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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회 학술문예상 시 가작> 맥주를 위한 시간
2015년 11월 27일 (금) 04:30:48 김연수(문화인류 4) -

  <맥주를 위한 시간>  
  오늘의 방만함에 대해 따져보다 생을 낭비하지 않는 자들이 우스워졌다
  아무도 모르는 틈새의 바람이 흔드는 건 고작 우리의 나태
  가지지 않았을 때 혹은 제 자신을 스스로 구겨 던져버릴 수 있을 때
  진짜가 된다 날 것의 숨이 쉬어질 때
  가끔은 빛이 호흡을 멈춘 하늘 아래 있고 싶다
  그림자로 새겨지는 자신을 밟지 못해 울먹이는 얼굴과 마주하지 않도록
  오래 될 시간들을 더듬어 자리를 찾아가지 못하게 눈을 가리자
  내일은 역시 나의 산책에 동의하기 가장 어려운 날
  그렇지만 오늘 우리는 생의 표기에 숨을 달지 말자.
  잔 속에 터져 올라오는 것들을 모조리 삼켜 없애버리고
  지나는 하루에 용서 빌지 말자
  지금은 나도, 그 무엇도 아닌 맥주만을 위한 시간

 

  <제41회 학술문예상 수필 가작 수상소감>
 
 이 시를 썼던 겨울은 아마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밤을 맥주로 지냈던 때일 것이다.

  다시 돌이켜보면 저 시절이나 이 시절이나 내 몸 속 맥주의 지분은 비슷한데, 삼켜버린 맥주의 효능과 맞바꿀 수 있는 시가 있었다는 것이 이제와 새삼 부럽게 느껴지지 않을 수 없다. 요즘은 영 ‘시’라는 것이 없다. 이 시를 적었던 배짱 좋은 산책자도 내 시간 안에서 도무지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몇 번이나 계절이 바뀐 지금, 갑자기 ‘이 시에 대해 칭찬해주셔서 고맙습니다’ 하며 감사를 전하기에도 좀 민망한 마음이 든다. 지금의 나는 쏟아지는 가을의 빛 아래서 내 그림자를 이리저리 밟아 짓이겨가며 울먹이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은 괜히 더 떳떳한 웃음을 하고 ‘그렇지만 오늘 우리는 생의 표기에 숨을 달지 말자’며 저 시절처럼 떵떵거려 보고 싶다. 그건 순전히 나를 위한 선언이 될 것이지만 이 또한 지금처럼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함께 허공으로 손을 올려볼 수도 있을테니까.

  시를 상상하며 산다는 것은 내내 꿈같다. 시를 읽는 나날들의 나는 조금 더 건강하고, 시 삼고 싶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적어나가는 순간엔 가장 발랄한 웃음이 난다. 이렇게 시는 나에게 참 귀하고 예쁘다. 그러니 내가 욕심을 내 자꾸 써보는 수밖에. 오늘은 이만큼만 다짐해야지, 약속의 말은 길면 길수록 어기기 쉬워지는 것이니까.

  다른 시도 아니고 이 시로 상을 받게 돼서 정말이지 너무 부끄럽다. 맥주에 대한 나의 절절한 사랑을 모두 들켜버린 것 같은 기분에…. 또 완벽히 정돈되지 않은 글을 내놓은 것 같은 찜찜함에 자꾸만 얼굴을 감싸 쥐게 된다. 이 울퉁불퉁한 말들 안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해 준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내가 지냈던 시간들은 이 값진 칭찬 하나로 완전히 다른 빛의 기억을 입게 될 것이다. 또 계절마다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며 이 안에서 늘 외롭고 높고 쓸쓸했던 나를 꾸준히 위로해 준 학교의 나무들에게 뭐 하나 보답할 것이 없었는데 이제야 갚을 재간을 얻은 것 같아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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