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내가 몰랐던 단어들
[교수칼럼] 내가 몰랐던 단어들
  • 김성진 정치외교학과 교수
  • 승인 2015.12.07 11: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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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계 한 단계 과정을 지나다보면 느끼는 것이 많을 수밖에 없다. 늦게 시작한 박사과정에서는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단어의 의미를 새삼 다시 깨닫는 일이 많았다.

  영국의 박사과정은 수업이 없다. 일주일 혹은 이주일마다 한 번 정도 지도 교수를 만나 논문 지도를 받고 학위논문을 완성해 심사를 통과하면 학위가 수여된다. 하루는 학과 사무실에 들렸다가 지도교수님께서 눈에 문제가 있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지도교수님이 입원했다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날 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됐다. 지도교수님이 연구실에 계시다는 것이었다. 찾아가보니 평소처럼 논문을 쓰고 계셨다. ‘눈이 아픈 것은 신이 알아서 할 일이고 내가 할 일은 연구’라며 염려해주어 고맙다고 했다. ‘직업’이라는 단어가 ‘신의 부름’에서 비롯됐다는 말의 의미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지도교수를 만난 주말에는 유학생들이 모여 저녁을 같이 하곤 했다. 내 의도가 정반대로 전달돼 내가 말하려 했던 내용이 수정안으로 달려 있던 에세이를 돌려받은 날, 저녁이나 같이 하자던 선배는 ‘우리는 언어장애가 있다’며 헛헛하게 웃었다. 언어장벽 제거에 특효라며 선배가 추천한 지역신문은 광고가 많았다. 이 단어에 이런 의미가 있었나 싶을 때가 많았으니 분명 도움이 됐다. 이런 구인 광고도 있었다. “우리는 당신을 장기간 고용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많은 보수를 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이 우리와 함께 일하는 동안 자기개발을 통해 보다 나은 일자리 찾을 수 있도록 지원 할 것입니다.” 순간 멍했다. 나는 ‘직장’이라는 단어도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했었던 듯하다.

  20년이 넘게 지난 기억을 요즘도 가끔 대화에 올리곤 한다. 요사이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것은 아닐까 반문하게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무슨 사관학교라는 대학 광고는 지금쯤 익숙해질 법도 한데 여전히 어색하다. 우리사회는 대학을 취업 준비기관 정도로 생각하는 분위기이다. 직업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의 한 조건이다. 취업을 강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중소기업체는 구인난을 겪는데 고학력자들은 실업난을 겪는다고 말한다. 통계가 그렇다니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유를 고학력에서 찾는 것은 옳지 않다. 좋은 일자리와 나쁜 일자리를 구별할 필요가 있다. 좋은 일자리가 늘지 않는데 대학은 취업률을 평가받고 있다. 취업률이 낮은 대학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우리는 평가와 책임전가를 혼동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문학의 위기’라는 표현도 낯설지 않다. 한편에서는 인문학이 위기라며 인문학 육성을 위한 지원책을 마련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인문사회계열을 축소하고 사회적 수요가 많다는 이공계 관련 학과 개설을 지원한다. 모두 한 부서에서 하는 일이다. 우리는 무엇을 지원하고 있는가. 나만 단어의 본래 의미를 잘 모르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대학 평가와 개혁이 한창이다. 대학평가는 ‘졸업 유예생’에 대한 관심도 높이고 있다. 많은 대학들은 ‘졸업 유예생’ 을 줄일 때 나타나는 재학생 대비 교원 확보율 상승을 기대한다. 분모를 줄여 지수를 높이는 방법이다. ‘개선’의 의미도 바뀌어 가고 있다. 혹여 평가기준이 바뀌기라도 한다면 ‘대략 낭패’다. 하나 같이 쉽지 않은 과정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단어들의 본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학은 대학다워야 하지 않을까. 대학은 무엇보다 학생들을 생각하고 연구와 교육과정이 우선돼야 하지 않을까.

  우리 학생들 모두가 취업할 것이라고 약속할 수 없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에게 이것은 약속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대학은 여러분이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이 진정으로 원하는 일과 스스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 떠날 수 있는 준비 시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 우리 대학은 여러분들이 졸업한 후에도 힘이 돼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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