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칼럼]희망의 두 얼굴
[학생칼럼]희망의 두 얼굴
  • 황영진 (사회 4) 학생칼럼 위원단
  • 승인 2015.10.06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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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나는 여의도에 있는 모 증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러나 내가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내에는 무거운 공기가 느껴졌다. 내 옆자리였던 차장님께서 “희망퇴직 메일을 봤느냐”고 물었고 난 그 말의 의미를 단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한 달 뒤 사무실 곳곳에는 빈자리가 생겼다. 당시 그 증권사에서는 120여 명의 직원이 나갔다. 말이 희망퇴직이지 정말 퇴직을 희망해 나간 사람은 적었고 대부분이 무언의 압박에 의한 강제적인 퇴직이었다. 사실상 희망이라는 탈을 쓴 해고였다. 여의도에서는 한동안 희망퇴직의 억울함과 부당한 해고라며 반발하는 노동자들의 외침이 끊이질 않았다.

  희망, 듣기만 해도 긍정적인 느낌이 드는 이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앞 일에 대해 어떤 기대를 가지는 바람, 앞으로 잘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지만 앞으로는 잘될 것이라는 희망은 분명 그 고통을 견딜 수 있게 하는 힘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희망은 오히려 고통과 피해를 정당화하는 의미로 느껴진다.

  작년 모 공단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던 권 양은 자살했다. 대학을 조기 졸업한 그녀는 비정규직으로 공단에 입사했고 2년 뒤 정규직 전환을 해준다는 상사의 말을 믿었다. 상사들의 온갖 스토킹과 성추행이 있었지만 그녀는 정규직 전환이라는 희망만을 바라보고 그 고통을 견뎠다. 그리고 2년 뒤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해고통보였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지났지만 비정규직의 처우는 나아지지 않았고 비정규직 기간만 더늘어났다. 취업난은 끝이 보이지 않고, 한국은 몇 년째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다. 청년들의 간절함을 악용하는 기업들은 넘친다. 열정페이, 무급인턴, 비정규직 등의 문제는 청년들을 더욱 통스럽게 한다. 그리고 희망은 이러한 구조 속 수많은 부조리와 부당한 대우의 입막음으로 이용된다. 살아생전 권 양이 상사들의 정규직 전환이라는 말을 진심으로 믿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왜곡된 희망은 온갖 부조리를 정당화하고 권 양을 포함한 수많은 청년을 고문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망적인 사회를 벗어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희망이다. 사전적 의미 그대로의 희망 말이다. 많은 청년들이 온갖 자격증을 따고, 어학점수를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 도서관에서 밤을 지새우며 스펙 쌓기에 열정을 쏟는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좋은 조건의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다들 각자의 희망을 믿고 노력한다. 이같이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한국사회는 더 이상 망이라는 단어를 섣불리 남발해서는 안 된다. 희망이 진정으로 이뤄지는 사회를 보여줘야 한다. 말뿐인 희망은 청년들에게 고문밖에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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