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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행복하지 않더라도, 서럽지는 않게
2015년 12월 07일 (월) 15:23:18 오슬 기자 tmf1008@daum.net

   
 

누구나 누려야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사회의 한 편에서 힘쓰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약자들이 권리를 되찾고 고통 받지 않는 삶을 살도록 돕고 싶다고 말한다. 인권단체 <인권연대>를 창립해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오창익 사무국장(이하 오 사무국장)을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 봤다.


  자연스럽게 시작된
  인권운동으로의 걸음

  오 사무국장의 인권에 대한 관심은 학창시절부터 시작됐다. “제가 중학생일 때 광주항쟁이 일어났어요. 소문으로 사람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어요. 혼란스러운 시기에 어린 시절을 보낸 거죠. 그러다보니 당시 어린 나이에도 자연스럽게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그가 학창시절을 보낸 1980년대는 수많은 청년들이 민주화를 외치며 학생운동을 하던 시대다. 학생운동을 하다 연행이 되면 고문을 당하거나 목숨까지 잃던 어두운 시기였다. 당시 대학생이던 오 사무국장은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학생이었다. “대학생 때는 저도 남들 다 하는 학생운동을 했죠. 입대하기 전까지 데모하는 걸 그냥 구경하고만 있었던 적은 없어요. 다른 학교에 가서 시위에 참여하기도 하고 길을 지나다 사람들이 시위를 하고 있으면 같이 뛰어들기도 했죠. 당시 사람들은 시위활동을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였는데 전 개인적으로 활동했어요. 사람들이 모여서 시위하는 걸 보면 거기에 함께 참여한 거죠. 그 당시에 그렇게 시위활동을 하는 사람은 드물었어요.”

  당연한 권리를
  당연하게 누릴 수 있도록
  젊은 시절, 두 개의 인권단체에서 인권운동을 하던 오 사무국장은 1999년 <인권연대>라는 이름의 새로운 인권단체를 창립하게 된다. “원래 두 개의 인권단체에서도 사무국장을 맡아 일을 했었어요. 두 단체를 그만둔 후에 계속해서 인권운동을 하고 싶었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더라고요. 고민 끝에 ‘내가 몸 담을 그릇을 직접 만들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창립으로 이어졌어요. 당시 인권운동을 하면서 알게 된 많은 분들이 인권연대 창립에 힘을 보태주셔서 가능한 일이었어요.”

  인권연대는 인권문제에 관심이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라도 회원이 될 수 있다. 현재 인권연대에는 약 2천4백 명의 후원 회원과 약 8천 명의 사이버 회원이 소속돼 있다. “기업이나 정부 등 어디라도 외부 지원은 사양합니다. 한 단체가 독립성을 유지하려면 무엇보다 경제적인 독립이 중요하거든요. 외부 지원은 받지 않지만 운영에 어려움은 없어요. 있으면 있는 만큼, 없으면 없는 만큼 쓰는거죠.”

  인권운동에 관심이 있다면 누구라도 인권연대에서 자원봉사를 할 수 있다. 종이를 접는다거나 통번역을 한다거나 정말 작은 일이라도 인권연대 활동에 큰 도움이 된다. 인권연대 홈페이지에는 수십 명의 전문가들이 칼럼을 기고하고 있지만 이들 역시 모두 무보수로 자원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불행해 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인권연대의 목표라고 말했다. “인권은 사람이 당연히 누려야 하는 권리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 되죠. 우리 세상이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무조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는 세상에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길 바라요. 소극적으로 말하자면 사람들이 아주 많이 행복하지는 않더라도 서럽지 않고 고통 받지 않는 삶을 살도록 하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오 사무국장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한 고통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인권운동에 임하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죠. 까닭없는 희생, 교훈을 찾아볼 수 없는 고통은 그저 참혹할 뿐이니까요.”

  레미제라블을 위한
  작고도 큰 움직임
  올해 인권연대에서는 소설 속 장발장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위해 ‘장발장은행’을 설립했다. 현재 장발장은행은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벌금을 내지 못해 교도소에 갇힌 사람들에게 무담보·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벌금을 못 내면 감옥에 가야 해요. 그런데 벌금을 못 내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이거든요. 벌금형은 사실 교도소에 가지 않아도 되는 가벼운 범죄인데 그 돈을 낼 수가 없는 사람들은 교도소에 갈 수밖에 없죠. 돈이 없는 것만으로도 불이익을 받는데 감옥까지 가야 하는 건 서러운 일이잖아요.”

  이외에도 그는 소년원에 송치된 청소년들이 사회에 다시 나왔을 때 낙인이 찍히거나 소년원에 다녀온 것을 훈장으로 여기는 문제를 지적하며 소년원 개혁 의지를 밝혔다. 또한 ‘예비사회인 학교’를 개설해 아직 사회에 발 디디지 않은 학생들이 스스로 권리를 찾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고3 생활이 끝나고 주어진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는 학생들이 많아요. 저는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배워야 할 것들은 배우고 나가게끔 하고 싶어요. 가령 아르바이트를 할 때 퇴직금은 어떻게 받는지 알려주는 거죠. 요즘 학생들은 사회 진출 이전에 정작 배워야 할 것들을 못 배우고 있으니까요. 예비사회인 학교, 예비청년 학교를 광범위하게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는 인권운동을 위해선 무엇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여러 시나 소설을 읽어보세요. 그 속에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어요. 예를 들어 ‘그리스인 조르바’라는 책을 보면 죽음을 앞둔 할머니에게 온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요. 할머니가 빨리 죽기를 기다리는 거예요. 죽으면 옷가지라도 가져가려고. 누구는 문첩까지 떼어가기도 해요. 그런 걸 보면서 ‘사람 목숨을 두고 어떻게 저러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죽 가난하면 저럴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죠. 돈이 많은 사람이 죽은 사람의 옷가지를 벗겨서 입으려고 하겠어요?” 그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인간의 권리에 대한 이해도 생길 수 없다고 말했다.

  자신을 존중하기 위한
  근거를 만드세요
  기자가 덕성여대 학우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하자 그는 “자신을 존중하는 연습을 하라”고 말했다. “학점이 안 나와도, 취직을 못 해도, 엄마와 사이가 안 좋아도, 좋은 옷과 음식이 없더라도 우리는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정말 못 살겠는 건 자존심이 상할 때, 자존감이 없어지고 상처를 받을 때죠. 그런데 자기 존재가 커지고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이 커지면 어지간한 시련은 시련이 아닐 수가 있거든요. 내가 나를 믿는데 뭐가 문제겠어요? 그러니 어떻게 하면 자기 존재를 키울 수 있는지, 자기를 존중하는 마음은 어떻게 키울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삶이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그는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갖기 위해 자신을 좋아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라고 조언했다. “항상 자기를 칭찬하고 믿어주고 사랑해주세요. 사람들은 남을 존중하라는 것만 가르치지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법은 안 가르쳐요.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존중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실천하고 실행하세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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