (「손님」, 작가의 말 중에서)’인 것이다.
 냉전체제의 붕괴와 함께 대두되는 지역간 정치경제적 이해의 대립이 종교분쟁의 모습을 띠는 것, 이슬람과 기독교의 대결구도가 심화되고 보다 표면화되는 추세는 기독교로 상징화되는 서구화와 근대화라는 단일 담론에 균열이 진행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탈근대사회의 종교
 근대화의 전제처럼 과학은 합리적이고 종교는 비합리적인가? 오늘날 세계의, 특히 서구의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여전히 그렇다고 답할 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답한 사람들도 어느 정도는 ‘종교적’ 믿음과 실행에 의지하고 또 위로받으며 산다는 점을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
 탈 근대사회 종교의 특징 중 하나는 근대화 속에서 부정되던 비서구 사회의 거대종교인 불교와 힌두교, 그리고 전근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애니미즘과 샤머니즘이 서구 사회에서 크게 ‘유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 운동에서 볼 수 있듯이 이 때 비서구·비세계 종교는 하나의 종교로 신봉되기 보다는 근대 사회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가치’로 채택된다. 한편, 최근 한국의 ‘웰빙’(well-being) 붐에서 볼 수 있듯이, 비서구·비세계 종교의 요소들은 탈근대 사회에서 새로운 ‘소비 컨셉’으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종교적 근본주의를 선명히 내건 유혈사태가 지속되는 것과 달리, 오늘날 종교 간의 위계는 급격히 허물어지고 있으며, 사람들은 혼란이나 갈등 없이도 완전히 다른 기원을 가진 종교적 요소들을 ‘소비’한다. 타로 점을 보는 것과 사주를 보는 것은 취향의 문제이며, 교회를 다니면서 요가를 하거나 선식을 하는 것에 갈등을 느낄 이유가 없는 것이다. 21세기의 종교 분쟁에서 문제의 본질은 종교라는 믿음의 차이 그 자체가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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