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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도화지에 자신의 세계를 담는 과정이에요
2015년 10월 05일 (월) 21:39:56 김유빈 기자 sallykim6306@naver.com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성이 땅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짜장면을 먹거나 거침없는 자세로 당구를 치는 모습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이 파격적인 소재로 동양화에 대한 편견을 깨버린 그녀, 올해 27세의 젊은 한국화가 김현정(이하 김 화가)이다. 김 화가를 만나 젊은 여성 화가로서의 삶과 그녀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봤다.

동양화의 매력에
푹 빠지다
  김 화가는 어렸을 때부터 화가를 꿈꿨다고 한다. “미술에 관심이 많으신 부모님 덕분에 어릴 때부터 미술관 구경을 많이 다녔어요. 그러다가 친언니가 먼저 미술을 하게 됐고, 그런 언니의 모습을 보며 저도 미술을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동생은 보통 언니를 따라하려고 하잖아요(웃음).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쩌면 저에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김 화가는 선화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해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화가의 꿈을 키워나간다. 원래 디자인 분야에 흥미를 갖고 있던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우리나라 수묵화에 매력을 느끼고 전공으로 동양화를 선택하게 된다. “오주석 선생님의 책 ‘한국의 미 특강’을 읽으면서 받았던 감동이 아직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이 책 덕분에 한국화에서 나타나는 수묵의 높은 경지를 느낄 수 있었죠. 수묵은 여러 번 덧칠을 해도 그림이 탁해지거나 두꺼워지지 않아요. 덧칠을 통해서 먹의 농담을 살릴 수 있고 오히려 투명한 느낌도 줄 수 있죠. 아주 매력적이지 않나요?” 고등학교 시절 처음 느꼈던 수묵화의 매력은 그녀가 동양화를 선택하도록 이끌었고 지금까지도 그녀를 끌어당기고 있다. “동양화는 투명하고 따뜻해요. 전혀 인위적이지가 않죠. 이것이 동양화의 매력인 것 같아요. 자연에서 온 재료들이기 때문에 자극적이지 않고 친화적이죠. 손으로 만져도 되고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아요. 물론 굳이 먹을 필요는 없지만요(웃음).”
   
김현정 화가의 그림 속 인물들은 우아한 한복을 입고 이와는 어울리지 않는 일상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출처/ 김현정 화가 페이스북

 

한복을 사랑한 그녀
한복으로 표현하다
  김 화가는 ‘내숭 이야기’라는 전시를 통해 본격적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그녀의 작품들은 발칙하고 유쾌하다. 김 화가의 작품 속 여성들은 대개 한복을 입고 한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동을 한다. 한복을 입은 여자가 자신의 명품백을 바라보며 추레한 모습으로 라면을 먹고, 한복을 입은 여자가 햄버거 배달 오토바이를 타는 식이다. 김 화가의 작품들은 한복을 입고 격식을 차리지 않는 일상적인 모습들을 담았다. “내숭 시리즈는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미움으로부터 출발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작품에 단순히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비판만을 담고 있지는 않아요. 저의 본질을 고백하는 측면으로 작품을 발전시키고 있어요.”

  김 화가의 그림에서 한복은 매우 중요한 조형요소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을 따라 결혼식 같은 행사를 다니면서 한복을 접했어요. 그때마다 한복이 너무 예뻐서 매일 한복을 입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한복을 좋아한 그녀는 한복이 ‘내숭’을 표현하기에 좋은 수단이 될 수 있을 거라고 봤다. “우아하고 고상한 한복과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일상생활의 대비, 다시 말해 전통적 의상과 현대적 소품의 대비는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들이 어쩌면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통념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요. 사실 이러한 대비는 다른 소품을 통해서도 표현할 수 있지만 저는 한복에 더 끌려요. 개인적으로 우리 한복의 선과 색, 문양과 한복에 하는 장신구를 정말 좋아해요. 그 독특한 멋은 저의 표현욕을 강하게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 같아요.”

작품을 그리는 과정은
나를 찾는 과정
  김 화가 작품의 모델은 바로 그녀 자신이다. “포즈를 취하고 사진 촬영을 한 후 그 몸을 본떠서 스케치를 해요. 처음에는 인물을 누드로 그려요. 그 다음 마치 내 몸에 한복을 입히는 것처럼 그림 위에 한지를 붙이죠. 한지를 붙이기 전 반투명한 한복을 표현하기 위해 직접 얇은 한지를 염색해요. 반투명한 한복은 ‘그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이렇듯 김 화가는 작업 과정에서도 작품의 의미를 담는다고 했다.

  그녀는 이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경험하기도 했다. “인물을 좀 더 사실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서 직접 포즈를 취하고 찍은 제 사진을 참고자료로 활용했어요. 비록 제가 모델이긴 했지만 처음에는 작업을 통해 생성되는 인물이 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다른 사람의 인격을 덧씌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거울로 저의 모습을 보다가 문득 화폭에 담긴 사람과 거울 속의 제가 똑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다른 사람인 줄로만 알았던 화폭 속의 인물이 생김새뿐만 아니라 ‘당당하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는’ 지금의 저와 너무 닮아 있었던 거죠.” 그렇게 그림 속에서 타자화돼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그녀는 이제부터 자신의 본 모습과 내면에 집중하기로 했다. “비록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확실하게 결론지을 수는 없죠. 그렇지만 다른 사람의 시선에 속박 돼 있는 현재 모습을 솔직하게 털어 놓다 보면 사람들 시선 앞에서 조금 더 당당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김 화가는 현재도 계속해서 자신의 본모습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미술 작업은 도화지에 화가 자신의 세계를 담는 과정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본인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타인을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은 생각보다 굉장히 어렵거든요. 저는 저의 일상과 현재 상태에 관한 자기 고백적 작업을 통해 저의 본모습을 알아가고 있어요. 그림의 소재들에는 대부분 저의 일상적 행동이나 습관이 반영돼 있는데 그림을 통해 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예술적 작업인 동시에 삶에 대한 성찰을 진솔하게 고백하는 것이기도 해요.”
   
사진/ 최한나 기자

 

 

사회로 한 발짝
나아가는 학생들에게
  김 화가는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대학생들에게 격려의 말을 전하기도 했다. “성공이란 어디에 가치를 두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러니 너무 성공만 좇으려 하지 말고 자신의 일을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화가로 등단하는 과정이 특별히 정해져 있지는 않았지만 끊임없이 작업하고 전시를 해오다 보니 어느새 여기까지 온 거죠.” 또한 김 화가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먼 미래, 큰 꿈만을 좇다보면 막연할 거예요. 기간을 5년, 1년, 6개월, 한 달, 2주, 1주로 나눠 목표를 정하고 단지 계획으로만 끝나지 않도록 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기자는 덕성여대 학우들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달라고 부탁했다. “여자들끼리 모여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경쟁하는 것도 좋지만 서로를 응원해주고 격려해줬으면 좋겠어요. 초등학생들로 비유를 하자면, 서로 이기려고 아무리 싸워도 결국 2등을 이겨서 1등이 되는 건데 그게 전국 1등은 아니니 소용이 없잖아요. 그런 것처럼 옆에 있는 친구와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서로 같이 가는 게 중요하죠. 제가 살면서 느낀 점은 곳곳에 여성 리더들이 숨어 있다는 거예요. 그분들이 힘을 모은다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갖고 있어요. 또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어린 여자라고 무시당하는 순간들이 종종 있어요. 화가 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돼요. 그러니까 제가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은 ‘여자들이여, 뭉치자!’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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