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 풀리는 학술] 영화 <암살>이 되불러오는 항일의거들
[술술 풀리는 학술] 영화 <암살>이 되불러오는 항일의거들
  • 김영범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
  • 승인 2015.11.23 22: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의 영화 <암살(2015)>
일제 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친일파 암살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 <암살>이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애국심을 불러일으켰다. 실제로 일제 강점기에는 나라 안팎에서 친일파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형태의 암살 작전이 거행됐다. 그들의 행위는 의거라 불리며 오늘날까지 우리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하지만 이같은 행위를 테러와 동일시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총기에 의한 공격이라는 점에서 그들의 행위를 테러라고 보는 것이다. 과연 우리는 그들의 행위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인가?



  현대적 인권 이념에 비춰보면 사람의 목숨을 해치거나 뺏는 일은 어떤 이유로도 용인되지 않는다. 대량의 인명 살상을 낳는 전쟁 도발과 집단학살은 가장 반인권적인 행위가 된다. 중범죄자라 할지라도 국가가 법의 이름으로 그 생명을 박탈하는 일만은 없어야 한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사형제 폐지가 대세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 마당에 ‘암살’을 운위하면 좀 뜨악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올여름에 개봉된 영화 <암살>이 무려 1,300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했다는 엄연한 사실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묘한 현상인지 모르지만 그 영화가 성공한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다수 국민의 현재적 집단무의식이랄까 사회사적 비원(悲願)이(단언컨대 그것은 잃어버린 정의에 대한 갈망이요 애도이다) 스토리와 인물 설정 등에 잘 투영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평단의 중론인 것 같다. 필자도 그에 동의한다.

  알다시피 암살이란 은밀히 계획하고 순식간에 실행하는 비공식적 살인행위다. 그런 의미의 암살이 동서고금으로 무수히 있었음도 다 아는 일일텐데 어떤 것은 사후에 긍정적으로 평가되거나 정당화되기도 했다. 브루터스의 시저 암살과 형가(荊軻)의 진시황 암살 기도가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링컨 대통령이나 마하트마 간디가 피살된 경우처럼 정치적·종교적 이유로 일어난 대부분의 암살 사건들은 ‘테러’와 동격으로 대중적 공분을 샀다.

  일제 강점기에 벌여진
  친일파 암살 활동
  그와는 좀 다른 성격의 암살 사건들이 우리의 20세기 전반기 역사에도 다수 있었다. 1905년 을사늑약 체결 후 국권 피탈기부터 1910년 망국 후 일제 강점기 전 기간에 걸쳐 나라 안팎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들 사건의 기획자나 실행자는 독립운동 조직과 애국지사 및 독립운동가 개인들이었고 암살 대상은 일제 침략정책의 선봉장 및 식민지 통치의 최고위급 요인들과 부일(附日)(시대가 바뀐 만큼 이제는 단순 ‘친일’이 아니라 ‘부일’이라 함이 맞다.) 등 민족반역자 부류였다.

  놀라운 것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1920년에 ‘7가살’(죽여도 될 일곱 부류의 인물군)을 규정하고 『독립신문』에 공표까지 했다는 것이다. 적괴(적의 우두머리), 매국적(나라 팔아먹은 도적), 창귀(밀정), 친일 부호, 적의 관리된 자, 독립운동 진영 내의 불량배, 독립운동 및 정부에 대한 모반자가 그것이었다. 세분하면 무려 열여덟 종류나 됐다. 이들을 죽이는 것은 ‘전시의 적’에게 정부 차원에서 사형을 가함과 같은 것으로 풀이되고 그렇게 정당화됐다. 통상의 정치적 암살과는 다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1919년 만주 길림성에서 청년결사대 조직으로 성립한 의열단도 다섯 가지 파괴대상과 함께 ‘7가살’을 규정해놓고 있었다. 조선총독 이하 고관, 군부 수뇌, 대만 총독, 매국적, 친일파 거두, 적탐(밀정), 반민족적 토호열신(土豪劣紳=지역유지층)이 그것이었다. 그리고는 창단 이후 약 6년간 “천하의 정의로운 일을 맹렬히 전개함”을 표방해 ‘암살파괴운동’을 줄기차게 벌였다.

