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자연을 듣다, 배우다, 돌려주다
[교수칼럼] 자연을 듣다, 배우다, 돌려주다
  • 안소영 텍스타일디자인학과 교수
  • 승인 2015.11.24 15: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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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면서 내 작업의 영원한 주제가 된 자연에 대해 이야기를 전해 보고자 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서 늘 변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주는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편안함, 안락함을 통해 우리학생들의 조급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위로 받기를 바랍니다. 나의 작업 속에서 항상 ‘자연’을 보여주고자 했던 이유를 우리학생들과 함께 공유해 보고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가져 보고자 합니다.

  자연을, 듣다.
  집 안으로 자연을 들여 놓고 싶어서 작은 화분을 하나 사 보았습니다. 작은 꽃들이 화사하게 핀 모습이 창가에 조용히 어우러졌습니다. 새롭게 꽃이 피고 있는 것인지, 피었던 꽃들이 지고 마려는 것인지, 오며 가며 자연스럽게 화분에 눈길을 주게 됐습니다. 그러던 어느 저녁 물을 주려고 창가에 섰다가 제 눈길을 따라 마음마저 창 밖으로 따라나섰습니다. 새까만 밤하늘을 마주한 채 보이지는 않지만 촘촘히 제자리에 박혀 있을 별들과 내일 아침이면 모두가 잠 든 사이 어느덧 하늘에 걸리게 될 태양 빛에 관해 생각하게 됐습니다.

   자연을 주제로, 그리고 그것들에서 동기를 얻어 작업으로 옮기면서도 늘 꽃이면 꽃, 나무면 나무하는 식으로 그들을 보고 있었나 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그들은 밤하늘에서 땅 밑에서 그들만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눈을 감아 보았습니다. 꽃이 저 혼자서 향기를 품어낸 것이 아니고 별이 저 혼자서 저렇게 반짝이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 역시 혼자서 그곳에 눈을 감고 서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화면으로 옮겨 봐야겠다는 욕심에 가까이 가서 들어 보았습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지금까지 제게 늘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고 말입니다. 이제 저는 귀를 열고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감아 얻은 고요함 속에서 꽃과 나무와 해와 달과 별이 하는 이야기를 한번 잘 들어 보려합니다. 어느덧 마음도 닫힌 문을 열 것입니다.

  자연을, 배우다.
  봄은 꽃으로 옵니다. 그러나 코끝으로 은은한 담향(淡香)이 전해 오는가하면 이내 그것은 자취를 감춰 버립니다. 어느 날 길가에 벚꽃이며 목련이며 흐드러지게 피어난 봄의 서정에 마음을 빼앗기고 저도 모르게 감흥(感興)에 들뜨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이면 지난 밤 생명을 다하고 저버린 꽃잎들을 보며 서글픈 마음을 추슬러야 했습니다. 어쩌면 가져간 마음을 몰라주고 저 혼자 어디로 간 것인가 싶어 황망하려다 문득 깨달음을 얻습니다.
 
   방전되지 않는 전구처럼 봄밤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서, 생기 가득한 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서, 나무는 많은 꽃을 한꺼번에 활짝 피워내야 합니다. 오늘 한 송이 내일 한 송이 하는 식이 아니라 봉오리가 열리기 시작하면 언제 피었나 싶게 나무 한 그루 가득 활짝 흰 꽃들과 여린 잎들뿐입니다. 우리 중 누가 그렇게 환한 빛을 내고 즐거운 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나무는 지나간 여름과 가을에, 그리고 눈 내리는 겨울에 봄이 오면 며칠 동안 쏟아 낼 기운을 벌고 기다림을 익혀 수선스럽지도 알뜰하지만도 않은 작품을 선보이고 제 자리를 찾아 돌아갑니다. 자연 앞에서는 늘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에게, 돌려주다.
  늘 자연에게 돌려줄 것이 무엇일까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며 생활을 이어 가면서 방법을 찾아보기도 하고 생각을 정리해보기도 합니다. 시인 괴테는 ‘자연의 극치는 사랑이다. 인간은 사랑으로서만이 자연에 다가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침묵(silence) 속에서 자연을 배우고 영혼(soul)을 열어 보려는 뜻’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다시 한 번 나 자신 역시 자연의 극미한 일부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다가가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봤습니다. 저의 작업이 우리 모두가 전체로서 일부인 자연에 대한 메시지라면 그 사랑의 방식이 ‘아껴주고 지켜주고 보듬어 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그런 것이기를 바랐습니다. 결국 자연을 이어가는 것은 더 많이 되돌려 주려는 우리의 마음과 노력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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