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첫사랑과 강의평가
[교수칼럼]첫사랑과 강의평가
  • 강수경 법학과 교수
  • 승인 2015.10.0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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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을 올해부터 도입된 대체 공휴일의 혜택 덕분에 긴 연휴의 이름으로 지내고 나니, 30도에 달하는 더운 날씨에도 덕성의 캠퍼스에는 가을의 여릿한 흔적이 보인다. 또 한낮을 장식하는 햇살이 울긋한 단풍을 만들어 내고 있음도 느껴진다.

  ‘법학의 특성=재미없다’라는 공식 탓인지 긴 연휴 끝의 수업은 듣는 학생 뿐 아니라 수업을 하는 교수도 힘들었다. 설상가상 강의안 앞부분 3장을 연구실에 놓고 들어가 이를 어쩌지 하는 차에 앞줄에 있는 학생들이 “그러면 재미있는 얘기 해주세요”라며 애교 섞인 표정으로 바라 봤다. 순간 나 역시 달콤한 유혹에 넘어가 “그럼 첫사랑 얘기 해줄까?”라며 우리 학교가 소재하고 있는 쌍문동에 살았던 내 첫사랑 이야기를 시작했다.

  첫사랑은 내 이야기이든, 다른 사람의 이야기이든 심지어 배우자의 이야기이든 듣는 이를 설레게 하는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같다. 그렇기에 첫사랑이 동숭동 대학로에서 글라디올러스 7송이
를 건네주고 마지막으로 “진심으로 사랑했었다”라는 말과 함께 악수하며 울면서 돌아섰다는 이야기를 하면서는 수업이 하기 싫어 시작한 첫사랑 이야기에 내가 빠져들었다. 대학 학부시절이었던 1989년 바로 그날로 추억의 더듬이가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그 순간 아차 하는 심정……. ‘아! 강의평가에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과목하고 관련 없는 내용을 이야기 한다고 쓰면 어쩌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얼른 “그러니 여러분도 이 아름다운 계절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학부 시절에 좋은 만남을 많이 해보고 느껴봐야 인생이 풍요로워져요”라는 교훈성 멘트로 마무리하고 한 학생이 갖고 있는 강의안을 빌려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를 3시에 시작해 출석을 부르고대략 3시 30분까지 첫사랑 이야기를 하고 4시 15분까지 우리 헌법의 통치구조에 대해 설명했다. 연구실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4시 25분이었다.

  처음 30분 정도를 ①글라디올러스의꽃말이 성공이라는 것 ②사랑은 소금같더라 왜냐하면 쌓여있는 모습은 보석 보다 아름다우나 물이 들면 다 녹아 흔적도 없기 때문이다라는 것 ③꼭 감정이 살아있는 젊은 나이에 진실한 사랑을 해보고 받아봐야 나중에 인생이 힘들 때 사랑받았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며 당당하게 살 수 있더라는 내 경험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머지 45분 동안 ①각 헌법관에 따른 통치구조의 본질과 문제점 ②통치구조의 기본권 기속성 ③통치구조의 민주적 정당성 ④통치구조의 절차적 정당성을 이야기했다.

  교육부의 대학 구조개혁 평가로 인해 요즘의 대학가는 평가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만을 지고의 사명으로 여기고 있다. 평가라……. 그것도 구조를 개혁하는 평가라 한다. 이러한 교육부의 잣대로 재어 볼 때 이날 내가 진행한 30분의 첫사랑 이야기 vs 45분의 통치구조 이야기는 어떤 평가를 받을까 궁금하
다. 학생들의 강의평가가 두려워 얼른 교훈성 멘트로 마무리하고 수업을 시작했으나 학기말에 학생들이 강의평가를 할 때 이날의 내 강의에 대해 어떻게 평가를 할 지 역시 궁금하다. 그리고 또 궁금하다. 30분의 첫사랑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시간만 뺏기는 무의미한 이야기였는지.

  대학이라는 존재 안팎에서 다양한 목적과 기준으로 평가를 하고 평가를 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급변하는 사회 현실에 부합하는 학문적 정체성의 변화와 이러한 사회적 수요에 부응해야 하는 것이 대학의 사명임은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전의 시절처럼 휴강이 명강이라며 한 학기의 절반이 휴강이었던 시절이 낭만적이었다고는 할 수 없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을 햇살에 밤송이가 익어가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 날에 30여 분 정도 첫사랑 이야기를 하고나서 ‘아 강의평가 어쩌지’라며 움찔하는 내 모습을 한 개인의 소심한 성품 탓으로 돌리기에는 현재 대학의 모습이 서글프게 느껴진다.

  그날 강의 후 저녁에 나는 예술의전당에서 가야금 독주를 듣고 왔다. 하프보다 아름다운 25현 가야금으로 샹송을 듣는 경험은 아찔하기까지 한 감동이었다. 다음 수업 때 이날의 감동을 수업시간에 이야기해도 될지, 한다면 몇 분정도 해야 할지 대학 구조개혁 평가 기준에 맞춰 고민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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