 

  일제 강점기의 암살,
  테러리즘이라 볼 수 있는가?
  임시정부와 의열단 외에도 대한광복회, 27결사대, 암살단, 다물단, 한인애국단, 남화한인청년연맹, 대한애국청년당 등의 항일 비밀결사들이 조직적으로 활동했고 기산도·나철·오기호·장인환·전명운·안중근·이재명·김정익·강우규·서상한·양근환·김만수·송학선·장진홍·조명하·남자현·조안득 등 수많은 항일지사들은 소그룹 또는 단독으로, 암살거사를 계획하고 실행하려했다. 그들의 행동은 의열거사의 준말인 ‘의거’로 통칭되고 인물호칭은 ‘의사’로 통일돼갔다. 이윽고 1970년대 들어 독립운동사 서술에서 ‘의열투쟁’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그 개념이 정립되기 시작했다.

  의열거사들을 가리켜 일제 당국은 매양 ‘흉행(흉포한 행위)’으로 깎아내려 기술하곤 했는데 2000년대 들어 우리사회 일각에서도 의열투쟁을 테러 또는 테러리즘과 동일시하는 시각이 생겨났다. 총기와 폭탄을 쓰고 극도로 공격적이라는 면에서는 공통점이 있다 할 것이니, 일견 그래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개념사적 고찰과 사회과학적 검토를 해보면 그건 무지의 소치이거나 오해에 불과한 것임이 바로 드러난다.

  항일의거로서 암살의 의미
  ‘테러’는 원래 ‘공포’라는 뜻의 말인데 그로부터 약간 전의돼 공포감을 주는 잔학행위를 일컫는 용어가 됐다. 가장 큰 공포는 이유 없이 어느 때 건 생명에 위협이 가해지고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데서 온다. 무고한 민간인, 시민을 그럴 듯한 이유를 대며 겁박하고 떼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테러리즘’은 그런 유의 공포심을 조성하고 전파시켜 권력 장악이나 저항의 무력화로써 지배의 목적을 달성해가는 정치적 전략이다.

  그러면 독립운동 과정의 의열거사들이 그런 식의 민간인 살해를 자행했던가? 대답은 명백히 ‘아니다’이다. 그런 사례를 단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다. 윤봉길과 이봉창 아니면 다른 어느 누군가가, 상하이나 도쿄나 서울에서 일본인 밀집지역 아무데나 들어가 마구잡이로 폭탄을 던지고는 숨어버렸던가? 혹은 며칠 전 파리에서 IS 조직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일상생활 중인 군중에게 무턱대고 총기를 난사하고는 달아났던가? 결코 아니었다.

  미리 정해놓은 표적만을 정확히 겨누어 총을 쏘고 폭탄을 던진 것이 의열투쟁의 행위론적 특성이었다. 그러니 그것을 테러나 테러리즘과 같다고 볼 이유가 없다. 그중에서도 암살거사들은 제국주의적 침략과 강점과 압제라는 역사적 부정의의 주범과 종범들을 연이어 응징하고 같은 일이 되풀이 되지 않게끔 하려는 예방성 경고의 의미를 띠고서 실행됐다. <암살>의 여주인공 안옥윤의 말처럼 항일독립투쟁이 중단 없이 계속됨을 국내 대중에게 알려서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고 오롯이 지켜내게끔 하려는 뜻도 있었다.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포살한 안중근은 일본영사관에서 심문을 받을 때, 자신이 ‘대한의군참모중장’으로서 독립전쟁을 벌이다 붙잡힌 것이므로 일개 살인범이 아니라 전쟁포로로 대우받아야 할 것임을 요구했다. 그와 같이 다른 의사들의 행위도 실은 일반적 의미의 암살이 아니라 임시정부 총지휘 하의 독립전쟁 전선에서 목숨을 내놓고서 수행한 전투행위였다고 볼 수 있다. <암살>의 클라이맥스를 이루는 장면들처럼 말이다.

  독립운동 맥락 속의 ‘암살’을 숭고하다고까지 말할 수는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역사적 정의 회복의 소명에 부응해 기꺼이 몸 바치려는 비장한 결의에 의한 것임은 분명했다. 현대적 관점에서 그 행위의 가치가 상당히 낮춰져 평가된다 할지라도 그것이 가졌던 역사적 의미는 지워지지 않고 남을 것이다. 조국광복이 됐다고 모든 문제가 말끔히 해결되고 정의가 복원된 것은 아니었음을 환기시켜 준 것도 이 영화가 여운으로 남기는 중요한 메시지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도봉구 삼양로144길 33 덕성여자대학교 도서관 402호 덕성여대신문사
  • 대표전화 : 02-901-8551, 8552, 8558
  • 청소년보호책임자 : 고유미
  • 법인명 : 덕성여자대학교
  • 제호 : 덕성여대신문
  • 발행인 : 김건희
  • 주간 : 조연성
  • 편집인 : 고유미
  • 메일 : press@duksung.ac.kr
  • 덕성여대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덕성여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press@duksung.ac.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