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칼럼] 대학의 존재 가치와 교양 교육
[교수칼럼] 대학의 존재 가치와 교양 교육
  • 최진형 국어국문학과 교수
  • 승인 2016.03.03 17: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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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속초 인근의 도로를 지나다가 눈길을 끄는 광고 간판을 보았다. “취업사관학교 ㅇㅇ대학교” 무척이나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직업 군인 장교 양성소인 사관학교와 취업을 연관지어 대학을 홍보하는 발상의 저급함 때문이었다. ‘취업률’이라는 지표로 대학을 평가하고 줄을 세우는 부당한 처사에 순응과 무관심으로 반응해 온 우리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비교육적 풍토가 지배하는 현실에서 대학의 존재가치를 지키기 위해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

  취업률로 평가받는 서글픈 현실을 한탄하면서도, 제자들의 취업을 위해 기업체를 드나들며 책임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각 분야의 다양한 업무에 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재 양성을 대학이 감당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적 교양을 갖추되 개성적으로 사고하고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현장 실무자들의 조언을 통해 대학 교육의 목적과 방향을 어떻게 설정하고 이끌어 가야할지 새삼 확인하게 된다. 이는 곧 내실 있는 교양 교육과 특화된 전공 교육을 통해 균형 잡힌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취업률, 전임교원 강의비율 등 겉으로 드러난 지표로 대학을 평가하면 교양 교육은 가장 먼저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기 마련이다. 교양 교육을 담당하는 전임교원이 부족하다 보니 강의의 대부분을 시간강사에게 맡기기 때문이다. 전공 교육 위주로 대학이 운영되는 데 따른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지만, 교양 교육의 중요성을 등한시하는 풍조가 빚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최근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양학부, 학부대학 등 이름은 다르지만 교양 교육 전문 단과대학을 설립하는 대학교가 늘어나는 것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미국 동부의 아이비리그에 속하는 대학교에서 1년의 연구년을 보냈다. 이 기간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교양교육시스템과 글쓰기센터(liberal arts college, writing center)를 체험한 것이었다. 문자 그대로 ‘자유인을 위한 학문’인 교양 강좌는 인문학은 물론 예술, 자연과학, 공학 등 현대사회의 지식인을 위한 학문이 망라돼 있었다. 이곳의 글쓰기센터는 학부생, 대학원생은 물론이고 교수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까지 운영하고 있었다. 각 기관이 독립성을 지키는 한편 대학 전체의 시스템과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었고, 교육 담당자는 대부분 전임으로 고용돼 일을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부러웠던 것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표를 향해 묵묵히, 그러나 매우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교양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진국 대학에 비해, 우리나라에서의 대학이란 존재는 취업을 위한 직업인 양성소로 전락하고 만 것 같아 씁쓸함을 감출 수 없다. 이러한 문제적 상황을 만들어낸 일차적 책임은 재정 지원을 무기로 전횡을 휘두르는 교육 관련 정부 기관
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교육적 기관이 교육부라는 가슴 아픈 우스개 속에서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어쩌면 이미 케케묵은 시대착오적인 말이 돼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부당함에 맞서기는 커녕 생존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순응하거나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대학 당국의 태도에 있다.

  우리대학은 요즘 교양 과목의 수를 대폭 줄이고, 심지어 기초 교양 과목의 핵심인 글쓰기 강좌의 폐지를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문제는 거시적 계획없는 통폐합이나, 시대를 거스르는 개정 작업의 목적이 결국은 교과부의 대학평가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는 점이다. 미래에 대한 전망과 철학의 부재는 말할 것도 없고 현실적 타당성마저 찾기 어려운 주먹구구식 대응을 지켜보며 일년지대계조차 기대할 수 없는 현실에 깊은 우려와 실망을 금할 수 없다.

  교육부의 평가, 대학 구조개혁이 결국 인구 감소에 대비한 대학 정원 감축이라는 현실적 목적에 수렴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현실적 문제가 절박하다고 하더라도 미래에 대한 전망과 깊은 통찰을 바탕으로 한 철학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위기가 곧 기회란 말이 있다. ‘덕성을 갖춘 창의적 지식인 육성’이라는 교육이념은 냉정한 자세로 되새겨야 할 소중한 가치다. 이러한 교육이념의 실현이 최상의 목적이 돼야함을 다시 한 번 자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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